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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칼럼] 죽음의 혼, 귀태의 환생

중앙일보 2014.02.24 00:01 종합 35면 지면보기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편히 잠드시라.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을 테니까.’ 히로시마 평화기념관 안의 위령비에 새겨진 글이다. 누구의 어떤 과오를 말하는 것인가. 위령비 옆에 비치된 영문 해설에는 ‘우리의 악행’으로 번역돼 있다(We shall not repeat the evil). 비문을 쓴 사이가 다다요시도 ‘히로시마 시민이자 세계 시민인 우리의 잘못’이라고 단언했다.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죄악을 뉘우친다는 뜻이다. 평화기념관은 원폭 투하 때 파괴된 옛 상업전시관 건물로,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가공할 핵폭탄의 상처를 그대로 간직한 평화의 상징물, 그 역설의 현장이다.



 그러나 위령비의 문구를 다르게 읽는 일본인들이 꽤 많은 듯하다. 전쟁을 일으킨 것이 과오가 아니라 전쟁에 진 것이 과오라고 통탄하는 사람들, 재무장을 꿈꾸는 군국주의자들 말이다. 저들은 야마토다마시(大和魂)를 입에 달고 산다. 일본 고유의 민족정신이라지만, 일왕에게 충성을 다하며 신민(臣民)의 혼을 불사른다는 전근대적 국수주의(國粹主義)를 넘어서지 못한다.



 어떻게 신민의 혼을 불사르는가. 사무라이들은 배를 가른다. 하라키리(腹切り), 칼로 자신의 배를 가르고 누군가 뒤에서 목을 쳐주는 엽기적 자살방식이다. 극도의 고통을 비장하리만치 침착하고 세련된 몸짓 속에 감춘 죽음의 제의(祭儀), 자기의 죽음에 타인을 공범으로 끌어들이는 집단적 파멸의식이다. ‘금각사’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는 군국주의(軍國主義)의 부활을 외치며 스스로 배를 갈랐다. 죽음의 혼을 부르는 마조히즘의 컬트, 음울한 사(死)의 찬미다.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은 자살 공격 직전 일본도로 자신의 배를 가른 다음 전투기와 함께 연합군의 군함을 덮쳤다. 가미카제 특공대를 창설하고 3843명의 앳된 청소년들을 자살 특공의 도구로, 수많은 연합국 장병들을 희생자로 끌어들인 해군중장 오오니시 다키지로도 종전 직후 할복자살했다.



 죽음의 광신도들은 혼자 죽는 법이 없다. 누군가를 죽음의 동반자나 희생자로 함께 물고 들어간다. 동반자살을 신주우(心中)라고 명예롭게 여긴다.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인들의 정중하고 예의 바른 모습과 그 내면에 숨겨진 파괴 본능을 ‘국화와 칼’이라는 상반된 이미지로 표현했다. 처연(悽然)한 마조히즘 속에 감춰진 냉혹한 사디즘, 평화헌법 뒤에 웅크린 전쟁 본능, 역사교과서 안에 도사린 반역사적 쇼비니즘…, 국화와 칼이다.



 역사소설가 시바 료타로는 러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까지의 다이쇼·쇼와(大正·昭和) 시대를 ‘귀태(鬼胎)’라고 불렀다. 신주불멸(神州不滅)의 환상에 빠져 무모하게 침략전쟁을 벌이던 일본은 핵폭탄으로 처참한 종말을 맞았다. 군국주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귀태, 사악한 죽음의 혼이었다.



 그 귀태가 다시 꿈틀대고 있다. “나를 군국주의자라고 부르려면 불러라.” 일본 총리 아베 신조의 커밍아웃이다. “침략은 정의된 것이 없다.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1급 전범이었던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다운 발언이다. 일본 공직자들의 망언 시리즈는 끝이 없다. “위안부는 어느 나라에나 있었다, 안중근은 테러리스트다, 난징 대학살은 없었다, 일왕은 현세에 살아있는 신이 됐다….” 역사의 물결, 문명의 진보를 거스르는 미망(迷妄)이 광기에 가깝다. 침략전쟁의 실상을 모르는 일본의 젊은 세대를 또다시 가미카제 식의 집단적 파멸의식으로 내몰겠다는 것인가. 아베의 일본은 정상국가의 궤도를 멀리 일탈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아베 정권의 극우 포퓰리즘을 비판하는 양심적 지식인들과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군대 보유를 금지한 평화헌법 제9조를 수호하는) ‘9조회’, (식민 지배를 반성하고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발전시키는 모임’ 등이 잇따라 결성됐다. 여론조사 결과는 일본 국민의 과반수가 평화헌법 폐기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의 정상국가화는 아직 가능성이 남아 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관 안에 낡은 회중시계 하나가 전시돼 있다. 멈춰선 시각은 8시15분, 원자폭탄이 떨어진 1945년 8월 6일 아침의 바로 그 시각이다. 일본 집권세력의 의식도 그때에 멈춰 있는 듯하다. 그처럼 실성한 정신 상태라면, 언젠가는 해상자위대가 독도 해변에 상륙정을 들이대는 군사적 망동(妄動)의 가능성도 부정하기 어렵다. 죽음의 혼, 귀태의 환생을 좌시할 수 없는 이유다.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는 북한에만 절실한 것이 아닌 모양이다. 일본이 이성과 양심의 선린(善隣)으로 거듭날 때까지는.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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