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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의 음악 읽기] 줄라이 홀의 레코드 음악회
어떤 밤의 내 작업실 줄라이 홀 풍경이다. 음악깨나 듣는다는 선수들이 엮여져 왔는데 각자 비장의 정보와 감흥을 한 아름씩 풀어놓는다. 음반을 엄청나게 내놓지만 이제껏 한번도 특별한 존재로 여겨본 적이 없는, 그래서 텔레비전을 틀면 언제나 화면에 있는 강부자·사미자씨처럼 여겨왔던 지휘자가 하이팅크였다. 그런 그의 특별한 연주, 쇼스타코비치 8번 교향곡 3악장을 선수들은 찾아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과 나치 독일군의 전쟁을 묘사했다는 것. 철모에 별이 그려진 소련병사의 부릅뜬 시선이 인상적인 이 음반의 의미와 가치를 나만 모르고 있었다.
나만 모르고 다른 선수들은 다 아는 음악회가 계속 펼쳐졌다. 음악광인 사진기자 최가 열변을 토한다. “왜 바흐 곡은 언제나 작곡가보다 연주자에만 관심들을 쏟는지 모르겠어요. 바흐가 영주를 모시고 긴 출장을 다녀왔더니 아내가 죽어 있는 거예요. 그 기막힌 심정을 담은 곡이 바이올린과 챔발로를 위한 일련의 소나타 곡들(BWV 1014~1019)이죠. 이것만큼 애절하게 슬픔의 극한을 표현하는 곡이 또 없어요.” 그의 목소리 톤이 계속 높아졌다. “아무리 여러 연주자 것을 찾아 들어 봐도 바흐의 애통한 심정을 간파하고 표현한 바이올리니스트는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뿐입니다. 한스 피쉬너가 챔발로로 반주한 녹음 말이죠. 혹시 그 음반 있어요?”
나는 생각이 나지 않아 없을 거라고 답변했다. 유학 전에 판가게 알바도 한 바 있다는 독일파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뒷벽의 바흐 칸을 찾아가 뒤진다. 소년과 양이 그려진 그 앨범이 버젓이 있었다. 바흐 아내의 죽음도, 그 심정을 제대로 표현했다는 오이스트라흐의 음반이 내게 있는지도, LP 3만 장 소유자인 나는 모르고 있었다.
저녁 7시부터 새벽 두어 시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이어진 레코드 음악회는 흥분과 열광 속에 펼쳐졌다.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의 모차르트 아리아는 얼마나 사랑스러웠던가. 재닛 베이커의 슈베르트 노래는 또 얼마나 품위 있었던가. 이보 포고렐리치의 바흐 영국 조곡 연주는 글렌 굴드와 얼마나 달랐던가. 쿠르트 바일의 ‘맥 더 나이프’는 바일의 모든 노래를 독점적으로 부르다시피 하는 아내 로테 레냐가 아니고 마르타 슐라메의 음성으로 들었다. 유머의 정신이 더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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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시한 비장의 선수는 바이올린의 지노 프란체스카티였다. 그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줄 아는 음악가라고. 그의 모든 음반을 구입한다고. 착한 동네 아저씨 같은 인상의 프란체스카티가 라벨의 소나타를 연주하는데 모두가 넋을 잃었다. 뜻밖에 귀기 어리고 강력한 연주였다.
밤은 짧고 음악의 향연은 끝이 없이, 그렇게 하루를 살았다. 아침 7시 너머까지 홀로 하크니스 스피커를 두드려댔다. 하나도 외롭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