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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 세상을 말하다] 百寶箱<백보상>

중앙선데이 2014.03.02 02:11 364호 27면 지면보기
『동주열국지』의 작가 명(明)나라 풍몽룡(馮夢龍)의 소설 중 ‘두십낭이 보물상자를 강물에 던지다(杜十娘怒沈百寶箱)’란 작품이 있다. 1906년 ‘대한매일신보’에 한글 신소설 ‘청루의녀전(靑樓義女傳)’으로 번안돼 국내에도 소개됐다.

임진왜란이 터진 16세기 말 명나라는 파병 자금 마련을 위해 국자감 입학자격을 판다. 강남 사오싱(紹興)의 부잣집 장남 이갑(李甲)은 이참에 베이징 국자감에 입학한다. 그는 친구 류우춘(柳遇春)과 기방을 찾아 두십낭(杜十娘)을 만난다. 첫눈에 반한 이갑과 두십낭은 부부처럼 한 해를 보낸다. 이갑의 두둑했던 주머니가 비어가자 기생어미의 환대도 사라진다. 기생어미는 두십낭에게 열흘 안에 은 300냥을 가져오면 자유를 주겠다고 약속한다.

이갑은 귀가 여비를 핑계로 돈을 빌려보겠노라 약속한다. 류우춘은 기생어멈이 너를 쫓아낼 구실이라며 두십낭과 헤어지라고 부추긴다. 두십낭은 모아둔 150냥을 주며 나머지를 구해오라 말한다. 류우춘은 “참 세심한 여인”이라며 친구가 아닌 두십낭을 위해 150냥을 건넨다. 돈을 마련한 두십낭은 기적(妓籍)을 벗고 자유를 얻는다. 기방의 자매들이 주연을 베풀고 자물쇠로 채운 ‘보물상자(百寶箱)’를 선물로 준다.

창장(長江)을 건널 무렵 소금상인의 자제 손부(孫富)가 두십낭을 보고 한눈에 반한다. 손부는 술과 감언이설로 이갑을 꾀어 은 1000냥과 두십낭을 바꾸자고 제안한다. 기녀와 사귐을 반대해 온 부친을 걱정하던 이갑은 제안을 받아들인다.

사정을 들은 두십낭은 냉소를 지은 채 동의한다. 손부가 1000냥을 들고 찾아오자 두십낭은 보물상자를 꺼낸다. 수만냥어치의 금은보화를 강에 던진 뒤 두심낭 자신도 상자를 안고 강물로 뛰어든다. “눈은 있으되 눈동자가 없다(有眼無珠)”는 두십낭의 일갈에 이갑은 실성하고, 손부는 병을 얻어 세상을 뜬다. 한편 국자감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던 류우춘은 창장에 이르러 세숫대야를 강물에 빠뜨린다. 어부를 시켜 찾게 하니 상자를 건져온다. 그날 밤 두십낭이 꿈에 나타나 150냥의 보답으로 금은보화가 마르지 않는 보물상자를 준다고 말한다.

올 초 “통일은 대박”이란 말에 주한 중국특파원들이 고민에 빠졌다. ‘대사(大事)’라 송고했지만 뜻이 달라서다. 대박을 중국어로 두십낭의 ‘바이바오샹(百寶箱·백보상)’이라 하면 어떨까. 통일은 대박일 수 있지만 자칫하면 놓치기 쉽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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