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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맥'도 독하다 … 회식 때 영웅본색주·맥맥주 마신다

중앙일보 2014.02.22 00:05 종합 18면 지면보기
지난 18일 저녁 강남 임피리얼팰리스호텔 바에서 직장인들이 칵테일을 즐기고 있다. 맥주병을 거꾸로 꽂아놓은 ‘코로나리타’ 등이 보인다. [박종근 기자]


# 15년차 직장인 이상호(42)씨는 요즘 회식 때마다 ‘문화 충격’을 경험한다. 칵테일 하면 과거 대학교 때 커다란 대접에 소주·콜라·박카스 등을 부어 ‘신고식’ 때 원샷하는 것에 익숙한 그다. 그런데 요즘 30대 젊은 사원들은 회식을 하는 식당에 홍초나 탄산수 등을 사들고 와 술에 타 먹는다. 이씨는 “직원들에게 소맥이나 소주를 강권하지 못한다. 이들은 독한 술이 싫다며 음료수를 타먹는 일이 다반사”라고 말했다.

술술 넘어가는 저도주 바람



 # 서울 이태원과 한남동의 잘나가는 바에선 맥주병을 커다란 칵테일 잔에 거꾸로 꽂아놓은 ‘코로나리타’나 맥주병처럼 생긴 와인을 꽂은 ‘버니니리타’를 흔히 볼 수 있다. 강남 임피리얼팰리스 조이바의 채희철 바텐더는 “코로나리타 등을 지난여름 한정 메뉴로 내놨는데 판매 기간이 끝난 후에도 계속 만들어 달라는 고객이 많다”고 말했다.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 스카이라운지바 김기춘 바텐더도 “주류 중 도수가 낮은 맥주에 토마토 주스를 넣어 도수를 더 낮춘 ‘레드 아이’ 같은 맥주칵테일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가 잦다”고 전했다.



 # 롯데주류는 지난 17일 알코올 도수 19도짜리 ‘처음처럼’을 18도로 낮춰 내놨다. 하이트진로도 이달 안에 19도 ‘참이슬’의 도수를 18도대로 내려 선보인다. 젊은 층은 물론 중장년층으로까지 번지는 순한 소주 열풍을 선점하겠다는 것이 주 이유다. 롯데주류 관계자는 “도수를 낮추면 병 숫자로는 더 먹어 매출이 늘지 않느냐는 시각이 있는데, 심리적인 것일 뿐 매출 데이터로 입증된 바는 없다”고 밝혔다. 그간 도수를 낮췄을 때 매출 상승 효과가 반짝 있었지만, 이는 신제품을 내놓으며 대대적인 마케팅을 한 덕이지, 한두 달 뒤엔 원상 회복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 저도주 열풍이 불고 있다. 음주 문화의 변화는 2011년께 감지되기 시작했다. 고도수의 대명사 위스키는 2010년 270만 상자(700mL 12병 기준) 정도 팔렸지만 해마다 판매량이 줄어 지난해엔 197만 상자로 감소했다. 코냑 판매량도 2010년 2만6591상자에서 지난해 1만3350상자로 3년 만에 반 토막이 났다.



 저도주 위스키 ‘골든블루’의 홍준의 홍보실장은 “이제 주변에서 위스키를 병째 시켜 먹는 장면은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고 말한다. 반면 클럽이나 바에서 칵테일 한두 잔을 먹는 음주 문화가 자리 잡았다. 경기침체로 룸살롱 문화가 퇴조하면서 가장 타격을 입은 것도 위스키와 코냑 등 고도주다. 위스키 회사들은 전략을 바꿨다. 위스키로 만든 칵테일을 알리고 나선 것이다. 코냑 레미마르탱에 탄산수를 섞은 ‘레미 소다’, 발렌타인 17년산으로 만든 슬러시 ‘발렌타인17 아이스’, 시바스리갈에 오렌지향을 더한 ‘시바스 브라더후드’ 등 종류도 다양하다. 발렌타인 칵테일과 브런치 메뉴를 곁들인 세트 메뉴도 나왔다.



 이는 국민 건강 측면에서 보면 좋은 일이다. 칵테일을 취하도록 마시는 경우는 거의 없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칵테일은 많이 마시면 머리가 아프다”며 “기본적으로 한두 잔 가볍게 마시는 술”이라고 말했다.



 술 문화의 변화는 술 마시는 행태가 바뀐 것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음료수와 섞어 마시는 믹싱주를 표방한 ‘맥키스’는 대형마트와 편의점에서만 팔았는데도 지난해 약 60만 병이 나갔다. 술을 마트에서 사서 집에서 가족과 함께 먹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는 뜻이다.



 이렇게 섞어 마시고, 집에서 마시고, 조금만 먹는 음주문화가 퍼지면서 술과 함께 먹는 짝꿍 음료가 덕 보는 경우도 있다. 오렌지주스·포도주스 같은 일반 과일음료는 매출이 20%가량 줄었지만 보드카에 섞어 먹는 ‘크랜베리 주스’나 ‘코코넷워터’ ‘토닉워터’ 등은 상한가다. 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과실주스 중 크랜베리주스 수입량은 지난해 153t을 기록, 전년에 비해 248% 늘었다. 이마트 김주한 음료 바이어는 “칵테일 재료 과즙음료는 자몽, 라즈베리나 크랜베리 같은 단맛이 적으면서도 신맛이 강한 것이 주로 사용되는 편”이라고 말했다. 크랜베리주스 브랜드 ‘오션스프레이’ 관계자는 “클럽 등에서 보드카와 크랜베리주스를 묶어 세트상품으로 내놓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바텐더협회 등에 주스를 지원하는 등 칵테일용 짝꿍 음료 마케팅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해 이마트에선 칵테일 재료 ‘토닉워터’와 물에 탄산을 더한 ‘탄산수’가 전년보다 각각 89.5%와 22.0%나 많이 팔렸다. 칵테일의 마무리로 올리는 생레몬까지 덩달아 판매가 늘었다.



 소맥에 그쳤던 소주나 맥주 칵테일 음용법도 다양해지는 추세다. 대규모 인원이 식당에서 회식을 할 때도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름에서 나오는 재미도 있기 때문이다. 식초로 만든 건강음료 홍초는 술과 섞는 레시피를 아예 전문 셰프가 만들어 홍보하고 있다. 소주 한 병에 홍초 한 병을 섞는 ‘영웅본색주’, 소주잔 바닥에 홍초가 가라앉게 섞은 ‘고진감래주’, 소주 한 잔을 따라 내고 나머지 한 병에 홍초를 넣은 ‘홍익인간주’ 등이다. 대상청정원 이기섭 과장은 “강남 주점에서는 아예 메뉴로 내놓고 판매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소주 한 병에 비타500 2병 또는 3병을 섞은 ‘비타주’, 소주와 원두커피를 1 대 5의 비율도 탄 ‘소원주’, 소주 한 잔 대신 맥키스를 맥주에 탄 ‘맥맥주’ 등도 회식 자리에 자주 등장하는 칵테일이다. 오렌지주스와 맥키스를 섞은 ‘선셋주’나 쿨피스와 맥키스를 믹스한 ‘맥피스’도 있다. 평소 회식 자리에서 소원주를 자주 마신다는 이민희(34)씨는 “쓴 소주향 대신 내가 좋아하는 향긋한 원두향이 날 뿐 아니라 술도 덜 취한다”고 소원주 예찬론을 폈다.



 저도주 열풍은 여성 파워 신장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에서 미리 섞어놓은 칵테일인 ‘알코올 음료’ 매출은 지난해 전년보다 12.4% 증가했다. 이 중 여성 구매 비율이 67.5%에 달했다. 젊은 20~30대 여성을 겨냥한 보드카 ‘스미노프’의 지난해 하반기 매출은 상반기 대비 무려 122.2% 증가했다. 무알코올 맥주 ‘하이트제로0.00캔’과 ‘밀러맥스라이트캔’의 지난해 매출 신장률도 44.3%로 전체 맥주 매출 신장률 24.6%를 훌쩍 뛰어넘었다. 막걸리를 봐도 여성들이 주로 찾는 막걸리가 훨씬 잘 팔린다. 세븐일레븐에서 남성들이 주로 먹는 알코올 도수 6도의 일반 막걸리는 지난해 하반기 판매가 상반기보다 9.6%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반면 과일향을 섞거나 도수를 3도로 낮춘 저알코올 막걸리는 20.1%로 성장세가 두 배 이상 높았다. 이들 상품의 여성 구매 비율도 65.0%에 달했다.



 흑맥주 ‘기네스’를 파는 디아지오코리아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기네스의 평균 남녀 소비자 비율은 8 대 2 정도인데 국내에선 소비자 절반 정도가 여성이다. 이 회사는 조니워커 플래티넘 라벨의 광고 모델로 당당한 이미지의 여배우 김소연을 기용하기도 했다. 페르노리카코리아의 위스키 브랜드 마케팅 매니저 중 절반 이상은 여성이다. 이젠 위스키를 팔기 위해 여성의 시각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



글=최지영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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