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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의 'Big Questions'] 유럽이 세계 정복할 때 동양도 총·균·쇠 있었는데…

중앙선데이 2014.02.23 02:08 363호 25면 지면보기
비잔틴 제국을 정복한 메흐메트 2세 오토만 제국 황제. 젠틸레 벨리니가 그린 초상화(1480년).
Anno Hegirae(이슬람력, 헤지라 기원) 1435년.

<21> 서양이 지배하는 세상

선지자 마호메트가 메디나로 이주한 지 음력으로 1435년이 지난 해다. 과거 ‘영국’이라 불리던 알-안케레트라(Al-ankeletra)의 수도 런던 다우닝가(街) 10번지에선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 총리가 오늘도 새벽 기도와 함께 바쁜 하루를 시작한다. 손과 발, 얼굴, 목, 그리고 눈을 깔끔히 씻은 그는 성스러운 마음으로 메카를 향해 속삭인다.

“알라후 아크바르. 신은 위대하시다. 알라가 유일한 신이시며 마호메트가 유일한 선지자이시니라.”

기도를 마친 캐머런 총리는 외교부 보고서를 읽기 시작한다. 미국에서 전해진 소식은 여전히 골치가 아프다. 이슬람 연합군이 점령한 워싱턴 DC에 또다시 자살 테러가 일어난 것이다. 죄 없는 많은 시민이 죽었다. ‘영원한 자유’(Operation Eternal Freedom)라는 이름 아래 광신 기독교 반란군과 싸우고 있는 연합군 10명도 목숨을 잃었다. 언론과 시민들의 반응은 뻔할 것이다. 도대체 왜? 왜 젊은 이슬람 청년들이 먼 미국까지 가서 죽어야 하는가? 도저히 희망도 미래도 없는 실패한 나라 아니던가? 알라후 아크바르! 술탄 살라딘(Salah ad-Din Yusuf ibn Ayyub)이 안 계셨다면 우리도 어쩌면 기독교 지배 아래 살고 있었을지 모른다. 상상만 해도 손이 떨린다. 그들은 찬란한 그리스로마 문명을 멸망시킨 장본인들 아닌가? 우리 이슬람이야말로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심플리치우스(Simplicius)의 정신을 물려받은 아비체나(Ibn Sina)와 아베뢰스(Ibn Rushd) 덕분에 계몽과 과학기술을 만들어냈다. 한번 객관적으로 생각해보자. 젊은 이슬람 청년이 허리에 폭탄을 차고 도시 한복판에서 죄 없는 시민들을 살생한다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가난하고 우리가 잘사는 것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 이슬람인들이 세상을 지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서양 문명만이 6가지 조건 갖췄다”
물론 ‘anno Domini’(서기) 2014년 영국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은 모슬렘이 아니다. 워싱턴 DC 거리엔 이슬람 연합군도 없으며, 거꾸로 카불과 바그다드에 미·영 연합군이 주둔하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서유럽에서 가장 먼, 유라시아 대륙 끝 한반도에 사는 우리 역시 아침에 일어나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시며 리모컨 돌려가며 TV를 본다. 우파와 좌파로 나뉜 국회에선 오늘도 여전히 시시콜콜한 문제를 가지고 논쟁 중이다. 양복으로 갈아입은 우리는 자동차를 타고 출근한다. 통유리로 만든 건물에 도착한 우리는 컴퓨터를 두들겨가며 주식시장을 살펴본다. 볼펜과 연필로 중요 내용들을 쓰다가 점심은 샌드위치로 때운다. 퇴근 후 친구들과 영화를 보고 간단히 볼링 한 판을 즐긴다. 와인을 꽤 많이 마셔 운전을 포기하고 지하철로 집에 돌아온다. 재빨리 샤워하고 침대에 들어가 잠이 든다. 오늘은 앤젤리나 졸리가 꿈에 나오려나….

그렇다. 2014년 지구에 사는 대부분의 호모 사피엔스들은 서양식 옷을 입고 서양식 생활을 하며 ‘복지냐 성장이냐?’ ‘원자력이냐 재생에너지냐?’ 등 서양에서 시작된 논쟁을 한다. 중국·페르시아·몽골·이슬람 등 수많은 경쟁 문명들을 제치고 왜 하필이면 서유럽 위주의 문명이 지구를 지배하게 된 것일까? 치열한 경쟁, 과학, 법치주의, 의학, 컨슈머리즘, 근로 윤리. 미국 하버드대학 퍼르거슨(Niall Ferguson) 교수는 서양문명만이 이 여섯 가지 조건들을 다 가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와 같은 영국 출신 서양 우월주의자라면 당연히 “그래, 우리는 정말 잘났어”라며 자랑스러워할 만한 이유들이다. 하지만 무언가 찜찜하다. 왜 하필이면 이런 ‘우아한’ 문화적 킬러 애플리케이션들 때문이라는 것일까? 19세기 식민주의와 20세기 유대인 대학살을 경험했기에 더 이상 자랑스럽게 내세우기에 다소 껄끄러운 다른 전통들도 있지 않았던가? 폐쇄적인 인종 차별주의, 자연을 정복하고 지배해야만 한다는 기술 우월주의, 자신이 속한 공동체만이 신(神)에게 선택됐다는 광적(狂的)인 믿음, 나와 다른 타인과 타 문명은 꼭 파괴시켜야 한다는 서양 전통의 그런 킬러 애플리케이션들 말이다.

명나라 제독 정화는 일곱 차례의 대원정을 통해 인도양과 아프리카를 방문했다. 명나라 황실에 바쳐진 기린.
“지중해가 있었기에 세계 정복 가능”
미국 UCLA 지리학과 재러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 교수는 그렇기에 서양 성공사의 비밀을 조금 더 마키아벨리스러운 총(銃)과 균(菌)과 쇠에서 찾으려 하지 않았던가? 여기서 잠깐! 쇠와 균과 총은 유럽인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서유럽이 세계 정복에 막 발 들이려던 15세기 초, 지구엔 적어도 유럽과 비슷한 수준의 경쟁 문명이 2개 더 존재했다. 명나라 중국과 오토만 이슬람제국 말이다. 아니, 어쩌면 그들은 서양보다 더 앞서 있었는지도 모른다. 명나라 환관이자 제독이던 정화는 1407년부터 1431년까지 총 일곱 차례의 대원정을 통해 인도양과 아프리카를 탐험했다. 정화보다 70년 늦게 3척의 배와 88명의 승무원을 데리고 나섰던 콜럼버스와는 차원이 다른 120m 길이의 대함(大艦)들과 총 2만7800명의 승무원을 데리고 말이다. 그런가 하면 1453년 오토만 황제 메흐메트 2세는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는 데 성공한다. 삼중 성벽 덕분에 난공불락이라던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 오토만 제국은 중동·아라비아·북아프리카·동유럽을 넘어 빠르게 서유럽 정복에 들어간다. 오토만 제국의 피리 라이스(Piri Reis) 제독은 지중해를 통치하고 술레이만 1세는 오스트리아 수도 빈을 포위한다. 빈·로마·파리·런던 등 서유럽이 이슬람화되는 건 시간 문제인 듯했다.

비슷한 시대에 비슷한 조건에 비슷한 비전을 가졌던 3개의 문명들.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이엔 모리스 교수는 문화도 전통도 종교도 인물도 아닌 유럽 특유의 지형이 서양의 세계 정복을 가능하게 했다고 주장한다. 중국같이 지형적으로 너무 고립되지도, 오토만 제국같이 너무 방대하게 퍼져 있지도 않았기에 가능했다는 말이다. 노르위치(Julius Norwich), 브러드뱅크(Cyprian Broodbank), 아불라피아(David Abulafia)는 특히 지중해라는 지형적 특성이야말로 서양 문화의 세계 주도를 가능하게 했다고 한다. 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둘러싸인 지중해야말로 서양문명의 ‘특징’인 개척과 교류와 소통의 기원이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지중해’만일까? 남중국해는 중국·베트남·인도네시아·필리핀으로 둘러싸였고, 아라비아해는 인도·아랍·아프리카라는 독특한 세 문명의 만남을 가능하게 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이런 가설을 세워볼 수 있다. 어쩌면 서양의 역사·지형·인물·철학, 그 어느 것도 세계 지배의 결정 요인이 아니었을 수 있다. ‘원인’이란 반복된 실험이 가능할 때만 의미가 있다. 특정 변수 외에 다른 모든 조건들을 동일하게 유지해야만 논리적 인과관계를 찾아낼 수 있다는 말이다.

이슬람의 서유럽 정복을 막은 것으로 평가되는 레판토 해전(1571년).
레판토 해전은 동서양 운명의 분수령
1571년 10월 7일. 그리스 레판토(Lepanto) 앞바다에선 212척의 배에 탄 7만 명의 기독교 연합군들과 251척에 탄 8만 명의 오토만 병사들 사이에서 해전이 벌어진다. 결과는 기독교 연합군의 압승이었다. 한정된 배에 가능한 한 많은 병사를 실으려던 오토만 제국의 전략과는 달리 더 많은 대포를 실었던 서유럽 군의 전략이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대포냐 사람이냐, 기독교냐 이슬람이냐, 서양이냐 중동이냐가 레판토 해전에서 결정됐다는 것이 역사적 가설이다. 서양의 세계 정복 원인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선 우리는 레판토 해전을 무한으로 반복할 수 있어야 한다. 치열한 경쟁, 과학, 법치주의, 의학, 컨슈머리즘, 근로 윤리, 총·균·쇠, 지중해…. 이 모든 변수를 차례로 바꿔가며 말이다.

물론 역사는 논리도 과학도 아니다. 그대로 재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부분의 역사는 아무 이유 없는 사소한 우연들의 합(合)집합일 수도 있다. 로또에서 1등 당첨된 ‘A’라는 사람을 가정해 보자. A는 정답을 맞혀 거액의 상금을 받고, 나머지 수천만 명 중 한 명인 B란 사람은 못 받는다. A와 B의 차이는 무엇일까? A의 과거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A는 특정 지역에서 태어나 특정 교육을 받았으며 특정 장소에, 특정 시간에 나타났다. A의 뇌는 특정 신경세포들을 자극했고, 자극받은 오른손 힘줄은 A에게 특정 번호를 선택하게 했다. 하지만 이 모든 ‘설명’들은 단순히 A의 과거 행동을 재생할 뿐이다. 만약 B가 A와 양자역학 차원까지 완벽하게 동일한 과거를 가질 수 있다면(비현실적이지만) B도 로또에 당첨될 수 있다. 하지만 A와 완벽하게 동일한 B는 논리적으로 A와 구별되지 않는다. 서양과 완벽하게 동일한 우연, 즉 역사·철학·지형·사람을 가졌었다면 오토만 제국(터키)도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은 결국 ‘터키가 완벽하게 서양과 동일했다면’, 고로 ‘서양이 서양이라면’ 세계를 정복했을 것이라는 논리적 난센스일 뿐이다.

세상은 복잡하다. 사소한 우연의 일치가 거대한 변동의 원인이 될 수 있고, 역사를 바꿔 놓을 수 있었을 사건이 아무 이유 없이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 세상은 언제나 무한의 가능성과 무의미한 우연 간의 싸움이다. 서양은 오늘 세상을 지배한다. 하지만 서양의 과거 그 자체는 논리적 원인이 아닌 post hoc(그 이후의), 그러니까 일이 이미 벌어진 후 제시된 ‘편한’ 해석들일 뿐이다. 그렇다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과거 정복일 수도 있다. 우연과 가능성들의 합집합인 과거를 재해석하고 평가해 우리는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얻는다. 결국 과거를 소유하는 사람만이 무질서한 역사를 질서로 재탄생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김대식 독일 막스-플랑크 뇌과학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미국 MIT와 일본 이화학연구소에서 박사후 과정을 거쳤다. 이후 보스턴대 부교수를 지낸 뒤 2009년 말 KAIST 전기 및 전자과 정교수로 부임했다. 뇌과학·인공지능·물리학뿐 아니라 르네상스 미술과 비잔틴 역사에도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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