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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교실에서 문화다양성을 가르치자

중앙일보 2014.02.22 00:01 종합 31면 지면보기
정재승
KAIST 교수
바이오 및 뇌공학과
미국은 초등학교 때부터 문화다양성을 가르치는 교과과정이 잘 발달돼 있다. 수업시간에 각 나라 말로 숫자 세는 법을 함께 배우기도 하고, 여러 나라 전통 의상을 입어보거나 전통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중국말로 숫자 세는 법을 배울 때에는 중국계 학생이 앞에 나와 유창한 발음으로 ‘이, 얼, 싼, 쓰’ 하며 수업을 주도한다. 피자를 함께 만드는 시간에는 이탈리아계 미국인 아이가 우쭐해하며 음식에 대해 소개한다. 일찍부터 ‘인종의 용광로’였던 미국은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편견 없는 사회를 만드는 첫걸음이란 사실을 인식해 지난 30년간 초등학교에서부터 교육해 왔다.



 21세기 들어, 우리나라는 다양한 인종이 함께 모여 사는 다문화사회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최근 3년 사이 매년 평균 3만 쌍의 커플이 다문화가정을 꾸리며, 현재 약 20여만 가구가 대한민국에서 뿌리내리며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의 자녀 수만도 15만 명이나 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50년에는 다문화가정 인구 추정치가 216만 명에 이른다.



 우리는 과연 피부색과 이목구비가 나와 다르게 생긴 사람들과 편견 없이 어울릴 준비가 돼 있는가. 그들과 함께 화목하게 살기 위해 우리 사회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다문화가족 차별실태조사에서 41.3%가 사회적 차별을 경험했다고 하니, 아직은 준비가 덜 돼 있는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각별히 교육하지 않으면, 인간의 무리짓기 본성은 나와 다른 인종에 대한 적대적 행동을 자연스레 표출할 수 있다. 한민족임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약소국에 대한 그릇된 편견이 팽배한 우리 사회는 아마도 이민족이 살기에 가장 힘든 사회 중 하나일 게다. 왕따 문화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은 크게 늘었지만, 다문화가정에 대한 정신적 폭력은 여전히 그 와중에도 논외다.



 한 국가의 품위는 배려와 포용의 범위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 땅에서 함께 어울려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세심한 배려와 포용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제는 깨달을 때도 됐다. 문화다양성을 이해하는 것은 세계 시민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양식이다.



 다문화가정에서 부모는 자녀가 학교에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길 바라면서도, 자신들의 뿌리 또한 잊지 않기를 바란다. 한국으로 이주해온 베트남 여성은 자녀에게 베트남이 어떤 곳인지 알려주고 싶고, 캄보디아에서 이민 온 남성은 자녀에게 캄보디아어를 가르치고 싶어 한다. 성숙한 사회는 그들을 우리 국민으로 만드는 것을 넘어, 부모의 나라들을 두루 사랑하는 온전한 인간으로 키우는 데 더 깊은 배려를 보인다.



 비영리 단체 다음세대재단은 5년 전부터 ‘올리볼리’(www.ollybolly.org)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각 나라의 동화책을 전자책으로 만들어 누구나 온라인에서 쉽게 읽을 수 있게 제공한다. 우리말로 번역된 버전과 그 나라 말로 된 버전을 같이 제공하며, 글자로만 서비스하는 것이 아니라 읽어주기도 한다. 인천, 화성, 제천, 남양주 등 지역 도서관에 올리볼리관을 만들어 원어 동화책을 함께 읽을 수도 있다.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캄보디아, 몽골, 우즈베키스탄, 이란, 티베트, 팔레스타인, 레바논 등 11개 나라의 동화가 올리볼리 사이트에 담겨 있다. 매년 20~30종씩 번역되고 있는 이들 나라 동화책만도 벌써 100종을 넘어섰다. 이 프로그램은 베트남 어머니가 자녀에게 베트남어와 베트남 문화를 가르치는 데 더없이 소중한 교재가 된다. 덕분에, 올리볼리 프로젝트는 지난해 세종문화상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이 동화책들은 다문화가정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함께 읽어야 할 책들이다. 다문화가정을 편견 없이 대하고 다양한 인종 사이에서 우리가 함께 생활한다는 것이 오히려 축복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는 여러 나라 동화책을 함께 읽어야 한다. 신데렐라와 미운 오리 새끼 이야기만 듣고 자란 아이들은 세계를 포용하는 시민이 되기 어렵다.



 지금은 올리볼리 같은 프로젝트가 몇몇 도서관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사실은 학교 교실로 옮겨와야 한다. 선생님들께서 다양한 인종이 함께 배우는 교실에서, 언젠가 다양한 인종과 함께 살아갈 우리들에게 세계 동화책이 얼마나 흥미로운지 가르쳐야 한다. 독특하면서도 보편적인 여러 나라의 동화들 속에서 균형 잡힌 초등학생으로 성장하게 해야 한다. 재미교포, 재독교포, 재일교포들이 경험했던 고통의 시간을 우리가 되풀이해선 안 된다. 문화다양성은 우리가 다음 세대에 전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다.



정재승 KAIST 교수·바이오 및 뇌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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