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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업으로 창의성 극대화 … “우리 시대의 다 빈치” 평가

중앙선데이 2014.02.23 01:58 363호 24면 지면보기
영국 디자이너 토머스 헤더윅이 자신이 디자인한 의자 ’스펀(Spun)’에 앉아 즐거워하는 모습. 그의 작품들은 생활 소품부터 대형 도시 구조물까지 공학적 메커니즘과 장인정신, 재료의 아름다움이 유기적으로 결합돼 있다는 평을 듣는다. [사진 수잔 스마트 포토그래피]
지난해 11월 영국 왕립예술대학(RCA·Royal College of Art)의 폴 톰슨 총장이 우리나라를 찾았다. 대학원 과정만 있는 RCA는 1837년 설립된 영국 최고의 예술·디자인 전문학교다. 톰슨 총장은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RCA에는 70여 명의 한국 학생이 재학 중이며 이는 유럽 외 지역국 중 최대 규모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 학생들이 유독 RCA를 선호하는 이유로 두 가지를 들었다. 하나는 융·복합을 강조하는 다학제적 커리큘럼이다. 이를 통해 협업에 능한 창의적 인재를 키운다고 했다. 상품·시스템·기술 등 모든 것이 점점 복잡해지는 21세기에는 ‘팀으로 일하기(working in a team)’가 화두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세계 디자인계를 이끄는 RCA 출신 명사들의 존재다. 그러면서 두 사람을 언급했다. 버버리의 재기를 이끈 크리스토퍼 베일리 최고경영자(CEO), 그리고 영국 최고의 스타 디자이너 토머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44)이다.

세상 바꾸는 체인지 메이커 <27> 영국 혁신 디자이너 토머스 헤더윅

어릴 적 예술적 자극이 창의성 바탕
헤더윅은 RCA 교육이 지향하는 ‘협업에 능한 창의적 인재’의 롤 모델 같은 사람이다. 패션 소품부터 가구, 대형 건축물까지 영역 간 경계를 허무는 작업으로 주목받았다. 재료공학자, 토목공학자, 컴퓨터 엔지니어, 조경설계자 등 각 분야 전문가들과의 팀워크를 통해 불가능해 뵈는 아이디어를 현실화했다. 루트마스터(2층 버스), 키오스크(거리 가판대) 같은 공공 디자인으로 런던의 거리 풍경을 바꿨다. 교량, 발전소, 주거단지처럼 사회적 책임과 기술적 난도가 높은 작업으로 도시계획 영역에까지 뛰어들었다. 그가 2010년 선보인 상하이 엑스포 영국관은 그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뽑은최고의 발명품에 꼽혔다. 2012년에는 런던올림픽 성화대 디자인으로 또 한번 화제를 모았다. 2004년 최연소 ‘왕실 산업 디자이너(RDI)’로 지정되었으며, 지난해에는 ‘대영제국 기사단 훈장(CBE)’을 받았다. 영국이 낳은 세계적 디자인 거장 테런스 콘란 경은 그를 “우리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고 상찬했다. 예술적 역량과 과학적 사고력을 겸비한 인물이라는 뜻일 게다. 이후 ‘영국의 다 빈치’는 헤더윅을 가리키는 대표적 수식어가 됐다.

상하이 엑스포 영국관.
또 다른 눈으로 봤을 때 헤더윅은 뛰어난 창업자이자 전략가다. 그의 성장 스토리와 일하는 방식은 우리가 실리콘 밸리의 성공한 창업자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그것과 맥을 같이한다. 좀 다른 점은 그의 어린 시절을 지배한 것이 컴퓨터가 아닌 예술적 자극이라는 것이다.

헤더윅은 구슬 공예가인 어머니와 음악가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런던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어머니의 작업실 겸 가게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2011년 세계 최대 지식콘퍼런스 TED에서 그는 “공예품과 재료들, 작은 물건들을 만드는 환경에서 살았다. 그런 것들에는 재료의 특성과 영혼이 담겨 있다. 반면 큰 건물들은 차갑고 영혼이 없는 것처럼 느껴져서, 처음 건축 디자인을 시작했을 때 (어린 시절 경험이)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실제 그의 작품들은 크기와 상관없이 공예적 인간미와 장인정신이 돋보인다는 평을 듣는다. 런던 웰컴트러스트재단 빌딩 중앙의 30층 높이 조형물의 경우, 골프공 크기 구슬 14만2000여 개를 연결해 액체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며 고체로 변화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그와 동료들은 자연스러운 재현을 위해 금속을 녹여 물에 떨어뜨리는 실험을 수백 번 반복했다고 한다.

헤더윅은 맨체스터 메트로폴리탄대학에서 3차원 디자인을 전공했다. RCA에 진학해서는 테런스 콘란 경과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학교 복도에서 콘란 경과 우연히 마주친 그는 “5분만 조언해 달라”며 말을 붙였다가 3시간 동안 대화를 이어가게 된다. 이후 콘란 경은 그의 멘토이자 후원자가 됐다. 덕분에 헤더윅은 콘란 경의 버크셔 시골집에 4개월간 머물며 인생 최초의 작은 건축물을 완성할 수 있었다. 후에 그는 “당시 경험 덕분에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기쁨을 알게 됐고 자신감도 얻었다”고 회상했다.

범죄 수사하듯 디자인적 해결책 도출
1994년 RCA 졸업 뒤 그는 친구 몇과 자신의 집에서 ‘헤더윅 스튜디오’를 창업했다. 97년 하비 니콜스 백화점의 파사드 조형작업 등을 통해 일찌감치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는 초기 작업 때부터 팀워크를 강조했다. 자신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역할을 맡되, 아이디어 개발부터 실제 작업까지 전체 과정은 반드시 각 분야 전문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진행했다. 스스로 “내 성공 비결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능력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한 덕분”이라고 말할 정도다. 가장 좋은 아이디어는 팀 멤버들과의 상호작용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마치 기업인처럼 각 프로젝트를 문제 해결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지난해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그건 차라리 범죄 해결에 가깝다. 정답은 있다. 그걸 발견하는 것이 우리 일”이라고 말했다. ‘정밀한 수사’를 통해 의심 가는 것들을 하나씩 제거하고, 단서를 찾아 추적해, 가능한 해결책의 범위를 좁혀간다는 설명이다.

디자인 솔루션 회사로서 헤더윅 스튜디오는 각종 재료에 대한 실험과 공학적 연구에 큰 비중을 둔다. 기업이 연구개발(R&D)에 열정을 쏟는 것과 비슷하다. 이를 통해 비행기 창문 제작법과 첨단 금속 가공법을 접목한 패션 브랜드 롱샴의 뉴욕 플래그십 스토어, 다리가 직선으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원통형으로 말려 올라가는 도개교(롤링 브리지) 같은 혁신적 구조물이 탄생했다. 그의 대표작인 상하이 엑스포 영국관은 6만6000개의 광학 막대를 통해 낮에는 햇살 변화와 구름의 움직임까지 내부로 전달하고, 밤에는 내부의 빛이 밤하늘로 뻗어가는 장관을 연출했다. 외부로 길게 뻗은 막대들은 바람이 불면 갈대처럼 부드럽게 흔들리고, 내부로 향한 막대 끝에는 각기 다른 6만6000종의 식물 씨앗이 들어있다. 이를 통해 영국이 식물학 연구와 도심 공원으로 대표되는 자연친화적 문화의 대표국임을 웅변했다.

현재 헤더윅 스튜디오에서는 120여 명의 전문가들이 일한다. 헤더윅은 “모든 프로젝트는 발명”이라고 말한다. 그저 멋진 걸 만드는 게 아니라 실제 물건을 사용하거나 건축물 안에 머물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무엇을 만들든 독창적 문제 해결법과 사용자환경(UI)에 집중하는 것, 기술과 감성의 전일적 합일을 꾀하는 것, 이를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 마치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작업 방식을 연상시킨다. 헤더윅을 그저 디자이너가 아니라 혁신의 리더 중 한 명으로 꼽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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