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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년간 주연상 5명 … 흑인에게 매정했던 오스카

중앙일보 2014.03.04 00:27 종합 21면 지면보기
흑인 최초 여우조연상 수상자 해티 맥대니얼(왼쪽), 최초 남우주연상 수상자 시드니 포이티어.
억압된 삶을 살던 흑인 노예 여성이 승리했다. 올해 아카데미시상식 여우조연상은 ‘노예 12년’(2013)의 루피타 뇽(31)에게 돌아갔다. 유력 후보로 손꼽히던 ‘아메리칸 허슬’의 제니퍼 로런스(24)를 제친 결과다. 루피타 뇽은 ‘노예 12년’에서 폭군 농장주 에드윈 엡스(마이클 패스벤더)의 집착과 폭력으로 괴로워하는 노예 팻시를 연기했다. 루피타 뇽은 아프리카 케냐 출신으로, ‘노예 12년’은 그의 장편 영화 데뷔작이다. 시상식 무대에 오른 루피타 뇽은 “고통스러운 삶을 연기해야 했지만 즐거운 작업이었다”며 “이 자리에 서게 해준 스티브 매퀸 감독에게 감사한다”는 수상소감을 남겼다.


'바람과 … ' 맥대니얼 첫 조연상
2002년 덴절 워싱턴·할 베리
사상 처음 남녀 주연상 휩쓸어

 86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연기상으로 트로피를 차지한 흑인 배우는 단 열다섯 명. 해티 맥대니얼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로 12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것이 최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스칼렛 오하라(비비언 리)의 유모를 연기해서 호평받았다. 여우조연상은 아카데미시상식 연기 부문 중 그나마 흑인 배우에게 관대한 편이다. ‘사랑과 영혼’(1990)의 우피 골드버그, ‘드림걸즈’(2006)의 제니퍼 허드슨, ‘프레셔스’(2009)의 모니크, ‘헬프’(2011)의 옥타비아 스펜서가 수상자로 이름을 올린 배우들이다. ‘노예 12년’의 루피타 뇽까지 더하면 총 여섯 명의 흑인 여배우들에게 여우조연상 트로피가 돌아갔다.



 ‘사관과 신사’(1982)에서 강인한 선임하사 에밀 폴리를 연기한 루이스 고셋 주니어는 흑인 남자 배우 중 처음으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이후 ‘글로리’(1989)의 덴절 워싱턴, ‘제리 맥과이어’(1996)의 쿠바 구딩 주니어, ‘밀리언 달러 베이비’(2004)의 모건 프리먼이 뒤를 이었다.



2002년 아카데미에서 남녀 주연상을 받은 덴절 워싱턴(왼쪽), 할 베리. [중앙포토]
 주연상 부문으로 가면 흑인 배우의 수상 가능성은 더 낮아진다.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주연상을 차지한 최초의 흑인 배우는 시드니 포이티어다. 그는 ‘들백합’(1963)에서 동독을 탈출한 수녀들을 돕는 퇴역군인 호머 스미스를 연기해 36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차지했다. 이후 1970~90년대에는 단 한 명의 흑인 배우도 주연상을 거머쥐지 못했다. ‘사운더’(1972)의 폴 윈필드,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1989)의 모건 프리먼, ‘말콤 X’(1992)의 덴절 워싱턴 등 쟁쟁한 배우들이 주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징크스가 깨진 것은 2002년. 덴절 워싱턴이 ‘트레이닝 데이’(2001)로 74회 아카데미시상식 남우주연상을 차지하면서부터다. 이후 ‘레이’(2004)의 제이미 폭스, ‘라스트 킹’(2006)의 포레스트 휘태커가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런가 하면 여우주연상은 흑인 배우들에게 가장 박한 부문이다. 지금까지 오스카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품에 안은 배우는 할 베리가 유일하다. 그는 2002년 열린 74회 시상식에서 ‘몬스터 볼’(2001)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2002년은 덴절 워싱턴과 할 베리가 남녀주연상을 차지함으로써, 아카데미시상식 역사상 최초로 흑인 배우들이 주연상을 모두 휩쓴 기념비적인 해이기도 했다.



이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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