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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미시 세계사] 언어 전쟁

중앙선데이 2014.02.23 02:32 363호 29면 지면보기
제주도에선 ‘제주말’로 된 산문집·운문집이 출간되고 연극 공연도 이뤄진다. 교육도 활발하다. 사투리는 주민의 감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데 최적격일 수 있다. 언어 다양성 유지를 위해 제주어가 정체성을 지키면서 유지·발전하도록 도와야 한다.

유네스코 등에 따르면 전 세계에는 6000~7000개의 언어가 있다. 모국어 사용자를 기준으로 중국어(약 12억, 방언 포함), 스페인어(4억700만), 영어(3억5900만), 힌디어(3억1100만), 아랍어(2억9300만), 포르투갈어(2억1600만), 벵골어(2억600만), 러시아어(1억5400만), 일본어(1억2600만), 펀자브어(1억200만)가 10대 언어다. 독일어(8900만), 자바어(8200만), 말레·인도네시아어(7700만), 텔루구어(7600만), 베트남어(7600만), 한국어(7600만), 프랑스어(7400만), 마라티어(7300만), 타밀어(7000만), 우르두어(6600만)도 각각 전 세계 1% 이상이 쓴다. 일세를 풍미했던 제국의 후손들이 쓰는 페르시아어(6500만), 터키어(6300만), 이탈리아어(5900만) 등이 뒤를 잇는다.

이 가운데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각각 최대 언어인 힌두어와 우르두어는 별도 교육 없이도 서로 상당히 알아들을 수 있다. 지구상에는 이처럼 분류상으론 달라도 서로 통하는 ‘동질 언어’가 적지 않다. 페르시아어(파르시라고 함)는 중앙아시아 타지크 등에서 주로 쓰는 타지크어와 아프가니스탄 서부 소수민족인 하자라족이 쓰는 다리어와 서로 통한다. 페르시아 제국의 유산이다. 이란의 이웃인 다민족국가 아프가니스탄은 다른 민족끼리 만나면 다리어로 서로 의사소통을 한다. 민족 분포가 2012년 기준 파슈툰(인구의 약 40% 차지), 타지크(33%), 하자라(11%), 우즈베크(9%) 등인 만큼 소수민족 언어가 사실상 공용어인 셈이다. 이란어 전공자가 파슈툰어를 쓰는 탈레반 측과 협상할 수 있는 이유다.

같은 터키계인 터키어와 아제르바이잔어도 상당히 통한다. 같은 갈래인 스웨덴어와 노르웨이어는 서로 잘 통하며 덴마크어와도 비교적 잘 통한다고 한다. 네덜란드어와 이곳에서 과거 남아프리카로 이주한 후손이 쓰는 아프리칸스어도 상통한다. 독특한 것은 오리지널인 네덜란드어 사용자는 아프리칸스어를 비교적 잘 이해하지만, 아프리칸스어 사용자는 네덜란드어를 부분적으로 알아듣는다고 한다.

발칸반도의 옛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한 마케도니아의 마케도니아어는 이웃 불가리아어와 통하는 데 문제가 없다. 그래서 마케도니아는 문화적 흡수를 우려한다. 과거 유고의 국어 격이었던 세르보크로아티아어는 이젠 세르비아어·크로아티아어·보스니아어로 나뉜다. 정치적 이유에서 서로 다른 언어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1~92년 세르비아를 남기고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언어가 조금 다른 슬로베니아와 마케도니아도 독립)가 독립하면서 생긴 일이다.

동방정교의 세르비아계와 가톨릭의 크로아티아계, 그리고 무슬림인 보스니아인이 거주하는 다민족국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이 3개 민족이 독립과 영토를 놓고 1992~95년 내전을 벌이면서 사태는 더욱 악화했다. 같은 동네에서 태어나 평생 아래·윗집에 살며 서로 통혼까지 한 사람들이 똑같은 말을 서로 다르다고 선언하기에 이른 것이다.

내전에서 표출된 분노와 갈등을 청산하지 못하고 과거사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없는 바람에 생긴 억지다. 어디 이런 억지가 발칸에만 있으랴. 한반도의 남북 간에는 그 같은 언어 문제가 없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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