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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이냐 지지율이냐 기로에 선 아베, 구조조정 독배 들까

온라인 중앙일보 2014.02.23 01:32
로이터=뉴시스



성장률도, 수출도 … 흔들리는 일본 경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확신에 찬 사람이다. 그런 그도 이번만큼은 마음이 흔들렸을 것이다.” 일본의 지난해 4분기 경제성장률이 발표된 17일, 파이낸셜타임스(FT) 기사의 첫머리는 이랬다. 아베 총리만이 아니었다. 아베노믹스를 향한 세계시장의 신뢰도 함께 흔들렸다. 지난주 아베노믹스는 두 차례나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지난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 분기보다 0.3% 성장하는 데 그쳤다. 이튿날엔 1월 무역수지 적자(2조7900억 엔)가 사상 최대라는 발표가 나왔다. 아베 총리 취임 직후 4.8%의 성장률(지난해 1분기)을 기록할 때만 해도 “일본의 마지막 기회”(뉴욕타임스)라는 찬사를 받았던 아베노믹스. 그러나 벌써부터 먹구름이 잔뜩 밀려오고 있다.





“일본은행(BOJ)의 윤전기를 돌려서라도 물가상승률을 2%로 끌어올리겠다.”



총선을 한 달 앞둔 2012년 11월 아베 총리 후보가 폭탄선언을 했다. 연 1%였던 BOJ의 물가상승률 목표치를 2%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면 돈을 무한정 풀겠다는 선전포고였다. “헬리콥터로 돈을 뿌려서라도 경기를 살려내겠다”고 공언했다가 ‘헬리콥터 벤’으로 불렸던 벤 버냉키 전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처럼 그에겐 ‘윤전기 아베’란 별명이 붙었다. ‘아베노믹스’란 신조어가 탄생한 것도 이때다.



엔고를 초래한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은 20년 동안 저물가의 늪에서 허우적댔다. 물가가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자 기업은 투자를 중단했고 가계는 지갑을 닫아버렸다. 축소지향의 악순환에서 탈출하자면 디플레이션의 사슬을 끊는 게 급선무였다.



아베노믹스가 디플레이션을 첫 표적으로 삼은 덴 정치적 노림수도 숨어 있었다. 오정근 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원은 “경제는 둘째 문제다. 우울증에 빠진 일본 국민의 사기를 끌어올리겠다는 게 ‘디플레이션 타도’의 진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장기 침체로 일본 국민의 자신감은 바닥까지 떨어졌다.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젊은이들은 ‘프리타(임시직을 전전하는 사람)’ ‘니트족(취업·훈련 포기자)’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등의 신조어를 양산할 정도로 의욕을 잃었다. 설상가상, 갑갑한 분위기를 깨줄 정치 지도자도 없었다. 2006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가 물러난 이후 일본 총리는 일곱 차례 교체됐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절망 속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내세운 아베 총리가 나타난 것이다. 오정근 연구원은 “일본 국민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들 생각하고 있다”며 “아베 총리가 최근 국수주의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 이유도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일본 국민의 열등감·소외감을 털어내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분석했다.



디플레이션과의 싸움이란 관점에서 보면 아베노믹스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12월 일본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같은 달보다 1.6% 올랐다. 지난해 3월만 해도 -0.9%의 디플레이션에 빠져 있던 일본이다. 공격적인 통화·재정 정책이란 아베노믹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화살은 과녁을 제대로 향한 셈이다. 잇따른 망언에도 아베의 지지율이 꿈쩍 않는 걸 보면 국내 정치적으로도 약발이 먹힌 것으로 보인다.



엔저 … 수입 늘었는데 수출은 안 늘어

디플레이션 타도를 위해 아베노믹스가 쏜 두 개의 화살이 향한 곳은 ‘엔저’다. 엔저는 두 마리 토끼를 노렸다. 수입물가 상승을 통한 국내 물가 부양이란 토끼에는 적중했다. 다른 한 마리는 수출 확대였다. 엔저는 ‘메이드 인 재팬’ 상품의 가격을 낮춘다. 꽁꽁 얼어붙은 내수 대신 수출시장에서 활로를 뚫어보자는 계산이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수출도 늘지 않고 성장률도 제자리걸음이었다. 엔저로 수입 가격이 올라 1월 수입은 전년 같은 달보다 25%나 늘어났는데, 엔저에도 불구하고 수출은 9.5% 늘어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통화 약세→가격경쟁력 상승→수출 증대→성장률 상승’이라는 선순환 고리가 작동하지 않은 셈이다. FT는 “이론상으로는 수입물가가 올라 국민이 수입품을 덜 쓰고, 수출은 경쟁력을 얻는 긍정적 변화가 나타날 때가 됐는데 그렇지 않다”며 “대지진으로 원전이 문을 닫는 바람에 에너지 수입이 급증했고 국민도 4월 소비세 인상을 앞두고 전자제품 등 수입품 소비를 늘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른바 ‘J-커브 효과(통화가치가 떨어져도 단기적으론 무역수지가 악화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수출은 늘고 수입은 줄어 무역수지가 개선되는 현상)’를 앞으로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게다가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 강세가 시작되며 일본 기업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생산라인을 해외로 내보냈다. 엔저에도 불구하고 수출이 늘지 않은 건 이 때문이다. 이번 엔저가 최소 5년 이상 지속된다는 확신이 없는 한 쉽게 자국 생산을 늘리지 않을 거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아베, 의미 있는 개혁은 하나도 못해”

결국 아베노믹스의 성패 여부는 마지막 화살, 구조개혁을 통한 성장 정책에 달려 있다. 그러나 앞선 두 개의 화살과 달리 세 번째 화살은 ‘독배(毒杯)’다. 한계 기업을 도려내고 해외 기업에 안방을 내줘야 하며 외국 인재 수혈을 위해 이민 규제를 풀어야 한다. 국수주의와 극우 행보로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있는 아베로선 제 발등 찍기가 될 수 있다. 모처럼 경제에 활기가 돌기 시작한 마당에 굳이 수술칼을 들이대야 하느냐는 저항도 거세다. 실제로 취임 직후 “적극적으로 구조개혁을 하겠다”고 약속한 아베 총리는 지난해 10월 “정리해고를 하기엔 여론이 너무 나쁘다”며 사실상 노동시장 개혁에 손을 들었다. 오쿠보 다쿠지(大久保 琢史) 재팬매크로어드바이저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아베 정권은 의미 있는 개혁은 하나도 하지 않은 채 돈 풀기에만 열중하고 있다”며 “산업보호정책과 지원금을 철폐하고 해외 기업을 유치하지 못하면 경기침체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더욱이 일본은 오는 4월 소비세 인상을 앞두고 있다. 세계 최대 채무자인 일본 정부로선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경제엔 적잖은 후폭풍이 우려된다. 소비세 인상을 앞두고 아베 총리가 기업들에 “엔저 과실을 나누라”며 임금 인상을 압박하는 이유다. 황나영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은 “1997년 소비세 인상 때도 성장률이 2분기에 걸쳐 둔화되는 등 타격을 받았다. 재정을 생각하면 소비세를 올리지 않을 수 없지만, 소비세가 막 개선되려던 경제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J-커브 효과가 살아나지 않는 한 앞선 두 개의 화살만으로 세계 3위 일본 경제를 늪에서 건져내는 건 역부족이다. 손에 쥔 마지막 화살을 쏘느냐 마느냐, 아베 앞에 놓인 선택의 순간은 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임미진 기자 mi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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