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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개인 의견 철회하면 그걸로 끝!" 이라고?

중앙일보 2014.02.22 00:01 종합 30면 지면보기
김현기
도쿄 총국장
지난달 27일 서울에선 캐럴라인 케네디 주일 대사, 게리 로크 주중 대사, 그리고 성 김 주한 대사의 3자 회동이 있었다. 하지만 이와 별도로 물밑에서 추진된 모임이 또 하나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케네디 주일 대사’의 만남이었다. 케네디 대사의 요청에 의해서다.



 두 사람은 장녀로, 대통령이던 부친을 흉탄으로 잃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부친 간의 친분도 있었다. 1961년 11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미국을 방문해 존 F 케네디를 만났다. 두 사람은 당시 44세의 동갑내기. 2년 후 케네디가 암살당하자 박 의장은 장례식에도 참석했다.



 케네디 대사는 첫 한국 방문에서 자신과 공통점이 많은 박 대통령을 만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회동은 최종적으로 불발됐다. 외교 의전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됐다고 한다. 하지만 보다 큰 원인은 케네디와 박 대통령이 만날 경우 일본이 보일 ‘반발’이었을 것으로 외교소식통들은 추정한다.



 주일 미국대사관은 지난해 말 아베 신조 총리가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참배하자 즉각 “실망했다”는 성명을 냈다. 이에 일본 내 우익 주간지들은 케네디를 “놀러만 다니는 한가한 대사”라고 조롱하기 시작했다. 환영 일색에서 갈등 기류로 돌변한 것이다. 이 와중에 케네디가 한국에서 박 대통령과 ‘인증 샷’을 찍었다면 일본으로선 기절초풍할 일이었을 게다.



 여기서 궁금증 1. 노련한 정치인인 케네디는 ‘일본 내 파장’을 충분히 예상했을 게다. 그런데도 면담을 희망했다. 궁금증 2. 최근 케네디는 NHK와 진행 중이던 인터뷰를 갑자기 공개 거부하고 나섰다. 일찍이 없던 일이다. 왜 그랬을까.



 일 언론들은 “모미이 NHK 회장의 위안부 관련 발언, 햐쿠타 경영위원의 미군 원폭 투하 관련 발언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하지만 틀렸다. 정통한 소식통은 “케네디는 망언을 한 이들의 책임을 묻기는커녕 적당히 넘기거나 두둔하는 아베 정권 핵심부가 더 큰 문제라고 보고 있다”고 귀띔한다. NHK에 대한 취재 거부도 같은 맥락이다.



 아베는 버티려 한다. ‘인사’에서 한번 밀리기 시작하면 정권 기반이 무너진다는 것을 제1기 내각 때 처절히 맛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디까지나 개인 의견” “발언(망언)을 취소했으니 문제 없다”는 궤변만 반복한다. “나쁜 짓을 해도 나중에 취소하면 괜찮다”는 황당한 논리다. 자라나는 일본 어린이들이 듣고 배울까 두렵다. 하지만 ‘착한’ 일본 언론들은 침묵한다. 그러다 보니 에토 세이이치 총리보좌관의 “오히려 실망한 건 일본”이란 ‘핏대 발언’이 나오고, 혼다 에쓰로 경제자문역의 ‘가미카제 특공대→자기 희생→아베의 야스쿠니 참배’란 해괴한 공식이 속출한다. 마치 미국의 인내를 시험하는 듯하다.



 아베는 총리 취임 전부터 말버릇처럼 “전 정권에서 망가뜨린 미·일 관계를 재건하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다음 정권도 똑같은 소리를 할지 모르겠다.



김현기 도쿄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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