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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가 만난 사람] 6·4 선거 앞둔 박원순 서울시장
6·4 지방선거를 석 달 앞두고 중앙SUNDAY와 만난 그는 “서울 시정을 잘하면 그걸로 시민이 판단해줄 것”이라며 여유 있는 태도였다. 인터뷰는 지난 달 25일 서울시장 집무실에서 1시간가량 진행됐다.
-최근 여론조사는 과거와 다르다. 3자 대결에선 박 시장이 오히려 뒤진다.
“그런가? 주초에 어떤 신문을 보니 내가 압도적으로 앞서 있던데…. 일희일비할 일이 아니다. 오늘 여론조사를 발표했다고 확정된 건 아니잖은가. 나는 서울시장으로서 마지막까지 시정을 돌볼 뿐이다.”
-현실적으론 새정치연합과 연대해야 가능성이 크지 않나.
“그것조차 내 마음대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남은 기간 수많은 정치적 변수가 있겠지만 내가 할 일은 시정을 살피는 것이고, 나머지는 내 손을 벗어나 있다.”
-야권연대에 대한 입장은. 찬성인가 반대인가.
“상황 따라 다르지 않을까. 하지만 객관적 상황으론 야권이 분열되는 것보다는 당연히 합치고 연대해야 하지 않겠나.”
-오늘 안철수 의원을 만났나(2월 25일 박 시장과 안 의원이 점심 회동을 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헛소문이다. 안 만났다. 안 의원은 자신의 정치적 경로를 갖고 있고, 신당의 방향도 있고, 그걸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은가. 안 의원과 나는 기존 정치인과 달리 새 정치에 대한 갈망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시민의 바람과 소망을 존중할 수밖에 없고,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자기 배반이 된다. 좋은 결론이 나오길 기대할 뿐이다.”
-말씀대로 정치적 성향, 궤적 등을 보면 민주당이 아닌 안철수 신당 쪽에서 출마하는 게 맞지 않나.
“예컨대 가정상황이 어려워졌다고 부모형제를 버릴 수 있나. 그럴 때 오히려 내가 외지에 나가 열심히 돈을 벌어 집안 봉양하는 게 의리고 상식이다. 민주당 인기가 저조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내가 당을 나가는 것을 시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거다. 솔직히 내가 2년 몇 개월 서울시장 해 보니 정당하고는 별 상관없더라. 선거철 되니 시끄러운 거지.”
서울시장은 정치적 단계가 아니다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안 의원의 양보론 발언으로 꽤 시끄러웠다. 이번에 진짜 박 시장이 안 의원 쪽에 통 크게 양보할 의향은 없는가.
“서울시장이라는 직책이 내 것인가, 아니면 안 의원 것인가. 2011년 안 의원이 ‘출마를 포기하겠다, 대신 박 변호사를 지지하겠다’ 한 것은 서울시장을 본인보다 잘할 사람이라고 봐서 그러지 않았나. 나도 마찬가지다. 내가 이걸 누구한테 양보할 수 있단 말인가. 모든 건 서울 시민의 뜻이며 소망이고, 그에 따라 결정될 문제다. 또 정말 나보다 서울시장을 백 번 잘할 사람이라면 양보가 아니라 포기할 수 있다. 지금까지 많은 공직을 수없이 권유받아 왔고, 마음만 내켰다면 얼마든지 할 기회가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시민사회에서 인생을 끝내야겠다, 이런 확고한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확신을 거두고 현실 정치권에 발을 디딘 이유는.
“운명이지 않을까. 그 이전에 정치적 뜻이 있었다면 이미 들어가지 않았겠나. 김대중 정부에서도 민정수석 제안이 있었고, 당시 한나라당에서도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아 달라고 했고. 총리부터 국가정보원장까지 웬만한 자리의 하마평에 안 오른 적이 없었다. 그런데 2년 전 시장 출마를 결심한 데엔 정치가 이렇게까지 시민을 배반할 수 있는가 하는 분노와 절박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재선에 성공하면 대권 후보로 부상한다. 다음 대선에 출마할 의사는.
“처음부터 말했다.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자마자 ‘무슨 시장으로 남을 거냐’는 질문이 많았는데, 내 브랜드를 남기지 않겠다고 했다. 그게 대선과 연결되니까, 서울시장으로서 폼 나는 일 하나 해서 대선에 나가곤 했으니 말이다. 서울시장은 (정치적) 단계가 아니다. 지금까지 내 앞을 걸었던 많은 시장의 전철을 밟으면 안 된다. 나는 기본적으로 서울시를 세계 최고의 도시로 만들고 싶은 야심이 있다.”
-하지만 최근엔 ‘대선과 관련해선 시민의 뜻에 묻겠다’고 하는 등 과거와 톤이 달라졌는데.
“전혀 아니다. 맥락을 다 읽어보면 그렇지 않을 거다.”
-그럼 대선 출마할 뜻이 없다는 말인가.
“거듭 말했다. 이젠 서울시장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 아닌가. 예컨대 뉴욕의 블룸버그 시장, 런던의 켄 리빙스턴 시장, 파리의 드라노에 시장 등은 두세 번 연임해 10년씩 했다. 그러니 나도 세 번 정도 할 수 있게 도와달라.”
-그럼 차기 대선 안 나가고 서울시장 3선에 도전한다는 뜻인가.
“농담도 못 하나(웃음). 아니 3선 시장이 없는 바 아니지 않은가. 10년 정도 제대로 한다면 서울을 반듯하게 만들 수 있을 거다.”
-3선에 나선다면 좋아할 경쟁자가 많을 듯싶다.
“그것 역시 내 맘대로 되겠는가. 3선, 뭐 이런 말도 시민들 입장에서 보면 ‘만용 부린다’고 할지 모른다.”
-새누리당의 정몽준 의원이 2일 공식 출마선언한다. 그의 강점을 무엇이라 보나.
“시민들이 더 잘 판단하지 않겠나. 정 의원은 국회의원을 7번이나 한 대단한 분이다. 재벌 회장 아들이라고 하지만 굉장히 서민적인 풍모를 갖고 있다. 나와 아주 재미난 레이스를 할 거 같다.”
박 시장은 차기 대선과 관련해 불출마를 본인 입으로 직접 언급하진 않았다. 다만 “출마 안 하겠다는 뜻인가”라는 질문에 동의하는 식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또 “서울시장을 세 번 하고 싶다”고 툭 던져놓고는 “농담도 못 하나”라며 한발 물러서기도 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해외 사례를 거론하고 “10년쯤 해야 서울을 반듯하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후 인터뷰가 서울 시정 쪽으로 향하자 박 시장은 기다렸다는 듯 서류철을 찾아 내놓으며 설명했다.
-막상 시장을 해보니 어떤가.
“너무 신나고 재미있다. 얼굴이 확 폈다. 체질인 거 같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민생을 살피고 시대를 구할 지혜를 많이 가지셨지만 귀양 가서 책으로만 피력하지 않았나. 반면 나는 그걸 직접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어찌 행복하지 않겠나.”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나.
“첫째, 현안을 해결했다. 내가 취임했을 때 서울시엔 20조원 정도 빚이 있었다. 그중 지금껏 3조2500억원, 올 연말까진 6조5000억원 정도 줄일 예정이다. 공약했던 공공임대주택 8만 호 건설도 지난해 말 기준으로 92% 달성했고 7000여 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돌렸다. 둘째는 갈등 조정이다. 특히 뉴타운이 그렇다. 내가 취임할 때 600군데 넘는 곳에서 찬반으로 얽혀 갈등이 심각했는데, 많은 조정이 이루어졌다. 용산국제업무지구, 세빛둥둥섬,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등 각종 쟁점이 말끔하게 해결됐다. 셋째, 민생·복지 예산이 32% 늘었다. 환자안심병원, 심야버스 등도 각별했다. 마지막으로 관광산업을 중심으로 서울의 미래 초석을 다졌다. 2년 반 정신 없이 달려왔다.”
-아무것도 안 하는 시장이 되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건 내 브랜드, 시장 개인의 브랜드를 갖지 않겠다는 거였다. 과거 시장은 자기가 빛나는, 그런 것을 꿈꿨고 그러다 보니 서울 시정이 어지러워졌다. 내 임기 중 뭔가 끝내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서울, 관광·엔터테인먼트 도시로 거듭나야
-3조원 부채 감축을 두고 서울시장 후보에 도전한 새누리당 이혜훈 최고위원이 “내년 들어올 돈을 당겨 받은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이 최고위원은 경제학을 더 공부해주었으면 좋겠다. 미래에 들어올 것을 미리 받는 것도 중요한 거 아닌가. 은평뉴타운에 중대형 아파트 600채가 안 팔리고 있는 걸 내가 현장 사무실 차리고 여러 방책을 동원해 다 처분했다. 문정동 땅도 그렇고, 마곡 지구도 그렇고. 이런 걸 누가 했나. 그가 번지수를 잘못 짚은 거다.”
-반면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는 “박원순 재선이 새 정치”라고 했다.
“고맙지만 미안하다. 노 전 대표는 반듯한 분이다. 늘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안위를 버렸다. 정의당 입장에서는 좋은 서울시장 후보인데, 나를 위해서라기보단 그분의 철학을 말한 것 같다. 비록 당은 다르지만 우리 시대에 본받을 만한 정치인이다.”
-최근엔 ‘원순노믹스’를 내세우고 있다.
“우리 사회는 추상의 시대다. 큰 담론은 좋아하지만 미세한 실증적 정책을 내놓는 것엔 약하다. 그러지 말자는 뜻에서 서울이 지식경제·지적소유권·관광·엔터테인먼트의 도시로 가야 한다는 측면을 강조하며 그 구체적 방안과 정책을 담은 게 ‘원순노믹스’다.”
-공공기관은 지방으로 이전하고, 서울 인구는 1000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
“공공기관 이전에 따른 대응전략을 지난해 지시해 이미 보고서가 나온 상태다. 무엇보다 서울을 이기적으로만 봐선 안 된다. 뉴욕 인구가 800만 명이지만 세계 비즈니스의 수도 아닌가.”
-지난해 9월 안전행정부 전국 지자체 평가에서 서울이 9개 항목 중 사회복지·환경 등 7개 항목에서 최하위였다.
“국가 위임사무만 갖고 평가해 그런 결과가 나온 거다.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내려뜨린 일을 잘하는 것도 좋지만 그 이외에 서울시는 자체적으로 잘한 게 압도적으로 많다. 최근 일본 모리(森)기념재단이 평가한 ‘세계도시 종합경쟁력 랭킹(GPCI)’에서도 서울은 런던·뉴욕·파리·도쿄·싱가포르에 이어 6위를 기록했다.”
-자신감이 넘치는 것을 보니 권력이 좋긴 좋은가 보다.
“그건 정말 정치가나 공직자에 대한 오해다. 서울시장 자리가 어디 가서 권력 누리는 자리인가. 늘 조심스럽다. 어디 횡단보도 하나도 무단 횡단하기 힘들고, 저녁을 한번 먹어도 모든 것이 공개된다. 역사와 시민 앞에 떳떳하게 행동한다는 게 자신에겐 감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