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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이건 망자를 위한 예의가 아니다"

중앙일보 2014.02.21 00:01 종합 29면 지면보기
이승호
사회부문 기자
“학교에서 말릴 수 있나요. 총학생회가 독자적으로 결정했습니다.”



 정해린(75) 부산외대 총장은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사고 발생 다음날인 18일 총학에 대한 불만을 나타냈다. 반면에 윤노엘(31) 부총학생회장은 “지난해처럼 (학교 지원금으로) 행사가 진행됐다면 안전 문제도 강구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19일부터 양측의 태도는 변했다. 학교는 언론에서 제기한 총학의 갑작스러운 숙소 변경, 이벤트 업체와의 리베이트 의혹에 대해 적극적으로 총학을 변호했다. 총학도 취재진의 질문에 학교에 모든 사실을 말했으니 물어보라며 답을 피했다.



 이런 변화엔 이유가 있었다. 총학 핵심 간부 A씨는 “학교와 긴밀히 논의하며 나름의 대응전략을 함께 짰다”며 “서로의 책임을 지적하기보다 코오롱과 리조트 측의 책임을 강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웅열 코오롱 회장이 직접 사과하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여 다행이었다”고 했다. 실제 총학 중앙운영위원회는 19일 성명에서 “건축 전문가가 아닌 학생들은 ‘부실 설계’를 생각할 수 없었다”며 “리조트 측을 사법처리하고 코오롱이 유족과 부상자에게 최대한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산외대의 한 처장도 “유족과의 보상 협의에서 역시 코오롱 측과 우린 입장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해 합의를 이끌었다”고 말했다.



 이번 사고에서 리조트와 코오롱의 책임은 부산외대나 총학보다 중대하다. 그러나 학교와 총학도 사고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진 않다. 총학은 1000여 명의 학생이 모이는 대규모 행사를 준비하면서 날씨 등 위험요인을 사전에 충분히 점검하지 않았다. 총학이 주도한 행사라지만 대학도 이를 최종 승인하고 1명의 보직교수와 2명의 교직원을 보냈다. 학생들이 참여하는 행사인 만큼 행사를 안전하게 치를 수 있도록 관리·감독해야 할 책임이 있다.



 사고 후 대학 측이 보여준 태도는 사고 수습보다 책임을 피하려는 인상이 강하다. 19일 변기찬 부산외대 국제교류처장은 “대학도 희생자”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코오롱 측에선 받아들일지 몰라도 피해 학생이나 일반 국민 입장에선 설득력이 떨어진다.



“빈소에 조문객 맞을 학교 직원 하나 안 보내더니 협상한다고 찾아왔느냐. 이건 망자를 위한 예의가 아니다.”



 18일 밤 울산 21세기좋은병원에서 만난 고 이성은(20·여)씨의 고모부 윤모(53)씨는 협상을 위해 빈소를 찾은 부산외대 정용각 부총장에게 이렇게 소리쳤다. 학교와 총학이 보다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였다면 유족들의 아픔이 지금보단 덜하지 않았을까.



이승호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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