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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기의 글로벌 포커스]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난 신흥국 위기

중앙선데이 2014.02.23 01:16 363호 18면 지면보기
벌써 2월의 끝이다. 춘삼월이 손짓을 한다. 머지않아 꽃망울이 터지고 푸른 새싹이 돋아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설렌다. 2014년을 맞으며 가졌던 전망과 계획들을 중간 점검해 볼 만한 시점이다.

올 연초 글로벌 경제 상황은 또 한번 시장을 시험에 들게 했다. 신흥국발 위기설이 그것이다. 미국이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을 실행하면서 브라질·아르헨티나·터키 등 신흥국 경제가 추락했다. 이런 위기가 미국·유럽 등 선진국으로 전염될 것이란 우려까지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두 달이 흐른 지금 모든 게 ‘찻잔 속 태풍’이었던 것으로 정리되고 있다. 연초의 한바탕 소용돌이는 역설적으로 글로벌 경제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재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됐다. 결론은 희망을 계속 가져도 좋다는 쪽이다. 글로벌 경제는 2008년 이후 갇혀 있던 깜깜한 터널의 한복판을 지나 출구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대침체로부터의 탈출이자 비정상적 조치들을 정상화하는 과정이다. 다만 아직 체력이 약해 ‘2보 전진-1보 후퇴’의 갈 지(之)자 걸음을 한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했던가. 위기 이후 벌써 6년을 고생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사람들은 침체를 정상으로 여기는 ‘뉴 노멀’과 위기의 일상화에 길들여져 있다. 많은 이가 너무도 태연하게 신흥국 위기의 선진국 전이를 얘기했던 이유다. 하지만 오판이었다.

일러스트 강일구
연초 경제지표들 전반적으로 호조
우려했던 전염은 없었다. 미국은 연초 폭설과 혹한으로 일부 실물경제 지표가 주춤했지만 이내 회복 궤도로 복귀했다. 2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년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경제가 완만한 회복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유럽 경제는 지난해 4분기 0.4% 성장한 데 이어 올 들어 회복 속도를 높여가고 있다. 무디스는 21일 스페인의 국가신용등급을 Baa3에서 Baa2로 한 단계 올려줬다. 세계 주요국 증시는 연초 반납했던 시세를 거의 다 돌려받았다.

연초의 진통은 어찌 보면 미국의 테이퍼링 과정에서 예견됐던 일이다. 아프리카 ‘동물의 왕국’에서 목격되는 누 떼의 강 건너기에 비유된다. 생존을 위한 도강에서 일부 허약한 녀석들은 악어의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다. 누 떼는 그래도 종족 번식을 위해선 새싹이 돋는 희망의 땅을 향해 진군을 계속한다. 지금 고통받는 일부 신흥국은 그런 희생양인 셈이다. 이들을 덮치는 악어 떼는 미 월가를 본거지로 한 글로벌 핫머니다. 시장의 변동성은 투기 세력에게 고수익을 안겨준다.

신흥국의 위기는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정부든 민간이든 싼 금리의 글로벌 자금을 끌어다 흥청망청 소비하기 바빴다. 국가부채와 경상수지 적자가 불어난 것은 당연했고, 경제의 기초체력은 급속히 허약해졌다. 이런 신흥국들 처지가 안쓰러워 테이퍼링을 늦출 미국이 아니다.

글로벌 경제를 사람에 비유할 때 연초 신흥국 위기는 발가락 하나가 부러진 정도다. 아파서 멈칫했지만 계속 걷는 데 큰 지장은 없다. 이에 비해 2008년 이후 미국과 유로존 위기는 다리가 부러져 고꾸라진 상황이었다. 도저히 걸을 수 없어 병원에 실려가야 했다. 그러다 지난해 겨우 다리의 깁스를 풀고 조심스레 걷기를 재개했다.

중국·일본이 경계해야 할 변수
물론 경계해야 할 부분도 있다. 바로 중국과 일본 경제다. 두 나라 중 한 곳이나 동시에 탈이 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다리가 또 부러져 응급실로 실려가는 사태가 올 것이다. 세상 좋아지는 것을 태생적으로 싫어하는 염세주의자들이 은근히 바라는 일이다. 중국은 그림자금융에서 증폭된 신용버블이 터져 결국 실물경제를 때릴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경제성장률이 6%대 이하로 떨어지고 경제개혁도 흐트러지는 시나리오다. 일본은 과감한 돈 풀기와 엔저에도 불구하고 실물경제가 다시 가라앉는 상황이 걱정이다. 아베노믹스의 부작용으로 자칫 금리와 물가가 뛰는 일까지 생기면 경제는 혼돈에 빠져들 수 있다. 4월의 소비세 인상이 위기의 뇌관을 건드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누구나 예견하는 위기는 오지 않는 법이다. 정부와 경제 주체들도 이를 뻔히 알기에 필사적으로 대응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그림자금융을 통제하며 돈줄을 서서히 조이는 관리에 들어갔다. 일본도 엔저로 돈방석에 앉은 대기업들로 하여금 투자와 고용을 늘리도록 하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물론 이런 노력들이 실패해 결국 경제가 침몰하는 사태도 배제할 순 없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 경제는 항공모함 급이다. 가라앉더라도 3~5년은 버틸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한국 경제는 모처럼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주택시장의 회복 훈풍과 정부의 규제철폐 노력으로 내수가 꿈틀거리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의 성사에 뒤이어 남북한 경제협력 사업들이 활기를 띨 것이란 기대가 일고 있다. 낙관적 관점을 견지해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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