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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재의 愚문賢답] 하루 수십 통 문자로 고객·직원과 소통

중앙선데이 2014.02.23 01:28 363호 21면 지면보기
기업은행 집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는 권선주 행장. 조용철 기자
지난 10일 아침 기업은행(IBK) 강릉지점. 직전 주말인 7일부터 내린 폭설로 주차장과 건물 옥상은 온통 눈에 파묻혔다. 이날 아침 은행으로 달려 나온 황기순 강동강원지역본부장은 바로 스마트폰부터 꺼냈다. 서울의 권선주(58·사진) 행장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로 “강릉 일원에 폭설이 내렸다”고 보고했다. 그러자 권 행장으로부터 즉각 답이 왔다. “고객의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본점 지원이 필요하면 바로 알려주세요.”

“답은 현장에 있어, 이 친구야.” ② 기업은행 권선주 행장

출근한 직원들이 함께 제설작업에 나섰지만 가슴 높이까지 쌓인 눈을 삽만으로 치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진땀을 흘리던 이 지점 김모 과장이 다시 스마트폰을 꺼냈다. 제설작업을 벌이는 사진과 함께 짧은 문자를 권 행장에게 보냈다. “지난 금요일에 30㎝ 이상 제설작업을 했는데도 이만큼 쌓였어요. ^^ 근데 너무 막막해요. ㅠㅠ.”

잠시 후 네 명의 인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포클레인과 덤프트럭을 몰고 나타났다. 권 행장이 총무부장과 강원지역본부장에게 연락해 강릉지점을 지원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14일 오후 인터뷰 자리에서 건네 받은 권 행장 명함엔 휴대전화 번호가 있었다. 어지간한 중소기업 CEO 명함에도 휴대전화 번호는 넣지 않는 걸 감안하면 파격적이다. 권 행장은 “스마트폰은 직원은 물론 고객과 소통하는 현장경영 무기”라고 말했다. 인터뷰 동안에도 그의 휴대전화에선 문자메시지 도착을 알리는 소리가 쉼 없이 이어졌다. 이 가운데 60%는 직원들이 보내오는 문자였다.

지점장 시절 그는 고객과 통화할 때면 대화 내용을 일일이 메모했다. 몇 달 뒤 중요한 계약을 앞둔 고객에겐 계약 전에 꼭 확인 전화를 했다. 수첩에 적어 놓은 인적 사항이나 상담 내용을 보며 안부도 물었다. 오래전 한 번 통화만 했을 뿐인 지점장이 시시콜콜한 개인사까지 잊지 않고 물으니 고객들이 감동하는 건 당연했다. 계약이 제대로 성사되지 않았을 땐 “은행이 도와줄 일이 없느냐”는 안부인사도 빠뜨리지 않았다. “현장 경영은 곧 소통입니다. 과거엔 경청만 하면 됐다면 이제 마음을 연 대화를 하고 이해관계의 조율까지 할 수 있어야 하죠.”

그는 업무 개선 아이디어도 현장에서 얻는다. 가치 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에게 은행 내부에서 쓸 수 있는 마일리지를 지급하는 ‘2014 체인지 IBK’ 제도가 대표적이다. 40여 일 만에 전국의 직원들로부터 200여 건의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현장을 중시하다 보니 업무 권한 위임도 다른 은행보다 폭넓게 이뤄진다. IBK는 전통적으로 다른 은행에 비해 지점장이 전결하는 여신 한도액이 크다. 그만큼 대출에 대한 의사결정이 빠르다. 그 혜택은 고객의 몫이다. 그러나 위임에는 리스크도 따른다. 그래서 여신에 관한 권한을 위임했으면 이 권한이 제대로 행사되는지 시스템적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어야 한다. IBK가 여신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에 심혈을 기울여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권 행장은 디테일에 강하다. 그는 취임 직전 2년간 리스크관리본부장(부행장)을 지냈다. 은행엔 신용대출을 할 때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해 기록하는 서류가 있다. 오랫동안 이 서류 양식엔 대손충당금 기입란만 있었다. 대손준비금도 BIS 비율에 영향을 미친다는 그의 지적으로 IBK는 이 양식을 수정했다. 그의 이런 면은 직원들을 긴장시키는 부수적인 효과가 있다.

행원으로 입사해 행장까지 오르는 동안 줄곧 현장에서 잔뼈가 굵었던 만큼 내실 경영은 그의 철칙이 됐다. 그가 처음 지점장으로 나갔을 때의 일이다. 여성 지점장이 드물던 시절, 사채업자 몇 사람이 거액을 예금했다. 그러더니 이런저런 특혜를 요구했다. 여성 지점장이 실적을 올리느라 고전할 거라고 내다본 듯했다. 그는 모든 요구를 거절하고 본점에 연락해 이들이 한 예금을 실적에서 제외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계량적인 목표에 매달려 출혈 경쟁을 하다 보면 수익성도 저하되고 결국 금융산업의 발전을 저해하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내실 성장에 대한 그의 철학은 이렇듯 오랫동안 현장에서 쌓은 경험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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