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호준의 세컨드샷] 남의 탓할 수 없는 게 골프, 차갑지만 그래서 더 매력

중앙선데이 2014.03.02 01:37 364호 23면 지면보기
소치 올림픽에서 김연아가 받은 짠 점수가 아쉽다. 그러나 과거 한국이 얻은 홈어드밴티지를 돌아보면 러시아를 손가락질할 수만은 없다. 88서울올림픽 복싱 라이트 미들급 결승에서 박시헌은 판정으로 금메달을 땄는데 심했다. 당시 취재기자들은 이 판정에 격분해 박시헌에게 판정으로 진 선수를 88올림픽 최고 선수 중 한 명으로 뽑았다.

<6> 양심·자신과의 싸움

 2002년에도 그랬다.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뜨거운 분위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입을 다물었지만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이탈리아, 한국-스페인전은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우리가 반대 입장이었다면 억울했을 것이다.

 스포츠의 심판 판정은 법정 판결보다 구속력이 강하다. 오심은 경기의 일부라며 기본적으로 인정해야 하고 항소 제도도 거의 없다. 석연치 않더라도 판정을 뒤집기 시작하면 스포츠의 결과까지 바꿔야 하고, 판정이 맞느냐 안 맞느냐 따지다 보면 경기는 크리켓처럼 며칠 동안 지속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심판이 어찌 실수를 할 수 있느냐”고 눈을 부라리지만 사실 실수는 심판보다 선수가 더 많이 한다. 실수는 인간의 특성 중 하나다. 스포츠는 컴퓨터가 하는 것이 아니고, 오심을 포함한 실수가 나올 개연성 때문에 스포츠가 더 드라마틱하기도 했다.

 그래도 선수들은 오심에 큰 상처를 받는다. 김연아가 누누이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오심 덕을 본 선수도 피해자일 수 있다. 복싱에서 금메달을 딴 박시헌은 “심판이 내 손을 들어 올린 이후로 삶이 온통 악몽이 됐고 대인기피증이 생겼다”고 했다.

 골프는 오심이 거의 없다. 사실상 심판이 없기 때문이다. 그 넓은 골프장에서, 그 많은 선수를 모두 감시할 수 없다. 골프는 양심을 믿는, 아니 믿을 수밖에 없는 경기다. 사람들은 믿고 책임을 맡기면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몰래 속이는 사람도 있지만 다른 스포츠에 비해 양심적이다.

 축구나 농구, 배구 등에서 공을 다투다 엉킨 상태에서 볼이 사이드라인 밖으로 나가면 서로 자기 공이라고 주장하는 모습을 흔히 본다. 나를 맞고 공이 나갔더라도 우겨야 한다고 배우기도 하는데, 이는 선수는 정직하더라도 팀이라는 전체를 위해 개인의 양심을 희생하며, 심판을 속이고, 결국 오심을 조장해야 한다고 보는 전체주의적 생각이다. 그래서 오심으로 피해를 보면 속여야 할 심판에게 당했다고 여겨 더 화가 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스포츠에서 졌을 때 탓할 사람은 심판뿐이 아니다. 감독의 작전이 잘못됐다거나, 동료가 패스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거나, 혹은 상대가 반칙을 했다고 투덜거리는 얘기를 흔하게 듣는다. 반면 골프는 자신 외에는 탓할 사람이 없는(no one to blame) 스포츠다. 그래서 매우 차갑지만, 그래서 매력적이다.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