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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마케팅 사절 … 믿고보는 연극 만들어야죠

중앙선데이 2014.02.21 23:31 363호 8면 지면보기
요즘 공연계엔 화려한 무대와 스타 캐스팅을 자랑하는 대형 공연이 즐비하다. 대부분 막대한 로열티를 주고 들여온 해외 라이선스 공연이다. 하지만 우리 창작진의 진짜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공연은 사실 소극장에 있다. 웅장한 스케일은 없지만 창의적인 스토리, 기상천외한 반전에 적절한 유머코드까지 갖춘 밀도 있는 전개로 ‘깨알 재미’를 선사하는 무대들은 떠들썩한 광고 없이도 입소문을 타고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공연계 흥행브랜드 ‘김수로 프로젝트’ 프로듀서 김수로

믿고 보는 브랜드도 등장했다. 2004년부터 ‘대중연극의 본산’을 자처해 온 ‘연극열전’에 이어 2011년 ‘김수로 프로젝트’가 출범했다. 이름 그대로 배우 김수로(44)가 제작하는 작품들이다. 1탄 연극 ‘발칙한 로맨스’에서 8탄 뮤지컬 ‘아가사’까지, 재미와 작품성을 고루 인정받으며 2년여 만에 공연계 흥행 보증수표로 떠올랐다. 지난해 말에는 1탄 ‘발칙한 로맨스’ 재공연을 비롯해 6탄 ‘연애시대’, 7탄 ‘머더발라드’, 8탄 ‘아가사’를 한꺼번에 쏟아내는 ‘폭풍 추진력’을 보여줬다.

3월 1일에는 올해 첫 작품인 9탄 ‘밑바닥에서’를 올린다. 러시아 사회주의 리얼리즘 연극을 대표하는 막심 고리키의 작품이다. 그간 대중적인 라인업으로 승부했던 김수로 프로젝트로서는 의외의 작품이다. 처음 도전하는 고전인 데다 프로듀서 김수로가 직접 배우로 나섰다. ‘밑바닥에서’ 막바지 연습에 분주한 그를 찾아갔다.

“요건 좀 지워주세요.” 그의 첫마디였다. 서울 성북동의 한 빌딩 지하, ‘밑바닥’에 마련된 연습실에서 마주한 김수로의 입가엔 콩알만한 뾰루지가 나 있었다. “고전작품 하느라 스트레스가 심해서” 생긴 것이란다.

인터뷰를 앞두고 정신 없이 웃기고 부산스러운 만남을 기대했었다. 김수로가 누군가. ‘달마야 놀자’ ‘주유소습격사건’ 등 코믹 영화로 이름을 알렸고, 지난해 예능 프로그램 ‘진짜사나이’로 방송사 연예대상 최우수상까지 수상한 ‘개그맨 웃기는 배우’ 아닌가. 그런데 이 남자, 전혀 웃기지 않았다.

알코올중독자 배우 역을 연습하며 허름한 실내복 차림으로 한참을 울부짖고 소리치다 나온 그는 여전히 역할에 푹 빠져 있었다. 사진 촬영을 위한 어떤 꾸밈도 없이 헝클어진 머리에 영락없는 알코올중독자 품새로 마주앉은 그의 모습이 당황스러웠지만 나름 ‘밑바닥’ 리얼리티가 전해져 굳이 ‘분장’을 요구하지 않았다. 대화를 나눌수록 날카로움을 더하는 눈빛에서 ‘매의 눈’으로 작품을 발굴하는 프로듀서의 포스가 엿보이긴 했지만 그는 결코 프로듀서로서, 배우로서 한순간도 ‘가오’를 잡지 않았다. ‘반백 년 살아보니 별거 없더라’는 달관한 표정 뒤로 ‘별거 없으니 채워 넣어야 한다’는 욕심이 번뜩일 뿐.

-상업적인 작품을 해오다 웬 고전인가요.
“너무 그쪽으로 간 것 아니냐 오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지금껏 대중이 편하게 볼 수 있는 것들을 먼저 선택했다면, 공연 쪽에 좋은 일을 하자고 시작한 일인 만큼 이제 프로젝트가 많이 올라오다 보니 좋은 작품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한 것 같았어요. 요즘 가볍게 웃는 데 치우치는 연극이 많으니까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고전을 좀 쉽게 받아들이도록 작업해 보자는 생각으로 하게 됐습니다.”

-그럼 왜 ‘밑바닥에서’인가요.
“셰익스피어 작품을 하려 했는데 450주년이라 다들 하더군요. 관객들의 선택 폭을 넓혀 주고 싶었고, 평소 이 작품을 소극장에서 해보고 싶었던 마음도 컸어요. 2009년 토월극장에 올렸을 때 극장이 너무 커서 아쉬움이 남았거든요. 밑바닥 삶을 바로 옆에서 숨결까지 느껴야 하는 작품이니까. 이번엔 숨소리·땀방울·눈물까지 관객들이 다 가져갈 수 있는 공연으로 만들 겁니다. 셰익스피어와 체호프, 아서 밀러의 작품들도 차차 해야죠.”

계속 연기 공부하고 싶어 배우로도 출연
김수로는 서울예대를 거쳐 극단 ‘목화’에서 연기를 시작한 정통 연극배우 출신이다. 1993년 ‘투캅스’ 단역으로 영화에 데뷔한 이후 충무로를 오가며 활동하다 2000년 연극판을 떠났던 그를 무대로 다시 부른 작품이 ‘밑바닥에서’였다. ‘10년 안에 돌아오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영화 하면서도 늘 무대로 돌아올 날을 꿈꿨어요. 당시 ‘패밀리가 떴다’에 출연 중이었는데, 예능을 하다 보면 연기의 에너지들이 소멸되거나 숨어버리거든요. 그걸 일깨워주는 작업이 연극이에요.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진짜 사나이’를 하다 보니 연극이 더 절실하게 느껴져요.”
그는 소치 올림픽에 방송사 특집 프로그램 MC로 따라갈 예정이었지만 연극 때문에 포기했다. 2006년 월드컵 때 꼭짓점 댄스로 응원 열기를 주도했을 정도로 스포츠 매니어인 그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아쉽긴 했죠. ‘진짜 사나이’ 때문에 연습을 일주일 빠지는데, 소치 올림픽 때문에 또 빠진다면 관객에게 너무 죄송한 일이죠. 믿고 보러 오시는데 배신을 하면 안 되겠다 싶어서 과감하게 소치를 접고 ‘밑바닥에서’를 택했어요.”

-제작자가 굳이 출연할 필요는 없지 않나요.
“계속 공부를 하려는 거죠. 연기를 놓지 않고 싶으니까. 드라마나 영화를 안 한다고 연기를 포기한 건 아니거든요. 예능이나 제작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내 것’은 채워놓아야죠. 연기를 계속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에요.”

-알코올중독자 배우가 중요 배역은 아니죠.
“연출은 ‘페페르’라는 러브스토리가 있는 역을 하라 했지만 그 역은 많이 했었어요. 그걸 하면 공부가 덜 되죠. 쉽게 생각하고 게을러질 테니까. 예전에 이 작품을 할 때 제 대학 동기가 이 역을 굉장히 잘해서 다음에 꼭 해봐야겠다는 열망도 있었죠. 사실 제 이미지는 남자답고 박력 있는 페페르가 더 맞아요(그는 결코 웃지 않았다). 하지만 공부를 해서 새로운 연기를 보여주고 싶어 작품을 하는 거지 가진 걸 써먹으려는 작업이 아니거든요.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게 훨씬 뿌듯한 일이라 생각해 자처한 겁니다.”

1 1탄 연극 ‘발칙한 로맨스’(2011) 2 2탄 뮤지컬 ‘커피프린스1호점’(2012) 3 3탄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2012) 4 4탄 연극 ‘이기동체육관’(2012)
“좋은 공연 만나면 배우보다 제작자가 더 멋져 보여”
김수로는 2010년 100석 규모의 연극 ‘이기동 체육관’으로 제작에 입문했다. 직접 출연까지 하면서 ‘배우 인생에 가장 행복한 작품’으로 꼽을 만큼 작품에 반했고, 상업적인 성공까지 거두면서 2011년 10월 김수로 프로젝트를 본격 가동했다. 2년여 동안 한결같이 100~300석 규모의 소극장 공연들로만 누적 관객 30만 명을 돌파했다.

굳이 제작에 뛰어든 이유는 ‘욕심 때문’이었다. “언제부턴가 좋은 공연을 만나면 배우보다 제작자가 멋져 보이더군요. 제 작품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고 싶은데 출연은 1년에 한두 작품밖에 못하니까요. 더 자주 보여주려면 프로듀서를 해야 출연하지 않더라도 제 작품을 보여줄 수 있잖아요.”

그보다 앞서 제작자로 변신한 선배 조재현의 ‘연극열전’과의 차별화에 대해선 “그런 거 없다. 그저 초심만 있을 뿐”이란다. “내가 왜 만들고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중요한 거죠. 대중이 나를 사랑해줬으면 좋겠는데 내가 어떤 무기와 소스를 갖고 사랑 받을 준비를 하느냐는 겁니다. 대중 읽는 눈을 갖되 너무 대중에 흡수되지는 않아야겠죠. 어떤 작품에선 내가 대중에게 배우고, 어떤 작품은 대중이 저에게 배울 수 있는, 그렇게 교묘하게 교집합으로 가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스타 캐스팅이 없는 게 연극열전과 차별점 같은데요.
“제가 부탁할 줄 몰라서 안 해요. 좋게 포장하자면 연극, 이 행복한 작업에 스타들 비위 맞추고 말도 안 되는 개런티 주고 모셔올 필요가 없다는 거죠. 스스로 개런티 내리고 열심히 공부해 보자, 대중과 만나보겠다는 그런 정신의 스타라면 필요합니다. 예전에 목화에서는 스타 한 명 없이도 관객이 꽉꽉 들어차고 잘됐어요. 그때 그 맛을 제가 아는 거죠. 연기 잘하는 배우들과 정신이 똑바른 프로듀서가 대중을 귀하게 여기면 스타가 저절로 찾아올 거란 원대한 이상은 갖고 있습니다.”

-코미디 위주일 거라 생각했는데 스펙트럼이 넓어요. 추구하는 색깔이 뭔가요.
“좋은 공연보다 더 좋은 색깔이 있나요. 굳이 색을 만드는 것은 가둬두는 거죠. 색은 제가 만든다기보다 대중이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배우로서도 코미디만 하지 않았어요. 스파이물, 스릴러 다 했지만 대중이 원하니까 치우쳐진 것뿐이죠. 제 이미지가 코믹하다고 연극마저 그렇게 간다면 재미가 있을까요. 대중이 우리에게 코미디만 찾는다면 목표가 엷어지겠죠. 장르 불문하고 좋은 공연, 재밌는 공연을 찾는 게 우리 정체성입니다.”

5 5탄 음악극 ‘유럽블로그’(2013) 6 6탄 연극 ‘연애시대’(2013) 7 7탄 뮤지컬 ‘머더발라드’(2013) 8 8탄 뮤지컬 ‘아가사’(2013)
“태양의 서커스 같은 브랜드로 키우는 게 목표”
16일 방송된 ‘진짜 사나이’가 대대적인 멤버 교체로 눈길을 끌었지만 김수로의 모습은 여전했다. 당초 그도 하차할 생각이었으나 12월 병장 제대까지 마치고 ‘전역’해 달라는 연출진의 요청에 응하기로 했다. 본인이 원해서가 아니라 ‘의리’ 때문에 출연한 이상 끝까지 ‘의리’를 지켜야겠단다.

예능인 이미지로 굳어지는 것 아니냐 걱정하니 “뭐든 두려워하지 말고 가는 거다”라고 호기롭게 답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현재에 충실할 뿐 뒷일을 걱정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무명시절 반지하 열세 평에 네 식구가 4년 동안 살아봤거든요. 쌀 떨어져 라면으로 6개월을 때워 봤는데 그 이상 뭐가 무섭겠어요. 배우로 안 불러준다고 해도 뭐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삽니다. 그래야 제 맘이 편하니까요.”

그는 2012년 드라마 ‘신사의 품격’으로 변신에 성공했었다. 코믹 이미지를 벗고 ‘멋진 남자’ 이미지로 거듭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셈이다. 그러나 직후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 연극 ‘유럽블로그’를 택해 다시 코믹연기의 진수를 보여줬다. 의외의 행보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잘 됐을 때 연극을 해야 더 많은 관객이 찾아줄 것 같았어요. 이상하게 연극을 하면 쟤 요즘 ‘콜이 없어서’ 그러나 보다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 느낌 주기 싫고 좋은 위치에서 연극을 하고 싶었습니다.”

2009년 나이 마흔에 동국대에 편입해 석사과정 수료까지 앞두고 있는 상황도 그를 다시 보게 한다. 최근에는 『서두르지 말고, 그러나 쉬지도 말고』라는 책까지 냈다. 의외로 학구적인 거냐 물으니 “누가 날 학구적으로 보겠느냐”고 되묻는다.

“부족하니까 채우려는 것뿐이죠. 과거에 공부 좀 했다는 게 뭐가 중요합니까. 지금 하고 있는 게 중요한 거죠. 대학원 들어간 이유도 단순해요. 지금 굳이 연극을 하는 것처럼 그 당시 안민수 교수님 수업을 듣고 싶은 겁니다. 연기 기술을 가르치는 한국의 스타니슬랍스키 같은 분인데, 그분이 대학원 수업만 하시니까. 정확히 얘기하면 대학원을 가려 한 게 아니라 그분한테 개인레슨을 받기 위해 대학원 등록금을 낸 셈이죠. 그렇게 1년을 다니고 나니 졸업 욕심도 생겨 1년 동안 극장 운영, 제작 전반에 대한 공부를 했고, 결과적으로 일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그는 김수로 프로젝트를 ‘태양의 서커스’ 같은 브랜드로 키우는 것이 장기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그 정도 네임 밸류를 갖고 싶다는 겁니다. ‘태양의 서커스’의 ‘뭐’다 하면 ‘뭐’가 중요한 게 아니라 ‘태양의 서커스’가 중요하듯이 아무 설명 없이 김수로 11탄이라고 하면 제목이 뭐든 ‘어, 11탄은 아직 안 봤는데 봐야겠다’는 대화가 흘러가게 하는 거죠. 그 다음 목표로는 옛날 국립극단처럼 제가 월급을 주는 극단을 꾸리는 겁니다. 연기를 출중히 잘하는 단원들이 오직 연극만을 하고 살수 있도록. 연극 학교도 세우고 싶고, 일 년 열두 달 김수로 프로젝트만 올리는 전용극장을 갖고 싶은 건 모든 연극인의 꿈이겠죠.”

꿈이 커서 행복한 남자, 밑바닥까지 가봤기에 세상에 두려울 것도 없다는 이 남자에게도 힘든 게 있을까. 뜻밖에도 “늘 제일 힘든 건 연기”란다. “예전에 연극을 할 땐 비극만 했었는데 영화에서 코믹 캐릭터로 풀린 걸 보면 연기란 후천적 노력보다 재능이 먼저란 걸 느껴요. 공부는 비극을 했는데 재능은 희극에 있으니, 이번 작품도 결코 쉽지 않죠. 하지만 더 좋은 모습으로 거듭나기 위한 내 선택이니 힘들면서도 행복하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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