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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의 문화 트렌드] ‘겨울왕국’ 잘나가는 건 오페라 같은 비장미 덕분

온라인 중앙일보 2014.02.23 02:13
한국에서 극장 애니메이션이 이렇게 하나의 현상이 될 정도로 인기를 얻은 적이 있었던가? 디즈니의 ‘겨울왕국’ 말이다. 인터넷과 SNS에 각종 패러디와 주제곡 ‘렛잇고(Let It Go)’를 재해석해 부른 영상이 줄지어 올라오고 있다. 심지어 트로트 버전까지!


1000만 관객 넘보는 디즈니 애니

인기에 대한 분석도 많이 나온다. 중독성 있는 음악, 환상적인 영상,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공주 캐릭터 등이 장점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2010년 디즈니의 부활을 알린 ‘라푼젤’ 역시 그런 장점을 모두 지녔다. 게다가 플롯 면에서는 ‘라푼젤’이 더 탄탄하다는 평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라푼젤’은 큰 화제가 되지 못했고, 해외에서만큼 흥행하지 못했다. 반면에 ‘겨울왕국’은 한국에서 거대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고 북미 다음으로 높은 박스오피스를 기록하고 있다. 왜일까? 몇 가지를 생각해 보았다.



한국 뮤지컬 관객 입맛 자극

디즈니 만화는 전통적으로 뮤지컬 형태를 취해 왔는데, 예전에는 그게 한국 관객에게 그다지 플러스 요소로 작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2000년 이후로 한국의 뮤지컬 시장이 급성장했고, 뮤지컬 음악이 대중화됐다.



그렇다면 ‘라푼젤’ 역시 뮤지컬 형식이고 음악이 좋은데 왜 크게 성공하지 못했나? ‘라푼젤’의 음악은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노래와 서정적이고 잔잔한 노래가 주류를 이룬다. 반면에 한국 관객은 조승우가 불러 히트시킨 ‘지킬 앤 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이나 ‘레미제라블’의 노래들처럼 오페라적인 면이 강한, 즉 비장미가 있고 드라마틱하게 감정을 끌어올려 카타르시스를 폭발시키는 노래를 선호한다. ‘겨울왕국’에서 ‘렛잇고’가 바로 그런 노래다. 여왕 엘사가 숨겨 왔던 특이한 능력을 들킨 뒤 외딴 곳으로 달아나 그 능력을 마음껏 펼치겠다며 부르는 노래다.



게다가 ‘렛잇고’의 가사는 무척 시적이다. “그대로 흘러가게 해. 더 이상 억누르지 못해…. 나는 자유야. 나는 바람과 하늘과 하나야.” 마치 거친 바람을 맞으며 고독한 영혼의 자유를 노래했던 19세기 영국의 천재 작가 에밀리 브론테의 시를 연상시킬 정도다. 이 노래를 들을 때 각자의 억눌린 현실을 생각하며 눈물이 솟구쳤다는 성인 관객이 적지 않다.



원판 못지않은 더빙판의 매력

일반 애니메이션이 더빙판은 아동용, 자막판은 성인용으로 이분되는 반면 ‘겨울왕국’은 둘 다 보는 성인 관객이 꽤 있다. ‘겨울왕국’이 하나의 뮤지컬 작품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뮤지컬 팬들은 좋아하는 뮤지컬을 출연배우별로 여러 번 보는 경향이 있다. ‘겨울왕국’ 더빙판은 오리지널 못지않다는 호평을 많이 듣기 때문에 자막판을 보고도 일부러 더빙판을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공주 대신 여왕 … 은근 섹시 캐릭터

‘겨울왕국’ 신드롬 중심에는 엘사라는 캐릭터가 있다. 동생인 안나와 예전 캐릭터 라푼젤이 디즈니의 전통대로 ‘소녀 공주’인 반면 엘사는 파격적으로 ‘성인 여왕’이다. 차갑고 기품 있으면서 은근히 섹시해서 수많은 성인 관객을 매혹하며 ‘여신’ 소리를 듣고 있다. 디즈니 만화는 아동용이라고 생각하는 한국 관객의 고정관념을 뒤집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영리하게 진화한 여성 주인공

디즈니 만화는 여성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고, 그 성격이 시대의 평균보다 조금씩 앞서가도록 영리하게 진화해 왔다. 이미 ‘미녀와 야수’(1991)의 벨부터 주체적인 면모를 보였는데, 그래도 결국엔 왕자와 결합하는 것으로 끝났다는 한계가 있었다. 그 한계는 여전사 ‘뮬란’(1998)에 이르러 이미 깨졌다. 그 다음에는 뮬란처럼 남장을 하는 대신 핑크 드레스를 입고 긴 머리칼을 휘두르며 주체적 활약을 하는 ‘라푼젤’(2010)이 나타났다. ‘겨울왕국’에 이르러서는 성격이 다른 두 여성의 깊은 자매애와 연대가 그려져 다시 한 번 진화를 보였다. 이것이 디즈니의 무서운 저력이다.



이런 요소들을 바탕으로 ‘겨울왕국’의 관객 수는 이미 주 초반에 900만을 넘어섰고 주말 예매율도 여전히 높다. 과연 ‘애니메이션 최초 1000만 관객 돌파’의 역사를 쓸 수 있을까.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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