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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 주민등록번호 없애야 하나

중앙일보 2014.02.22 00:01 종합 28면 지면보기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신용카드사 개인정보 대량 유출 사건 이후 주민등록번호 제도에 대한 개편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가 대책을 검토 중인 가운데 “개인정보 유출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과 “현행 체제의 골격은 유지하면서 유출 방지 장치를 강화하면 된다”는 반론이 맞서고 있다. 두 갈래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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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 제거해야 정보 불안 없앨 수 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어느새 주민등록번호는 사생활에 대한 적이 되어 버렸다. 한 조사에 따르면 1991년 주민등록전산망이 가동되자마자 15만 명의 주민등록정보가 채권공갈단에 유출된 이래 최근까지 약 3억7400만 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돼 마케팅업자나 대출사기꾼, 채권추심·공갈단, 심부름센터 등에 넘어갔다고 한다. 여기에 업자들 간의 개인정보 거래를 감안한다면 그 피해 범위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미봉책으로 일관한다. 그때그때 무분별한 주민번호 수집 억제니, 아이핀 등의 대체번호 사용 권장이니 하는 어설픈 대안들을 냈다. 하지만 계속되는 주민번호 유출사태는 이 대안들이 무용지물임을 증명한다. 더구나 그런 대안들은 이미 유출된 주민번호와 개인정보를 제자리에 돌려놓는 것과는 전혀 무관하다. 지금 이 순간 그 주민번호들은 스미싱·스팸과 광고문자의 주축을 이룬다. 언제 어디서 누군가가 나의 주민번호를 이용해 나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어떤 패악을 저지르고 다닐지 알 수 없는 불안과 혼동의 상태가 만연해 있다.



 여기서 주민번호 제도의 전면적 재검토는 절실해진다. 널리 유출된 주민번호는 더 이상 공공의 목적에 기여하지 못한다. 도용된 주민번호가 언제 어떤 방법으로 공공행정과 사회질서를 어지럽힐지 모르기 때문이다. ‘간첩과 불순분자를 색출’할 목적으로 만든 주민번호가 이제는 어떤 간첩이나 불순분자도 손쉽게 신분을 위장해 은닉할 수 있게끔 하는 만능의 열쇠로 변질돼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주민번호 제도를 바꾸면 사회적 혼란이 우려된다고 위협한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주민번호 변경 건수는 24만 건에 달하며, 사회관계에서 주민번호보다 훨씬 중요한 이름도 120만 건이나 바꾸었다. 그래도 우리 사회와 행정에는 혼란이 없었다.



 실제 주민번호 폐지가 엄청난 불편과 비용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는 모든 분야에서 주민번호 외에도 또 다른 관리번호를 가진다. 교통행정에는 운전면허번호, 출입국에는 여권번호, 회사에는 사원번호, 은행에는 통장번호 등이 있다. 이 데이터베이스에서 주민번호만 제거하면 된다. 분야별로 독자적인 번호를 부여해 운용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행정 목적을 위해 이런저런 데이터베이스를 연동해야 할 필요는 분명 있다. 이런 경우를 위해 국민식별번호를 부여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이때에도 세 가지의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로 이 번호는 주민번호와는 다른 체계로 구성돼야 한다. 둘째로 연동돼야 할 데이터베이스를 엄격한 기준에 의해 최소한으로 선별해 그 목적으로만 이 번호를 사용해야 한다. 셋째로 이 번호는 정부 내부에서만 사용하고 외부에서는 사용은 물론 알 수도 없도록 해야 한다.



 부연컨대, 주민번호는 이미 너무도 많이 유출돼 개인의 일상을 침범해 오는 바이러스로 변질돼 버렸다. 그것은 탐욕에 빠진 장사치들의 이윤을 보증하는 값싼 상품에 지나지 않는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겠지만, 그래도 안 고치는 것보다는 고치는 것이 미래를 위해 훨씬 나은 일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공공 서비스 위해 꼭 필요 … 현대화하면 된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장
언제부턴가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사고가 발생하면 으레 주민등록번호 제도 존폐를 둘러싼 논쟁으로 귀결되는 일이 반복되었다. 일각에서는 주민번호 제도는 애초에 간첩을 식별하기 위해 만든 냉전시대의 산물이자 국민을 감시·통제하는 도구이므로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 국민의 주민번호가 유출된 지금 상황에서 주민번호 제도에 대한 근본적 성찰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건설적 논의의 출발은 이데올로기적 수사가 아니라 지금 이곳에 과연 여전히 주민번호 제도가 필요한가, 주민번호 제도가 국가의 효율적 운영과 안전보장, 국민의 권리 실현과 복지 증진에 필요한가라는 질문으로 시작돼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주민번호 제도 일반과 구체적인 역사적 구현체로서의 현존 주민번호 제도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주민번호 제도 일반은 조세·복지·의료·보험·연금·선거 등 정부의 주요 행정기능과 공공서비스의 원활한 수행을 보장함으로써 복지국가 체제와 민주주의를 제대로 작동하게 해주는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장치다. 따라서 주민번호 제도 일반을 폐지하자는 의견은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기존의 주민번호 제도를 그대로 고수하자는 일부 의견 또한 위험하고 설득력이 없다. 출생연도로 시작하는 주민번호와 이 번호에 기반한 역사적 주민번호 제도는 번호 자체와 운용상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견됐다.



 현 제도의 문제점은 우선 주민번호가 너무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번호 자체가 성별·나이·지역 등 많은 정보가 포함된 개인정보 덩어리다. 둘째는 민간을 포함해 너무 많은 곳에서 사용된다는 점이다. 주민번호는 범용번호가 아니라 공공·행정서비스용 전용 번호다. 관리능력이 부족한 민간업체까지 사용하다 화를 자초한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주민번호 제도의 한계는 도입 당시 1960년대 말의 기술적·제도적 한계에 기인한다. 정보처리기술과 전국 단위 네트워크가 없어 동사무소에서 수작업으로 번호를 생성했던 시절에는 번호의 충돌을 막기 위해 지역 코드 등 부가정보가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낮은 개인정보보호 의식과 관련법 부재는 주민번호의 범용적 활용을 통제하지 못했다. 역사적 산물로서의 현존 주민번호 제도의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통일 이후까지 바라보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최신 기술과 법제에 근거해 새로운 번호체계와 제도를 새로이 디자인해야 한다. 새 번호 제도의 설계 원칙은 주민번호로 임의번호를 부여해 추가 정보유출을 막고, 국가기관만이 안전하게 보관하고 행정 목적으로만 제한적으로 사용하며, 변경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제는 충돌하지 않는 임의의 번호를 원하는 만큼 생성·저장·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고, 국민들의 개인정보보호 의식과 요구도 높기 때문에 변화를 위한 내·외적 조건들은 충분히 갖춰졌다고 보인다. 지금이야말로 주민번호 제도를 현대화하고 주민번호를 행정 목적의 전용번호로 제자리를 찾아주어야 할 때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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