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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환의 시대공감] 언론자유 세계 57위, 누구 탓인가

중앙선데이 2014.03.02 02:34 364호 31면 지면보기
국경 없는 기자회(Reporters without Borders)라는 단체가 있다. 언론자유를 신장하기 위해 프랑스의 라디오 기자 로베르 메나르(Robert Menard)가 1985년에 창설한 국제적인 비정부기구다. 구속당한 언론인의 석방을 촉구하거나 살해된 언론인 유가족을 돕고, 미디어 규제 움직임을 감시하는 일 등을 맡고 있다.

이 기자회는 2002년부터 해마다 각국의 언론자유지수(Worldwide press freedom index)를 발표해 왔다. 지수 산정을 위해 세계 18개 비정부기구와 각국의 특파원, 언론인, 연구자, 법률전문가, 인권운동가 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다. 설문 항목에는 미디어의 법제 환경, 공공미디어와 외국 언론에 대한 정부 차원의 조치, 언론에 대한 정부의 월권행위 등이 들어 있다. 물론 미디어나 언론인에 대한 정부의 직간접적 공격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언론자유지수는 한 나라가 언론의 자유를 어느 정도로 보장하는지를 확인하는 지표다. 이 지수를 그 나라 민주주의 지수로 이해하는 이도 많다. 언론자유를 보장하는 나라일수록 민주주의가 잘 작동할 터이므로 언론자유지수로 민주주의 정도를 가늠하는 것은 그럴 법한 일이다.

이 단체가 2013년의 상황을 조사해 발표한 2014년도 언론자유지수에 따르면 핀란드·네덜란드·노르웨이·룩셈부르크·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가 최상위권을 석권했다. 최하위권은 투르크메니스탄과 북한, 에리트레아 세 나라 차지다. 기자회는 이 꼴찌 삼국을 정보자유가 존재하지 않는 나라로 규정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몇 등인가? 조사대상 180개국 가운데 57위를 기록했다. 2011~2012년에 44위였다가 2013년에 50위로 떨어지더니, 올해 또 일곱 단계 하락했다. 검찰이 ‘나는 꼼수다’의 김어준 등을 기소한 사실이 악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하다. 기자회는 우리나라 상황을 언급하며 독립언론인 김어준·주진우가 팟캐스트 풍자방송을 통해 박근혜 후보의 남동생과 부친에 대해 ‘잘못된 정보’와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을 내보낸 혐의로 기소됐다고 소개했다. MBC나 YTN이 해직언론인을 복직시키지 않은 것도 부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국가정보원이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 사건도 지수를 떨어트리는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2년에 이 기자회가 우리나라 언론자유지수를 39위라고 발표하자 D일보는 사설을 통해 이 순위가 경제규모 12위에 걸맞지 않는 부끄러운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우리 언론자유지수는 그 뒤로 더 떨어져 2003년에 49위, 2004년에 48위를 기록했다가 노무현 정부 시절에 반등해 2005년에 34위, 2006년에 31위로 올라섰다. 이때의 31위가 우리 언론자유지수 등위의 최고 기록이다. 노무현 정부와 언론의 갈등이 고조된 2008년에는 47위로 떨어졌다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 69위로 곤두박질쳤다. 이때의 우리나라 순위는 이 기자회가 지수를 발표한 이래 최하위에 해당한다.

그럼 언제쯤 우리 언론자유지수가 경제력에 걸맞은 수준으로 반등할 것인가? 나꼼수 사건 같은 것이 다시 났을 때 진보나 보수를 가리지 않고 모든 미디어가 한목소리로 정부를 비판한다면 결과적으로 언론자유가 획기적으로 개선돼 언론자유지수는 세계 10위권으로 껑충 뛰어오를 것이다. 반대로 정부가 진보 언론인이나 미디어를 공격할 때 보수 미디어가 정부 태도를 지지한다거나 정부가 보수 언론인이나 미디어를 공격할 때 진보 미디어가 정부 조치를 옹호한다면 언론의 자유도, 언론자유지수도 상승할 리 없다.

우리에게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있다. 김대중 정부가 메이저 신문을 공격했을 때 진보 미디어는 정부 곁에 서서 북을 쳤다. 이명박 정부가 MBC나 나꼼수를 공격했을 때 보수 미디어는 정부의 공격에 맞장구를 쳤다. 언론의 자유는 언론인이나 미디어가 아니라 사법부가 지켜주었다. 언론인이나 미디어가 언론의 자유보다 정파적 이해에 집착하는 행태는 당분간 큰 변화가 없을 것 같다.

언론의 자유는 언론인이 힘을 합해 지켜야 한다. 언론이 정파성에 얽매여 언론의 자유 자체를 자의적으로 해석할 경우 그 후과는 부메랑이 되어 언론의 자유 위축으로 귀결한다. 언론인이나 미디어가 정파를 떠나 언론의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를 두둔할 때 우리나라는 비로소 선진국 문턱을 훌쩍 넘게 될 것이다. 그런 날이 와야 한다.



김민환 고려대 미디어학부 명예교수. 고려대 신방과 및 동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전남대고려대 교수, 고려대 언론대학원장, 한국언론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소설 『담징』(201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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