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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기의 ‘바이오 토크’] 인간 수명 170세, 포도 씨·껍질 성분 속에 답이 있다

중앙선데이 2014.03.02 01:53 364호 25면 지면보기
물에 담그기만 해도 젊어진다는 ‘청춘의 샘’(독일 화가 루카스 크라나흐의 1546년 작품).
전화를 받던 친구가 벌떡 일어선다. 장인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어서다. 오늘 오전까지도 자전거로 동네 노인정에 다녀왔다는 어르신은 올해 90세, 그 마을의 최장수자이다. 노인정에서 장기 훈수를 두던 이야기를 가족과 하고 소파에서 잠든 것이 마지막이었다. 한국인의 현재 평균수명이 80세이니 어르신의 경우는 보통 사람보다 10년을 더 산 셈이다. 마지막 날까지 병으로 앓지 않고 살았으니 이보다 더 ‘행복한 죽음’은 없는 셈이다. 하지만 이제 80세 노인도 동네 노인정에선 ‘동생’ 취급을 받을 만큼 평균수명이 늘어났다.

<19> 장수의 두 가지 열쇠

‘99, 88, 23, 4 !’ 작년 송년회 모임에서의 건배사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 3일 만에 사망하자’라는 이 외침은 말년의 건강을 걱정하는 노년층의 공통된 희망사항이다. 99세가 가능할까? 50년 전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52세, 지금은 78세로 50%나 연장됐다. 하지만 실제 수명의 절대치가 올라간 것은 아니다. 의학이 발전하고 위생시설이 개선돼 과거엔 병으로 일찍 죽던 사람들이 줄어들어 전체 평균 수명이 늘어난 것이다. 미국 통계청의 평균 인간수명 예측은 2075년 86세, 2100년 88세다. 이룰 수 있는 최대 평균수명을 90살로 예상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 최대 수명, 즉 최장수인의 나이도 올라간다.

과학은 인간의 최대 수명을 몇 살까지 연장시킬 수 있을까? 현재까지의 공식 최장수기록인 프랑스의 잔 클레망(1875∼1997년) 할머니의 122살을 넘어선 150살 장수기록이 나올까? ‘150년 후에 그 결과를 보자’면서 각각 150달러를 내기에 건 두 괴짜 교수가 있다. 150년 후 150달러는, 주식 시장만 순항이라면 5000억원이 된다. 이런 횡재를 할 사람이 어느 쪽 후손일지 흥미롭다. ‘예’에 돈을 건 미국 텍사스대학 스티븐 오스태드 교수는 2012년 미국 ‘샌안토니오’ 신문기사에서, ‘내가 이길 것’으로 확신했다. 동물의 장수유전자 연구 학자인 오스태드 교수는 인위적으로 노화를 막아 인간수명을 150세까지 연장시키는 노화방지약이 곧 나올 것으로 예측했다. 즉 마시거나 담그기만 해도 젊어진다는, 전설 속에나 있는 ‘청춘의 샘’을 찾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아니오’에 돈을 건 미국 일리노이대학 스튜어트 올산스키 교수는 “인간은 늙어서 죽도록 프로그램돼 있다”며 “최대한 오래 살려고 노력해봐야 기껏 3년 정도 늘릴 뿐이지 현재의 120세 장벽을 넘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예’가 이길 방법은 오직 신(神)의 도움을 받는 것뿐이라며 인간수명 150세 불가를 자신했다. 하지만 최근 신이 ‘예’에 화답하는 연구결과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예’ 측에 힘을 실어준 연구들을 요약하면, 세포의 ‘보일러’ 연료를 줄이고 세포 내 통신을 원활하게 작동시키는 것이 장수의 열쇠다.

세포의 ‘보일러’인 수백 개의 미토콘드리아(붉은 색). ‘보일러’의 연소 속도를 줄이는 것이 장수 지름길이다. 노란색이 세포의 핵, 푸른색이 세포의 골격이다.
선충 유전자 조절해 수명연장 실험 성과
2013년 5월 세계 권위의 과학 학술지 ‘네이처’엔 세포의 미토콘드리아에서 장수유전자를 찾아냈다는 스웨덴 학자들의 연구논문이 실렸다. 미토콘드리아는 신체의 연료인 포도당을 태워서 에너지를 만드는 세포 내 ‘보일러’다. 이 ‘보일러’의 연소 속도를 줄이는 것이 장수의 첫째 방법이다. 연구팀은 포도 껍질과 씨앗에 많이 함유된 항(抗)산화 성분인 레스베라트롤을 사용해서 ‘보일러’의 연소 속도를 낮춰봤다. 실험에 사용한 선충(1㎜ 크기의 작은 벌레로 장수연구에 많이 쓰임)의 수명이 60%나 연장됐다. 이 장수유전자는 선충뿐만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동물이 갖고 있으므로 이 결과는 사람에게도 적용 가능하다. 선충의 60% 수명 증가를 사람에 대입하면 150세를 훌쩍 넘어선 170세까지 수명 연장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50세에 숨진 중국의 진시황이 벌떡 일어날 만한 연구결과이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으려고 샅샅이 조사한 대상은 무수한 약초들이다. 반면 스웨덴 연구진은 365∼900일의 다양한 수명을 가진 실험용 쥐들의 유전자 정보를 정밀 조사했다. 이 쥐들이 보유한 480만 개의 유전자 정보를 조사해 장수 관련 유전자 세 개를 발견했다. 그리고 이 유전자를 조절하면 실제로 수명이 늘어난다는 것을 선충을 사용해 확인했다. 놀랍게도 세 개 장수유전자들은 우리가 섭취한 음식을 분해해 에너지를 내는, 즉 에너지 대사와 관련된 유전자였다. 음식을 통한 에너지 섭취를 줄이면 세포에 두 가지 혜택이 돌아온다. 하나는 ‘보일러’의 연소 속도가 느려져 몸에 해로운 부산물이자 노화의 주범으로 일컬어지는 활성(유해)산소가 덜 생성된다. 다른 하나는 먹거리가 부족한 위기 상황임을 감지한 세포들이 ‘보일러’의 효율을 최대로 높이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먹을 것이 부족한 환경에서 살아남는 법을 몸으로 직접 터득한 사람이 더 오래 산다는 얘기다.

이 연구의 흥미로운 점은 에너지를 줄이는 ‘자극’은 어릴 때 받아야 효과적이지, 성인이 돼서는 ‘약발’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장수도 조기 교육이 필요한 셈이다. 포유류를 비롯한 동물의 경우 음식 섭취량이 적을수록, 다시 말해 대사속도가 느릴수록 수명이 길다.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세계 장수지역 100세 이상 장수노인들의 첫 번째 공통점이 소식(小食)이다. 하지만 소식은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 한 알만 먹으면 장수유전자를 자극해 소식할 때와 같은 효과를 제공하는 ‘장수 알약’은 없을까? 스웨덴 연구진이 ‘장수 물질’을 찾았다. 포도에 든 레스베라트롤을 선충에게 먹였을 때 실제로 수명이 연장된다는 것을 보여준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게다가 이런 방법으로 수명이 연장된 경우 건강상태도 나아져 나이가 들어서도 근육이 튼튼하게 유지된다. 즉 100세에도 앉거나 누워만 지내지 않고 자전거를 타는 진정한 장수 노인이 탄생한다는 얘기다.

뇌의 ‘쓰레기’인 베타 아밀로이드가 쌓인 모습으로 치매의 원인이다.
과다한 인슐린이 세포 쓰레기 양산
2013년 유명학술지인 ‘국립과학회지(PNAS)’와 ‘플로스(PLoS)’엔 인슐린이 제대로 일해야만 세포 내에 쓰레기가 쌓이지 않아 장수하게 된다는 연구결과들이 발표됐다. 보일러 배관에 쓰레기가 쌓이면 보일러가 망가지거나 주춤거린다. 세포도 마찬가지다. 연료, 즉 음식이 좋아야 쓰레기가 덜 생겨 ‘씽씽’ 돌아간다. 당(糖)이 금방 만들어지는 음식, 예를 들면 하얀 쌀밥·밀가루 등 흰색의 탄수화물은 혈액 속의 포도당, 즉 혈당을 빨리 높인다. 따라서 ‘혈당을 낮추는 호르몬’인 인슐린을 늘 많이 필요로 한다. 비(非)정상적으로 높은 인슐린은 세포 쓰레기를 만드는 메신저 역할을 한다. 인슐린 분비를 정상으로 돌리는 일이 장수의 두 번째 비결이라고 보는 것은 그래서다.

포도당 등 단순당(單純糖)이 많은 식사를 한 쥐의 수명이 20%나 짧다는 연구결과는 당을 급히 높이는 식사가 단명(短命)의 주범임을 시사한다. 천천히 씹는 현미밥보다 ‘후다닥’ 먹어치우는 흰 쌀밥이 혈당을 빠르게 높여 2형(성인형) 당뇨병이나 심혈관 질환 등 건강상 문제를 더 자주 일으킨다. 과잉의 인슐린에 의한 세포의 통신 불통이 생기는 곳은 ‘보일러’인 미토콘드리아뿐만 아니라 뇌·근육까지 포함된다.

반면 콩·씨앗·통밀·채소는 포도당을 천천히 얻게 한다. 또 식사를 적게 하면 낮아진 인슐린이 뇌에 신호를 보내서 세포 내의 ‘청소’ 유전자를 깨운다. 이 ‘청소’ 유전자들은 근육의 쓰레기를 없애고 근육을 회춘시켜 수명을 늘린다. 치매의 일종인 알츠하이머병도 뇌 세포에 ‘베타 아밀로이드’라는 비정상 쓰레기가 쌓여서 생긴다.

세포 ‘보일러’의 속도를 낮추고 세포 내 통신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 150세 장수의 비결. 일러스트 박정주
2013년 12월, 유명 학술지인 ‘셀 리포트(Cell Report)’엔 장수와 관련된 두 가지 열쇠, 즉 ‘보일러’(미토콘드리아)의 ‘불꽃’을 낮추고 인슐린 통신망을 보수하는 일을 동시에 하면 수명이 5배나 늘어난다는 연구결과가 소개됐다. 선충에서 수명이 5배 늘어나면, 사람은 400∼500살까지 산다는 꿈같은 얘기다. 300년을 산다는 거북이가 놀라서 뒤집어질 숫자다. 이처럼 장수유전자는 하나가 아니라 두 개가 합쳐진 ‘세트(set)’라야 더 강력한 장수 효과를 발휘한다. 122세까지 산 클레망 할머니의 예를 보자. 할머니의 5대 선조들은 모두 같은 지역의 다른 사람들보다 평균 10.5년 더 살았다. 이는 환경보다 유전자가 장수에 더 중요하다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장수노인들에게서 하나의, 결정적인 장수유전자를 아직 찾지 못했다. 장수유전자가 세트라는 방증이다. 장수유전자가 세트인 만큼 장수를 위한 대책도 복합처방이 효과적이다. 선충에서 얻은 결과에 불과할지라도 지금의 연구추세라면 인간 최고수명 150살이 가능하지 않을까? 150달러를 ‘예’ 측에 배팅한 후손들이 즐거워할 일이다. 150살 노인은 마지막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어릴 때부터 장수교육 해야 효과적
최대 수명이 150살까지 늘어나도 말년을 병원에서 ‘끙끙’ 앓고 보낸다면 긴 수명이 그리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친구의 장인처럼 생의 마지막 날까지 자전거를 타고 장기 훈수를 두며 소파에서 잠들듯이 삶을 마감하는‘행복한 죽음’을 누구나 원한다. 하지만 이런 자연사(自然死)는 국내의 경우 10% 이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만성질환·암 등으로 말년을 고통으로 보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서울 시민의 평균수명은 80.4세인데 아프지 않고 사는 ‘건강수명’은 73.9세다. 마지막 6.5년은 병치레로 보낸다. 한국의 평균수명은 일본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와 비슷하지만 병치레 기간은 더 길다. 소득이 낮을수록, 건강의료 기반이 나쁠수록 병치레 기간은 늘어난다. 소득의 차이가 병치레 기간을 좌우한다. 후진국의 노인들이 말년에 더 고생한다는 얘기다.

최대 수명이 120세에서 30년 늘어나면 인간은 그만큼 더 행복해질까?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을 이렇게 설명했다. “사랑스러운 여인과의 30분 기차여행은 5분처럼 짧지만, 싫은 사람과의 5분 여행은 30분보다 길다.” 오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사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는 것이 수명의 상대성 이론이다.

골목에서 친구들과 구슬치기에 여념이 없던 아이도 엄마가 “이제 저녁이다. 그만 들어와 저녁 먹어야지”라고 부르면 흙을 털고 친구들과 아쉬운 이별을 해야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제일 중요한 일은, 좋은 친구들과 잘 노는 것이 아닐까? 진정한 장수란 150살이라는 수명의 길이가 아니고 무엇을, 누구와, 어떻게 했는가 하는 수명의 깊이일 것이다.



김은기 서울대 화공과 졸업. 미국 조지아텍 공학박사. 한국생물공학회장 역임. 피부소재 국가연구실장(NRL) 역임. 한국과학창의재단 STS사업단에서 바이오 콘텐트를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www.bio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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