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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삶과 죽음 공존, 탑골공원 그 슬픔 속으로 …

중앙일보 2014.02.22 00:24 종합 24면 지면보기
퇴적공간

오근재 지음, 민음인

252쪽, 2만5000원




글쎄, 늙는다는 건 대체 무엇일까? 좋게 보면 숙성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곰삭은 김치나 잘 익은 술 같은 것 말이다. 어떤 광고카피에서 ‘나이가 드는 게 아니라 멋이 든다’라고 표현한 바로 그것 말이다. 하지만 홍익대 교수를 지내며 사람과 공간, 그리고 예술이 지닌 가치를 연구했던 지은이는 이를 두고 환상에 불과하다고 일축한다. 아무리 그럴싸한 수사를 동원해도 노화의 냉혹한 진실을 가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노화를 두고 “잉여인간이 돼 퇴적공간으로 밀려나는 것”이라고 설파한다. 언뜻 들으면 지나치게 자조적인 말이 아닌가도 싶다. 하지만 대학에서 퇴임한 뒤 노인들이 모이는 공간에 매일 들어가 내부에서 그들과 부대끼며 실증적으로 생생하게 파악한 결론이 그렇다니 할 말이 없다.



 지은이는 이를 위해 서울 탑골공원과 종묘시민공원 등 노인 공간을 오랫동안 찾으면서 관찰자에서 내부자로 진화했다. 노인과 그들의 공간의 대상으로 문화연구를 시도한 것이다. 그가 파악한 이 공간은 “강의 상류로부터 떠밀려 내려 하류에 쌓인 모래섬과 같은 노인들의 퇴적 공간”이다. 이 퇴적공간 내부에서 관찰한 노인들은 모두가 한때 사람이었을 뿐 이제는 ‘어르신’이라는 또 다른 존재일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인은 더 이상 주체성을 가진 인간이 아니라 인구통계학적인 대상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상은 노화를 생물학적 문제로만 여기지 않고 노동 시장에서 멀어지는 사회적인 현상으로 파악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이런 곳에서 노인들의 여러 측면을 관찰했다. 특히 성적 매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초로의 ‘박카스 아줌마’와 역시 매력 없고 주머니 사정도 여유롭지 못한 노인들의 관계를 면밀하게 살폈다. 그 결과 이들은 육체적인 욕망에 사로잡히기보다 다만 고독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할 뿐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오랫동안 관찰한 결과 국외자들의 짐작과 달리 성적 매매는 드물었다고 한다. 어차피 서로 기대하는 게 별로 없어서라고 한다. 신윤복의 ‘월하정인’에 등장하는 남녀의 은밀한 감정과 관음증 따위가 비집고 들어올 여유가 없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지은이는 이 공간들이 아무리 노인으로 붐벼도 공동체와는 거리가 멀다는 데 주목한다. 어느 날 그 공간에 나오지 않는 노인은 금세 잊힌다. 사라진 노인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이곳을 ‘삶과 죽음의 공동경비구역’이라고 표현한다. 서서히 죽음으로 가고 있는 노인들은 이런 식으로 서로 만나고 헤어짐을 무표정하게 반복할 뿐이다.



 그가 바라본 노인 세상은 근본적으로 디스토피아다. 노인이 되면 불현듯 다음과 같은 것들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희로애락을 지닌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자원으로 분류돼 왔음을. 그래서 물성적 교환가치가 소멸하는 순간, 시장에서 쓰레기처럼 폐기됐음을. 그래서 ‘어르신’들은 한결같이 사는 게 고독하고 마음이 쓸쓸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은이는 ‘퇴적공간’이 돼버린 노인공간이 사실은 가장 인간적인 곳일지 모른다고 지적한다. 빠르게 변하는 기술문명에서 하차해 서서히 사라져가는 인간적 가치가 마지막으로 명멸하는 ‘슬로 시티’ 같은 공간 말이다. 석양처럼 소멸돼 가는 노인들은 사실 이 시대 젊은이들을 비추는 사회적 거울이기도 하다. 노인은 젊은이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그런 미래를 향해 질주하려는 젊은이는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인 세상이 더 이상 디스토피아가 되지 않도록 사회가 애정을 갖고 보살펴야 한다는 지적이다. 모두가 늙어가고 있지 않은가.



 요즘 노인문제는 시대의 화두다. 다양한 시각에서 이를 다룬 책이 쏟아지고 있다. 『대한민국 시니어 리포트 2014』(교보생명·시니어 파트너즈 지음, 교보문고, 332쪽, 1만4800원)는 구체적인 사례와 전문가의 충고를 통해 노인의 취업과 창업, 건강과 생활레저, 인간관계와 마인드 등을 소개한다. 『노후를 디자인하라』(심상준 지음, 새빛, 184쪽, 1만8000원)는 베이비 부머 세대의 노후 재테크, 시간테크, 일테크를 다룬 실용서다.



 노인용 에세이도 적지 않다. 『후회없는 삶, 아름다운 나이 듦』(소노 아야코 지음, 김욱 옮김, 리수, 184쪽, 1만2500원)은 일본 작가가 노인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충고를 차분하게 들려준다. 『나이 드는 내가 좋다』(요한 크리스토퍼 아놀드 지음, 원마루 옮김, 포이에마, 1만1000원)는 기독교 공동체의 관점에서 본 노인생활을 다룬다.



채인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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