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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hi] "동메달 따니 눈물 … 이 악물고 참았다 … 금 따고 쏟아내려고"

중앙일보 2014.02.17 00:24 종합 24면 지면보기
차가운 얼음 위로 뜨거운 눈물이 똑 떨어졌다. 늘 담담한 것 같았던 빅토르 안(29·한국명 안현수)이지만 금메달을 따고도 냉정할 순 없었다. 지난 15일 소치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에서 우승한 그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 빙판에 엎드려 입을 맞췄다. 얼음을 녹일 만한 뜨거운 눈물과 입맞춤이었다.


러시아어 질문 받은 빅토르 안
오해 피하려 한국어로 대답

 빅토르 안이 인터뷰실에 나타나자마자 러시아 취재진의 질문이 쏟아졌다. 2011년 12월 러시아로 귀화한 그는 러시아어를 대부분 알아듣고 간단한 의사소통을 할 정도는 된다. 그러나 오해가 생기는 걸 피하기 위해 러시아어를 한 마디도 쓰지 않고 한국말로 또박또박 대답했다. 한국 취재진에겐 왠지 어색하고 씁쓸한 인터뷰였다.



 “동메달 따고 눈물 나는 걸 이 악물고 참았다. 금메달을 따고서 다 쏟아내고 싶었다. 지난 8년간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다.”



 빅토르 안은 지난 10일 1500m에서 동메달을 땄다. 러시아 쇼트트랙 사상 첫 메달이었지만 이땐 울지 않았다. 동메달에 만족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금메달을 간절히 기다린 것이다. 2006 토리노 올림픽 3관왕에 오른 그는 2010 밴쿠버 올림픽 대표팀 선발전에서 탈락했고 소치 대회에서 8년 만의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다.



 “러시아 스태프와 동료들에게 감사드린다. 우리 선수들을 위해 계주 메달을 꼭 따고 싶다.”



 이제 빅토르 안의 조국은 러시아다. ‘우리’라는 표현을 러시아인을 위해 썼다. 안현수 귀화 후 쇼트트랙 약체였던 러시아 대표팀이 많이 발전했다는 건 누구나 인정한다. 안현수 하나가 아니라 러시아 대표팀 모두가 한국 쇼트트랙을 위협하고 있다. 이날 은메달을 딴 선수도 블라디미르 그리고리예프(31·러시아)였다.



안현수는 “내 메달도 중요하지만 5000m 계주에서 우리 모두가 좋은 결과를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좋아하는 운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다. 내 선택이 틀리지 않은 걸 보여주고 싶었다.”



 빅토르 안은 무릎 부상 여파와 빙상연맹과의 불화, 그리고 소속팀 성남시청 해체 등의 이유로 귀화를 선택했다. 당시 국내 빙상인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시각으로 그를 바라봤다. 네 차례나 무릎을 수술한 그의 재기 가능성을 낮게 본 것이다. 빅토르 안은 “그래서 이 자리가 뜻깊다”며 미소 지었다.



 “지금 이야기를 하면 너무 길어질 것 같다. 귀화 과정에 대해 안 좋은 기사가 나가는 걸 원치 않는다.”



 한국 취재진이 ‘박근혜 대통령까지 안현수의 귀화 과정에서 체육계의 부조리와 구조적 난맥상이 없었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고 하자 그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할 말이 많지만 대회 중 언급할 상황은 아니라고 잘랐다.



소치=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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