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진경의 취리히통신] '시월드' 기피 한국뿐일까 … 스페인선 '나는 시어머니를 증오해'사이트까지

중앙일보 2014.02.23 00:02
입으로 불면 돌돌 말려 있던 종이가 앞으로 펴지며 소리를 내는 장난감의 스페인어 이름은 ‘마타수에 그라스(matasuegras)’로, ‘시어머니(장모)를 죽이다’라는 뜻이다. [사진 구글 이미지]
“아이한테 그렇게 ‘오냐오냐’ 하면 안 돼.” 오랜만에 뵙는 스페인 시아버지 말씀입니다. 기다렸다는 듯 시어머니가 옆에서 거듭니다. “애가 밥을 안 먹으려고 하면 주지 말아야지. 나중에 배고프면 알아서 먹게 돼 있어. 스페인에선 그렇게 떠먹이지 않는단다.”



 틀린 말이 아니어도 제 속은 편치 않습니다. ‘직접 키우시는 게 아니니 그런 말이 쉽게 나오지요’ 물론 이런 말대꾸는 속으로 하고 겉으론 “Si(네), si”를 반복하지만, 건성으로 하는 대답이란 걸 시부모님이 모를 리 없죠. 설거지를 하는데 거실에서 시부모님과 남편이 작은 소리로 말을 주고받는 것이 신경 쓰입니다. 나중에 남편에게 무슨 얘길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네가 아이한테 매달려서 날 잘 챙겨주지 못하는 것 같다고, 내 몸은 내가 알아서 챙기라고 하시던데.” 그 말에 꾹 눌러뒀던 화가 폭발합니다. “뭐? 우리가 애 키우는 방식에 참견하시는 것도 스트레스인데, 내가 당신 안 챙겨준다고 걱정하는 거야? 그럼 나는 누가 챙겨주는 건데?”



 ‘시월드’ ‘처월드’는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부부와 양쪽 집안의 갈등은 세계 어디서나 존재합니다. 서양에는 ‘악마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시부모(혹은 장인·장모)를 보냈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어머니를 보냈다’는 표현을 패러디한 거죠. 친구들에게 듣는 한국의 시월드에 비하면 나은 편이긴 해도 제게도 스페인 시월드가 주는 고충이 있습니다. 육아 문제 말고도 시댁에 갈 때면 시부모님과 가족처럼 지내는 온 동네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다녀야 한다든가, 저녁식사 시간이 늦어서(스페인에선 밤 10시에 저녁을 먹습니다) 배가 고파도 참고 있어야 하는 점 등 주로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문제죠.



 한국에서 주로 며느리-시어머니 간 갈등이 문제되는 것과 달리 외국에선 사위-장모 간 갈등이 부각되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인류학자 조지 프레이저의 저서 『황금가지』엔 오래된 사례들이 등장합니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지역의 원주민들은 사위와 장모가 서로 쳐다보는 것을 금지했고, 사위의 그림자가 장모에게 닿는 건 이혼 사유가 됐다죠. 남태평양 뉴브리튼 섬 원주민들의 풍습은 더합니다. 사위와 장모가 말을 섞으면 재앙이 생긴다고 믿어 그걸 막기 위해 둘 중 하나가 자살을 해야 했습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도 『토템과 터부』에서 비슷한 사례를 내놓았는데요. 대서양 포클랜드 제도의 한 마을엔 사위와 장모가 동시에 바닷가에 나갈 수 없다는 규칙이 있습니다.



 프로이트 계파의 정신분석학자들은 이를 ‘사위가 장모에게 성(性)적으로 이끌리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금기’로 해석합니다. 남편이 아내와 비슷한 유전자를 지닌 장모에게 현혹돼 동침함으로써 가족 내 성적 질서에 혼란이 생기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터무니없는 소리라고요? 폴 웨이츠 감독의 1999년작 코미디 영화 ‘아메리칸 파이’를 통해 크게 유행한 속어 ‘밀프(milf·mom I’d like to fuck)’는 점잖게 옮기면 ‘동침하고 싶은 엄마 나이의 여자’라는 뜻입니다. 영국 작가 줄리언 반스의 2011년작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역시 이 위험한 욕망을 바탕으로 한 소설입니다. 등장인물 에이드리언은 여자친구의 어머니와 동침한 뒤 아이를 갖게 되자 자살을 하는데, 노산으로 태어난 그 아이는 장애를 갖게 되죠. 욕망과 금기가 한 쌍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스페인어권에 ‘나는 장모(시어머니)를 증오해(odioamisuegra.com)’라는 인터넷 사이트까지 있다는 점은 그리 놀랍지도 않네요.



 어차피 부대끼며 살아야 할 가족, 자신만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전 원래 이름으로 부르던 시어머니를 요즘 ‘수에그라(suegra)’라고 부릅니다. 스페인어로 시어머니를 뜻하는 수에그라에는 ‘꽈배기 빵의 눌어서 딱딱해진 부분’이라는 뜻도 있거든요.



jeenkyungkim@gmail.com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