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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못 채운 구급차 상봉 … 북한 딸 "통일 되면 만나요"

중앙일보 2014.02.22 00:48 종합 6면 지면보기
건강 악화 때문에 구급차를 타고 금강산으로 이동한 김섬경(91) 할아버지가 21일 금강산 외금강호텔 앞에 대기하던 구급차에서 북측 아들 김진천(65)씨, 딸 김춘순(67)씨와 하루 일찍 작별인사를 나누고 있다. 북측의 딸 김씨는 “아버지 돌아가시지 말고 통일 되면 만나요”라며 마지막으로 인사했다. [사진공동취재단]
노환과 폐렴으로 방북이 어렵다는 진단을 받았으나 “죽더라도 금강산에서 죽겠다”던 김섬경(91) 할아버지. 하지만 이산가족 상봉 일정을 끝내 마치지 못했다.


82가족 꿈 같은 개별상봉
두 명 건강 나빠져 하루 만에 귀환
행사 직전 숨진 모친 소식에 탄식
헤어질 시간 다가오자 오열·실신

 전날 구급차 안에서 딸 김춘순(67)씨와 아들 김진천(65)씨를 만난 김 할아버지는 21일 오전 9시부터 금강산 외금강호텔 객실에서 두 시간 동안 개별상봉을 했다. 그러나 이들의 상봉은 여기까지였다. 기력이 쇠한 김 할아버지는 옛 얘기를 나누다 가끔씩 잠을 청했다. 그러는 동안 남쪽의 아들 김진황씨가 “이제 한(恨)을 푸셨죠”라고 질문하자 고개만 끄덕일 뿐 대답이 없었다. 진황씨가 북측 가족들에게 “아버지 상황이 이러하시다. 돌아가시면 화장해서 내가 모시고 있겠다. 통일 되면 만나자”고 양해를 구했다. 상봉 일정을 더 진행하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춘순씨와 진천씨는 고개를 끄떡였다. 구급차 속의 김 할아버지는 자신이 상봉장을 떠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충격을 걱정해 아무도 말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탄 구급차를 보던 춘순씨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아버지, 돌아가시지 말고 통일 되면 만나요”라며 환송했다.



 지난 10일 허리 수술을 받고 북측 여동생 홍영옥(82) 할머니를 만나러 나섰던 홍신자(84) 할머니. 그도 호텔 객실에서의 개별상봉을 끝으로 남쪽으로 귀환했다.



 북한에서 의사를 했다는 홍영옥 할머니는 상봉 내내 “언니, 열은 없어? 수술했으니 회복하는 중일 거야. 식사도 하고 운동하면서 (내) 걱정 하지 말고 지내”라며 헤어진 언니의 건강을 챙겼다. 남쪽으로 향하던 홍 할머니는 “안타깝고, 슬프고, 이루 말할 수 없다. 동생을 데려갔으면 좋겠다”며 하루 먼저 이별하는 걸 아쉬워했다.



 귀환한 두 가족을 제외한 80가족은 이날 개별상봉에 이어 가족 간 마지막 식사인 점심을 같이 먹고 오후엔 가족단위 상봉을 하면서 총 6시간을 함께했다. 개별상봉 땐 서로 준비해 간 선물을 교환하고, 전날 못다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김용자(68) 할머니는 1951년 서로 다른 배를 타고 대동강을 건너다 자신과 어머니는 남쪽에 정착했으나 동생 김영실(67) 할머니를 북에 남겨둬야 했다. 김용자 할머니가 동생을 만나 전한 소식은 어머니가 상봉 행사 직전 사망했다는 부음이었다. 김용자 할머니는 “작년 9월에 했으면 함께 오셨을 텐데…”라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선물로 준비해 간 옷가지와 화장품을 내놓던 김용자 할머니는 “내복은 어머니가 준비하셨는데, 여기 오는 것(상봉)이 확정되는 걸 보고 눈을 감으셨으니까 더 안타깝지”라며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1950년 6·25 전쟁 중 김정희(82) 할머니와 헤어진 김동빈(80) 할아버지는 누나에게 “폐암 치료를 받고 있는데 지금은 좀 나아져 올 수 있었다”고 반가워했다. 김 할아버지는 선물로 준비해 간 오리털 점퍼를 꺼내며 “(내가 사는) 강릉에는 설 명절 기간 문을 연 가게가 없어 부산까지 가서 구해왔다”고 했다. 1972년 12월 서해상에서 홍어잡이를 하다 납북된 형 박양수(58)씨를 만난 동생 양곤(52)씨가 이별이 다가오자 오열을 하다 쓰러져 의료진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이날 상봉 행사는 실내행사로만 이뤄졌다. 과거엔 가족들끼리 삼일포 나들이를 했지만 이번에는 눈과 낮은 기온으로 불가능했다. 상봉 기간 북한 측 지원요원들은 남측 기자들을 만나 “김연아 선수는 금메달을 땄느냐”고 물었다. 실패했다고 하자 “은메달도 대단한 거지요”라며 관심을 보였다. 지난해 말 장성택 당 행정부장 처형과 관련해선 “우리(북)는 수령과 당이 일체다. 우리는 전혀 불안하지 않다. 그랬으면 지금 이산가족 행사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23일부터 남측 가족을 만나겠다고 신청한 북측 88명을 만나기 위해 372명이 금강산으로 향한다. 대신 현재 금강산에 있는 이산가족들은 22일 오전 한 시간의 작별상봉을 끝으로 다시 긴 이별로 돌아간다.



금강산=공동취재단,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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