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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동아시아 첫 세계지도, 일본이 작게 나온 까닭

중앙일보 2014.02.22 00:23 종합 23면 지면보기
욕망하는 지도

제리 브로턴 지음,

이창신 옮김, 김기봉 해제

RHK, 691쪽, 3만3000원




역성혁명에 성공한 태조 이성계는 곧바로 두 종류의 지도를 제작한다. 하늘을 그린 ‘천상열차분야지도’와 땅을 나타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다. 앞의 천문도는 새 왕조가 하늘의 뜻이라는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함이다. 천명(天命)이 바뀌었다는 선언이다. 후자는 줄여 강리도(疆理圖)로 불리는데, 유럽·아프리카까지 그린 동아시아 최초의 세계지도이다.



 강리도는 비단에 화려한 색채로 그려졌다. 바다는 풀빛, 강은 푸른빛, 땅은 황토 빛,산맥은 검은 선이다. 주요 행정지역과 군사지역이 촘촘히 표시됐다. 아쉽게도 원본은 전하지 않고, 사본 세 개가 모두 일본에 있다. 그런데 조선의 크기가 중국의 5분의 1쯤으로 그려졌다. 일본은 조선의 3분의 1 정도로 작다. 축적이 크게 왜곡된 것이다.



 지도제작 책임자인 권근이 설명을 붙였다. "천하는 넓다. 이를 몇 자 폭에 그리자니 상세히 표현하기 어렵다…우리나라를 더 넓히고 일본을 넣어 새 지도를 만드니 조리 있고 볼 만하다.” 애당초 정확한 축적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중국보다는 작지만 만만찮은 크기와 힘을 지닌, 세계 속의 조선을 나타내려는 의도였다.



 이처럼 모든 지도에는 욕망이 담겨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영국 퀸메리대 역사학 교수인 제리 브로턴은 『욕망하는 지도』에서 그리스 지리학도 본디 실용적 목적보다 철학적 성찰에서 시작됐다고 말한다. 지도가 우주에서 인류의 위치를 설명하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헤파이스토스가 아킬레스에게 만들어줬다는 둥근 방패는 중심에 땅·하늘, 바깥에 인간의 도시,둘레엔 바다가 묘사해 당시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중세의 ‘헤리퍼드 마파문디’는 신앙 지도이다. 동쪽을 위로 한 세계에 천지창조에서 최후의 심판까지 그렸다. 독일의 발트제뮐러는 ‘우주형상도’에 최초로 아메리카를 별개 대륙으로 나타냈는데, 대발견 시대를 촉발한다. 이러한 지도는 점차 경계와 국가를 중심으로 그려진다. 이처럼 종교적·정치적·상업적 욕망이 지도의 이면에서 항상 꿈틀거렸던 것이다.



 물론 정확한 지도도 끊임없이 시도됐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지리학 입문』에서 위도와 경도를 사용하는 과학적 방법론을 제시했다. 그의 원뿔형 도법 이후 메르카토르의 원통 도법,몰바이데의 등비율 도법 등이 나왔지만 정적(正積)에 이르지는 못했다. 아무리 지도를 크게 그려도 평면에 정확히 그릴 수 없다. 독일의 수학자 가우스가 이미 ‘곡면과 평면은 등각 투영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않았나.



 지금 우주시대를 맞아 GPS와 ‘구글 어스’가 종전의 지도를 급속히 대체하고 있다. 그런데 입체사진까지 제공하는 구글 지도는 과연 정확하고 중립적인가. 엄청난 돈을 들여 구축한 만큼 상업적 욕망이 담겨져 표출되지 않을까. 각종 네비게이션에는 이미 상업적 표지가 범람한다.



 저자는 욕망을 걷어낸 지도가 애초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선택과 해석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이제 가상공간의 ‘지리정보 앱’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대인은 자기만의 독도법(讀圖法)이 필요해 보인다. 자칫 길 위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말이다.



박종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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