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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 칼럼] 바흐를 들을 때면 왜 연주자를 더 주목할까

중앙선데이 2014.03.02 02:06 364호 27면 지면보기
하이팅크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8번 음반. 광포함에서 이 곡을 초연한 므라빈스키 등 소련 지휘자들의 연주를 능가한다. [Decca]
“공습이닷!” 일행은 꼴깍 침을 삼키며 숨을 죽였다. “두두두두 다다다다!” 과연 무시무시한 전폭기 소리의 아수라장이 펼쳐지는데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저 곡 연주를 영상물로 본 적이 있어요. 지휘자 므라빈스키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곡을 마치자 고개가 푹 꺾이면서 쓰러질 것 같더라고요.” 음악학 전공으로 10여 년째 독일에 유학 중인 젊은 친구의 말이다. 사진기자 최가 거들었다.

[詩人의 음악 읽기] 줄라이 홀의 레코드 음악회

“저 곡은 반드시 지금 틀어 놓은 베르나르드 하이팅크의 연주여야 합니다. 다른 누구도 저만큼의 에너지를 낼 수가 없어요.” 옆자리의 증권사 간부가 고개를 크게 주억거린다. “암암, 하이팅크만 한 연주가 다시 없지요. 웬만한 지휘자는 힘이 달려서 달려들지도 못해요.” 명동 판가게 클림트의 주인장 김세환은 다음 차례 음반으로 콘트라베이스 연주의 장인 게리 카의 젊은 시절 앨범을 골라왔다. 피아노 반주와 더불어 에른스트 블로흐의 잔잔한 베이스 곡이 깔리니 숨을 좀 돌릴 것 같다. 맥주를 건넨다. 바이젠슈테파너라는 이름도 어려운 독일맥주인데 강한 향이 두드러진다.

어떤 밤의 내 작업실 줄라이 홀 풍경이다. 음악깨나 듣는다는 선수들이 엮여져 왔는데 각자 비장의 정보와 감흥을 한 아름씩 풀어놓는다. 음반을 엄청나게 내놓지만 이제껏 한번도 특별한 존재로 여겨본 적이 없는, 그래서 텔레비전을 틀면 언제나 화면에 있는 강부자·사미자씨처럼 여겨왔던 지휘자가 하이팅크였다. 그런 그의 특별한 연주, 쇼스타코비치 8번 교향곡 3악장을 선수들은 찾아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과 나치 독일군의 전쟁을 묘사했다는 것. 철모에 별이 그려진 소련병사의 부릅뜬 시선이 인상적인 이 음반의 의미와 가치를 나만 모르고 있었다.

나만 모르고 다른 선수들은 다 아는 음악회가 계속 펼쳐졌다. 음악광인 사진기자 최가 열변을 토한다. “왜 바흐 곡은 언제나 작곡가보다 연주자에만 관심들을 쏟는지 모르겠어요. 바흐가 영주를 모시고 긴 출장을 다녀왔더니 아내가 죽어 있는 거예요. 그 기막힌 심정을 담은 곡이 바이올린과 챔발로를 위한 일련의 소나타 곡들(BWV 1014~1019)이죠. 이것만큼 애절하게 슬픔의 극한을 표현하는 곡이 또 없어요.” 그의 목소리 톤이 계속 높아졌다. “아무리 여러 연주자 것을 찾아 들어 봐도 바흐의 애통한 심정을 간파하고 표현한 바이올리니스트는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뿐입니다. 한스 피쉬너가 챔발로로 반주한 녹음 말이죠. 혹시 그 음반 있어요?”

나는 생각이 나지 않아 없을 거라고 답변했다. 유학 전에 판가게 알바도 한 바 있다는 독일파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뒷벽의 바흐 칸을 찾아가 뒤진다. 소년과 양이 그려진 그 앨범이 버젓이 있었다. 바흐 아내의 죽음도, 그 심정을 제대로 표현했다는 오이스트라흐의 음반이 내게 있는지도, LP 3만 장 소유자인 나는 모르고 있었다.

저녁 7시부터 새벽 두어 시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이어진 레코드 음악회는 흥분과 열광 속에 펼쳐졌다.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의 모차르트 아리아는 얼마나 사랑스러웠던가. 재닛 베이커의 슈베르트 노래는 또 얼마나 품위 있었던가. 이보 포고렐리치의 바흐 영국 조곡 연주는 글렌 굴드와 얼마나 달랐던가. 쿠르트 바일의 ‘맥 더 나이프’는 바일의 모든 노래를 독점적으로 부르다시피 하는 아내 로테 레냐가 아니고 마르타 슐라메의 음성으로 들었다. 유머의 정신이 더 돋보였다.

계속 진도를 나가다보니 장르를 넘나들게 되어 록그룹 나자레스의 10분짜리 대곡 ‘플리즈 돈 주다스 미(Please Don’t Judas Me)’가 울려 퍼지고 엘가르트 형제의 스윙 경음악 연주까지 들썩거렸다. 장르 크로스오버의 정점은 음악 쪽 선수들 대부분이 경외해 마지않는 가수 김두수(작은 사진)의 ‘자유혼’ 음반이 찍었다. ‘보헤미안’이나 ‘새벽비’ 같은 노래가 들려올 땐 아무도 입을 떼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이런 뮤지션이 있었다니….

내가 제시한 비장의 선수는 바이올린의 지노 프란체스카티였다. 그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줄 아는 음악가라고. 그의 모든 음반을 구입한다고. 착한 동네 아저씨 같은 인상의 프란체스카티가 라벨의 소나타를 연주하는데 모두가 넋을 잃었다. 뜻밖에 귀기 어리고 강력한 연주였다.
밤은 짧고 음악의 향연은 끝이 없이, 그렇게 하루를 살았다. 아침 7시 너머까지 홀로 하크니스 스피커를 두드려댔다. 하나도 외롭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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