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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hi] 울지 마오 … 그대 있었기에 연아 있었다오

중앙일보 2014.02.21 00:24 종합 24면 지면보기
아사다 마오(일본)는 고개를 떨궜다. 20일 쇼트 프로그램 후 눈물을 쏟아낼 듯한 표정이었다. 아사다는 김연아에 대해 “좋은 라이벌이 있어 성장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았다”고 했다. 둘은 서로를 이기기 위해 애를 썼고, 그래서 정상을 다툴 수 있었다. [소치 로이터=뉴스1]


20일 소치 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이 열린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 가장 마지막 순서인 30번째로 나선 아사다 마오(24·일본)는 쇼팽의 ‘녹턴 E 플랫 장조’에 맞춰 연기를 시작했다. 아사다는 첫 점프에서 필살기인 트리플 악셀(공중 3회전 반 점프)을 시도했지만 엉덩방아를 찧었다. 트리플 플립에서도 회전수 부족 판정을 받은 아사다는 마지막 콤비네이션은 점프를 시도조차 못했다.

피겨 주니어 시절엔 독보적 존재
김연아 "왜 동시대에 …" 한때 열등감
둘 다 90년생, 서로에게 자극제 돼
소치선 심리적 압박에 잇단 실수



 55.51점, 16위. 1위 김연아(74.92점)보다 무려 19.41점이 낮았다. 키스앤드크라이존에서 전광판에 찍힌 점수를 본 아사다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듯한 표정이었다.



쇼트프로그램에서 점프를 시도하다 엉덩방아를 찧고 있는 아사다. [소치=뉴스1]
 ‘김연아의 10년 라이벌’ 아사다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지난해 4월 아사다는 “올림픽이란 최고의 무대를 집대성하는 의미로 메달보다 스케이팅 인생 최고의 연기를 하고 싶다”며 소치 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할 것임을 시사했다. 지난 18일 도쿄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마지막 올림픽인가’란 질문에 “끝나 봐야 안다. 밴쿠버에서 소치까지는 너무 빨랐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할 만한 연기를 펼치고 싶다”고 여지를 남겼지만, 이번 대회가 ‘라스트 댄스’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아사다는 주니어 시절 김연아에게 거대한 벽 같은 존재였다. 2004년 첫 대결에서 30점 차 이상 이겼다. 김연아는 자서전에 ‘왜 하필 저 아이(아사다)가 나랑 같은 시대에 태어났을까 이런 생각도 들었다’고 열등감을 털어 놓기도 했다. 아사다는 2008년까지 김연아와 세계 정상을 양분하며 피겨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일본 후지TV가 소치 올림픽 후 두 시간짜리 아사다의 일대기 방송을 준비할 만큼 그녀는 일본의 국민 영웅이다.



 하지만 2009년 세계선수권에서 김연아가 세계신기록을 세우면서 격차가 점점 벌어졌고, 2인자란 꼬리표가 따라 붙었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도 김연아에게 밀려 은메달에 그쳤다. 절치부심한 아사다는 점프의 기초부터 뜯어 고치고, 필살기 트리플 악셀 연마에 심혈을 기울였다. 2011년 간경변으로 타계한 어머니의 묘소를 찾아 금메달을 따오겠다고 다짐했고, 러시아 출국 날 선수단 유니폼을 입고 모녀의 추억이 서려 있는 단골 요리집을 홀로 찾아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단체전에서 실망스러운 연기를 보인 아사다는 개인전에서도 기량을 회복하지 못했다. 사토 노부오(72) 코치는 “훈련을 잘 소화했고 몸 상태도 좋았다. 큰 무대 경험이 많은 선수가 왜 이렇게 무너졌는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아사다에게 트리플 악셀은 트레이드 마크면서 동시에 저주였다”며 트리플 악셀이 ‘양날의 검’이 됐다고 평했다. 12세에 처음으로 트리플 악셀을 성공한 아사다는 성공률이 높지 않은 트리플 악셀을 고수했다. 넘을 수 없는 벽이 돼 버린 김연아 때문에 트리플 악셀을 고집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 많다. 일본 ‘더 페이지’는 지난해 12월 “ 아름다운 착지로 착실히 가산점을 받고 있는 김연아의 기술과 예술성을 이기기 위해서는 트리플 악셀 두 번으로 기술점수를 끌어 올리는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아사다는 최악의 쇼트 프로그램을 마친 뒤 일본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긴장을 느껴 몸이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아직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산케이스포츠는 “마음의 정리를 하지 못한 아사다는 말을 잇지 못했다. 표정에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고 묘사했다.



 일본 국민도 충격에 빠졌다. 일본 커뮤니티사이트 투채널(2ch.net)에는 “세금도둑” “대륙을 횡단하고 수영해서 돌아오란”란 악플까지 쏟아졌다. 반면 은퇴한 피겨선수 안도 미키(27)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트리플 악셀에 도전하는 모습은 굉장했다. 아직 내일이 있다. 후회 없이 자신감을 갖고 빛날 수 있도록. 어린 시절처럼!”이란 글을 올려 아사다를 응원했다. 아사다는 김연아에 대해 “옛날부터 좋은 라이벌이 있어 성장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았다”고 했다. 둘은 서로를 이기기 위해 애를 썼고, 정상을 놓고 싸웠다. 이젠 각자의 길을 가야 한다.



최준호·박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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