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낙랑고분 관재로 죽어 천 년, 계백·김유신과 동갑내기 살아 천 년

중앙일보 2014.02.22 00:03 종합 20면 지면보기
① 줄기 속이 모두 썩어버린 강원도 태백산의 주목. 겨울철 흰 눈을 품고 있는 모양이 의연하다. ② 붉은 빛을 띠는 주목 줄기. ③ 빨강 컵 모양의 주목열매. 가운데 씨앗이 들어있다. [사진 태백시청]
백두대간을 타고 점봉산·태백산·소백산·덕유산을 거쳐 바다 건너 한라산까지 태산준령의 꼭대기에는 늙은 주목들이 터를 잡고 있다. 비틀어지고 꺾어지고 때로는 속이 모두 썩어버려 텅텅 비어버린 몸체가 처연하다. 그런 부실한 몸으로 매서운 한겨울 눈보라도, 여름날의 강한 자외선도 의연히 버텨낸다.


박상진의 우리 땅 우리 나무<5>주목

 오래 산 주목이 모두 이렇게 육신이 병들고 허해져 있는 것만은 아니다. 몸 관리를 잘해 빈 속 없이 꽉꽉 채워져 있는 주목의 육신은 쓰임새가 너무 많다. 껍질도 속살도 붉은 주목(朱木)은 잡귀(雜鬼)를 물리치는 데 쓰이는 벽사(<8F9F>邪)의 나무였다. 아울러 몸체 일부에서 ‘택솔(Taxol)’이라는 항암물질을 만들어내고 있으니 나무를 썩게 하는 미생물들도 함부로 덤비지 못한다. 금상첨화로 나무의 질이 좋기로도 이름이 나 있다. 주목은 천천히 나무 속을 다져가면서 정성스레 명품 몸을 만들어 간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주목이 명품임을 먼저 알아준 이는 바로 절대 권력자들이었다. 살아 생전에 누리던 영광을 저승길에서도 언감생심 주목을 함께 가져가고 싶어 했다. 우선 자신의 주검을 감싸줄 목관(木棺)으로 썼다.



 일제강점기 평양 부근의 오야리 고분에서 출토된 낙랑고분의 관재, 만주 지린(吉林)성 지안(集安)현 환문총 및 경주 금관총의 목곽(木槨) 일부가 모두 주목이다. 그 외 공주 무령왕릉에서 나온 왕비의 두침(頭枕)도 주목이었다. 활을 만들거나, 톱밥을 물에 우린 다음 궁중에서 쓰는 붉은색 물감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강원도 정선군 남면 무릉리 두위봉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주목 세 그루가 천연기념물 433호로 지정돼 있다. 나이는 천 년이 넘었고 가운데 맏형은 자그마치 1400년이나 됐다. 김유신 장군과 계백 장군이 그와 동갑내기다. 삼국통일의 소망을 달성한 승자나 백제의 최후를 몸으로 저항하던 패자나 모두 영욕의 세월을 뒤로한 채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 버린 지 오래다.



 그러나 주목은 지금도 두위봉의 터줏대감으로 살아가고 있다. 주목은 낙랑고분 관재처럼 죽어서는 2000년을 넘나들고 살아서도 1000년을 훌쩍 넘기고 있으니 흔히 주목을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이라고 하는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니다.



 주목은 아스라이 먼 3억만 년 전 지구상에 나타났으며, 한반도에서 새 둥지를 마련한 세월만도 200만 년이 훨씬 넘는다. 몇 번에 걸친 빙하기의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고 자자손손 삶을 이어왔다. 터득한 지혜는 어릴 때부터 많은 햇빛을 받아들여 더 높이, 더 빨리 자라겠다고 서두르지 않는 것이다. 아주 천천히 숲속의 그늘에서 적어도 몇 세기를 내다보는 여유가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 성급한 주위의 다른 나무들은 어느새 수명을 다할 것이니 그날이 오기를 조용히 기다린다. ‘바쁘다’로 하루를 지새우는 현대인에게 주목이 주는 메시지는 한번쯤 곱씹어 볼 만하다.



 주목은 솔방울을 매다는 다른 침엽수와는 달리 특별한 모양의 열매를 만들어 낸다. 열매는 작디작은 컵처럼 생겼는데 빨강 육질의 가운데에 흑갈색의 독이 든 딱딱한 씨앗을 담아두고 있다. 먹이로 하는 새들이 말랑말랑한 열매의 육질만을 소화시키고 자손을 퍼뜨릴 수 있도록 멀리 날아가서 볼일을 봐달라는 희망이 담긴 것이다.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