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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남북 비밀접촉, 그 달콤한 유혹

중앙일보 2014.02.21 00:01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영종
정치국제부문 차장
싱가포르 시내 샹그릴라호텔에 나타난 원동연은 영락없는 관광객이었다. 야외수영장 선탠베드에 누워 열대과일 주스를 즐기던 그는 카메라 렌즈를 향해 활짝 웃어 보였다. 남북 비밀접촉에 나온 노동당 통일전선부 부부장이라고는 믿기 어려웠다. 임태희 노동부 장관과 김양건 당 통일전선부장이 대면한 싱가포르 고위급 접촉을 담은 비공개 영상자료의 한 장면이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10월 이뤄진 이 극비 만남은 MB-김정일 간 남북 정상회담을 겨냥했다. 하지만 후속협의가 삐걱거렸고, 이듬해 3월 북한의 천안함 폭침 도발로 일단락됐다.



 2년 뒤 5월에는 베이징에서 남북한이 비밀리에 만났다. 역시 의제는 정상회담이었다. 북한은 자신들 뜻대로 되지 않자 3주 뒤 논의 내용을 일방적으로 폭로했다. “남측이 돈봉투를 건네려 했다”는 주장까지 펼쳤다. 접촉에 나섰던 북한 국방위는 “이명박 정권과는 상종하지 않을 것”이라며 문을 닫아걸었다.



 비밀접촉의 유혹은 달콤하다. 최고수뇌부의 신임장을 거머쥔 실세 당국자들이 제3국에서 은밀하게 교감한다는 점에서다. 무엇보다 남북관계의 흐름을 단박에 반전시킬 대국민 ‘깜짝쇼’는 짜릿하다. 남북 대치의 강도가 클수록 효과는 극대화된다. 그렇지만 위험 부담도 크다. MB 정부 대북 비밀접촉의 결과가 이를 잘 보여준다. 첫 남북 정상회담을 이끈 2000년 4월 김대중 정부의 대북접촉도 마찬가지다. 대북 비밀송금이 드러났고, 결국 사법처리의 대상이 됐다.



 판문점에서 박근혜 정부 들어 첫 남북한 ‘고위급 접촉’이 시작됐다. 지난주 두 차례 만남이 있었고,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이 끝나면 후속 협의가 이어질 기세다. 그런데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분명 날짜와 장소가 공개되고, 공동보도문까지 냈지만 성사 과정이나 협의 내용 등은 비밀회담을 방불케 한다. 연초 북한의 평화 공세에 ‘진정성 있는 행동’으로 맞받아치던 정부가 북한 국방위의 통지문 한 장에 선뜻 접촉에 나섰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결렬 사태까지 부른 이견이 2일차 만남에서 몇 시간 만에 훌쩍 합의된 것도 그렇다. 각기 수석대표를 포함해 5명의 대표단을 내보낸 공식 회담을 굳이 청와대가 ‘접촉’이라 부르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회담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무엇보다 차관급 고위 접촉을 하면서 언론의 취재 접근을 원천 봉쇄한 건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마라톤 회담 속에서도 중간브리핑이나 설명 없이 결과만을 알려주겠다는 건 국민과 여론을 얕잡아보는 행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신뢰 프로세스를 설명하자 북한이 기본 취지에 이해를 표했다’는 정부 발표를 검증할 길이 없다. 판문점으로 장소만 옮긴 비밀접촉이라면 곤란하다. 물론 남국관계의 특수성 속에서 상황을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공개 회담뿐 아니라 비공식 접촉도 얼마든지 가져야 한다. 하지만 북한과 소통하려다 국민과는 불통한다는 인상을 주어선 곤란하다.



이영종 정치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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