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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칼럼] 수능 만점 받으려 영어 공부 하나요?

중앙일보 2014.02.22 00:01 종합 29면 지면보기
최하은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3학년
요즘 버스나 지하철에서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대화하는 아이와 엄마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유치원복을 입은 아이가 영어 문장을 구사하는 것을 보는 엄마의 표정에는 흡족한 미소가 가득하다. 그렇지만 나의 눈에 그 아이들은 그저 안쓰럽기만 했다. 앞으로 적어도 20년 가까이 영어로 인해 골머리를 앓을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조금이라도 일찍 태어나 초등학교 입학 전까진 영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었고, 감사했다.



 국제중학교, 조기유학을 넘어 이젠 영어유치원에서부터 시작해야 뒤처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토록 뜨거운 영어 교육열 덕분에 접속사 ‘when’과 의문부사 ‘when’의 용법을 달달 외우는 아이들은 많아졌지만, 그와 동시에 이게 ‘웬’ 일인지, ‘왠’ 일인지 구별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함께 많아졌다. 그럼에도 많은 부모들이, 그리고 학생들 스스로 한국어 어법 능력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영어 하나만큼은 완벽하게 구사하기를 바라고, 어마어마한 돈과 시간을 영어에 투자하는 데 망설이지 않는다. 왜? 우리 사회 여기저기서 모두 ‘글로벌 인재’를 찾고 있기 때문에.



 최근 교육부에서 영어 사교육비 절감 정책의 일환으로 수능 영어 문제를 매우 쉽게 출제하겠다고 발표했다. 더불어 평가방식 자체를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토익 학원에 가는 버스 안에서 스마트폰으로 이 뉴스를 접한 나는 교육부의 고식지계(姑息之計·임시방편으로 당장 편한 것을 택하는 계획)에 그저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누구나 쉽게 수능에서 고득점을 할 수 있으면 사교육 열풍이 가라앉을 것이라는 기대는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보였다. 이 같은 처방은 학생들이 맹목적으로 영어 공부에 매달리는 까닭이 오로지 ‘수능 영어 고득점’일 때만 가능하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끈질기게 이어온 영어 공부의 궁극적인 목표는 수능 고득점이 결코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방학마다 영어 학원에 빈자리 하나 없이 20대 청년들이 꽉 차 있을 리 없을 텐데 말이다.



 청년들이 원하는 모든 일자리는 한결같이 상당한 영어 능력을 요구한다. 영어 시험 점수는 고고익선(高高益善)이요, 어학연수나 교환학생, 해외체류 경험은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스펙이 되어 버렸다. 너도나도 ‘글로벌 인재’를 요구하는 사회에서 영어는 선택의 영역이 아니라 의무가 됐다. 수능이라는 레이스를 완주한 후에도 사회인이 되는 길목에서 영어와 또다시 부딪힐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고쳐야 하는 것은 수능 평가방식이 아니라 ‘영어 지상주의’ 풍토다. 10월 9일 한글날이 법정공휴일의 지위를 되찾았으면 뭐 하나. 나머지 364일은 우리에게 ‘English day’인 것을.



최하은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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