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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의 현문우답] 이념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중앙일보 2014.02.22 00:01 종합 30면 지면보기
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원래는 하나의 열매였습니다. 선의 열매도 아니고, 악의 열매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한 덩어리였을 뿐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가 따먹었다는 선악과(善惡果) 말입니다. 선악과는 영어로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선과 악에 대한 분별의 나무)’입니다.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 에덴동산은 낙원이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싸울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싸움은 늘 이쪽과 저쪽으로 편을 가를 때 생기는 거니까요. 좋은 것, 나쁜 것을 따지지 않으니 싸움도 없는 겁니다.



 그러다 한 입 베어 먹었습니다. 동화 속에 나오는 백설공주처럼 말입니다. 절대 먹어선 안 된다는 선악과를 먹고서 인간은 달라집니다. 이제 마구 쪼개기 시작합니다. 선과 악, 내 편과 네 편,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말입니다. 쪼개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습니다. 그 이분법의 프리즘 속으로 깊이 잠이 드는 겁니다. 마녀의 사과를 먹은 백설공주처럼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도 그런 사과를 크게 한 입 베어먹은 게 아닐까요. 지구촌이 미국 진영과 소련 진영으로 양분되던 시절에 말입니다. 둘은 한반도에서 충돌했고, 우리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한 민족, 한 국가로 살아왔던 우리에게 한국전쟁은 일종의 선악과였습니다. 그걸 먹은 뒤부터 더 거세게 쪼개기 시작했으니까요. 남과 북으로 쪼개고, 다시 좌익과 우익으로 쪼갰습니다. 싸움은 지독했고, 남은 상처는 더 지독합니다.



 지난해 격렬하게 전개됐던 역사 교과서 논쟁도 같은 맥락입니다. 좌파는 ‘민족’을 주어로, 우파는 ‘국가’를 주어로 역사를 바라봅니다. 둘 사이에는 공통분모가 보이질 않습니다. 모든 사건과 쟁점을 좌우의 프리즘을 통해서만 보니까요. 역사만 그런 게 아닙니다. 정치적 진영과 노사 갈등, 환경 문제 등 대부분의 사회문제에서 충돌합니다. 그걸 보면 ‘인간은 선악과의 후예’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끊임없이 선과 악의 프리즘이 충돌하니까요.



 예수는 왜 이 세상에 왔을까요. 그 둘을 봉합하기 위해서입니다. 선과(善果)와 악과(惡果)로 찢어진 열매를 다시 한 덩어리로 되돌리기 위해서 말입니다. 인간이 따먹기 이전의 ‘선악과’로 돌아가는 겁니다. 예수는 말했습니다. “나는 가장 높은 자요, 가장 낮은 자다.” “나는 알파(시작)요, 오메가(끝)다.”



 이걸 우리가 먹은 선악과에 대입하면 어떻게 될까요. “나는 좌파요, 우파다.” “나는 보수이자 진보다.”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좌파면 좌파, 우파면 우파다. 어떻게 좌파이면서 우파인 게 가능한가. 보수면 보수, 진보면 진보지. 어떻게 보수이자 진보가 될 수 있나. 가장 높은 자는 가장 높은 자일 뿐이다. 어떻게 가장 낮은 자도 될 수 있나. 그건 회색주의가 아닌가.



 예수가 말장난을 한 걸까요.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요. ‘나’에 대한 울타리의 크기가 다른 겁니다. 좌파에게는 좌파만 ‘나’입니다. 우파에겐 우파만 ‘나’입니다. 그러나 예수에겐 좌파도 우파도 ‘나’의 울타리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나는 ‘거대한 우리’가 됩니다.



 그럼 눈이 달라집니다. ‘무엇이 좌파에게 좋은가’가 아니라 ‘무엇이 우리 모두에게 좋은가’로 바뀝니다. 우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파의 이익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익을 우선시합니다. 그럴 때 좌파는 우파를 품고, 우파는 좌파를 품게 됩니다. 그게 거대한 중도(中道)의 가슴입니다.



 그렇게 중도의 눈, 중도의 가슴을 가질 때 쪼개졌던 선악과가 봉합됩니다. 예수는 말했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진리는 늘 쪼개진 걸 봉합합니다. 제게는 이렇게 들립니다. “그럴 때 이념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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