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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없다 … 90대 이상 25명 중 북측은 한 명도 없어

중앙일보 2014.02.21 00:40 종합 4면 지면보기
동생 박양곤씨(52·오른쪽)가 형 양수씨(58)를 42년 만에 다시 만났다. 동생은“행님아!”라며 목놓아 울었다. 박양수씨는 1972년 서해상에서 홍어잡이 중 납북된 쌍끌이 어선 오대양호 선원이다. [사진공동취재단]


1951년 1·4 후퇴 때 남쪽으로 피란하던 아버지에게 마루에 나와 손을 흔들던 딸은 두 살배기였다. 아버지는 그런 딸이 60대가 되고서야 처음으로 마주했다. 20일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린 금강산 면회소 상봉장. 남측의 손기호(91) 할아버지는 백발의 딸 인복(61)씨가 자신의 손을 잡자 “지금까지 살아줘서 고마울 뿐”이라며 울먹였다. 손 할아버지는 1·4후퇴 때 부모와 아내를 데리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딸은 외할아버지에게 맡기고 다음에 데려올 계획이었다. 하지만 경비가 강화되면서 그게 마지막이었다. 북의 딸 인복씨도 아버지를 껴안은 채 “못난이 딸을 찾아오셔서 고마워요”라며 울기만 했다.

북 평균수명 짧아 상봉 정례화 시급
남측 신청자 12만 명 중 5만 명 사망
사흘 중 만남 11시간 … 방식 바꿔야



 3년4개월 만에 재개된 이산가족 상봉장은 곳곳이 눈물바다였다. 11번 테이블에 앉은 김성윤(96) 할머니. 깊게 파인 주름살을 타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갓 서른을 넘긴 나이, 고향인 평북 신의주에서 남쪽으로 넘어올 땐 60년 넘게 혈육을 만나지 못하리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남한에서 올라간 이산가족 중 최고령자인 김 할머니는 이날 3명의 동생을 만났다. 헤어질 때 17살이었던 동생 김석려씨는 이제 백발이 성성한 팔순의 노인이 됐고, 사촌동생으로 기억하고 있었던 김학순씨는 만나보니 70세가 된 친동생이었다.



 “너희들은 너무 어려 부모님과 남겨두고 왔는데 이렇게 시간이….”



 김 할머니는 동생들의 거칠어진 손을 연신 쓰다듬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 할머니의 눈에는 다시 눈물이 맺혔다. 옛날 사진을 꺼내 남편과 두 남동생이 함께 남쪽으로 넘어오던 당시를 회상했다. 64년 전 일이지만 마치 어제 일인 양 6남매와 함께했던 어린 시절을 또렷이 기억해냈다.





 손 할아버지와 김 할머니를 포함해 이날 상봉장에 나온 90세 이상 고령자는 25명이었다. 분단이 길어지면서 이산가족들도 고령화하고 있다. 96명이 참가했던 2010년 이산가족 상봉 때 90세 이상은 20명이었다. 남한에 비해 평균 수명이 짧은 북측에서 상봉 신청을 한 90대는 한 명도 없다. 그러다 보니 부부나 자식 상봉은 23명에서 12명으로 줄었다. 이번에 남측에서 올라간 상봉 가족은 82명. 지난해 9월 100명이 선정됐지만 그 사이 사망하거나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친지와의 재회를 포기한 경우가 18명에 달했다. 대한적십자사 유중근 총재는 이날 상봉장 만찬에서 "시간이 없다. 시간이 지난 후 후회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라며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인 대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첫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진 2000년부터 행사에 관여해 온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당시엔 분단 50년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벌써 14년이나 지났다”며 “이산가족들의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재회의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산가족 신청자 12만여 명 가운데 이미 5만여 명이 숨을 거둬 이산의 한을 달래기엔 시간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수시로 상봉 행사를 하거나 정례화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 방식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번에 2박3일 상봉이 이뤄졌지만 실제 혈육이 만나는 시간은 식사 시간을 포함해도 11시간에 불과하다. 한 참석자는 “잠도 따로 자고, 당국자들의 눈치를 보며 재회하는 방식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금강산=공동취재단,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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