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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hi] 대지진에 훈련장 붕괴 … "집 떠나 연습하라" 등떠민 어머니

중앙일보 2014.02.17 00:07 종합 18면 지면보기
15일 소치 겨울올림픽 피겨 남자 싱글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하뉴 유즈루(19). [소치 로이터=뉴스1]
소치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 금메달을 딴 하뉴 유즈루(羽生結弦·19·사진)로 인해 일본 열도가 흥분에 휩싸였다.


일본 남자 피겨 금 하뉴 열풍
센다이 아이스 링크 무너져
전국 떠돌아다니며 훈련
아베 "일본남아" 치켜세워

 14일 쇼트 프로그램에서 사상 최고기록인 101.45점을 따낸 데 이어 15일 프리에서도 수위를 유지하며 일본에 첫 금메달을 안기자 일 언론들은 “일본인으로서 긍지를 느낀다”는 하뉴의 소감을 1면 톱으로 전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도 하뉴의 금메달이 확정되자 휴일인 15일 총리 관저에 나와 직접 축하전화를 걸었다. 아베 총리는 “많은 일본인들이 하뉴 선수의 연기를 보고 가슴이 뜨거워졌다. 빙판을 향해 고개 숙여 예를 표한 모습은 역시 ‘일본남아’다”고 치켜세웠다.



 ‘일본 영웅’으로 떠오른 ‘하뉴 효과’는 당장 음원시장에서 나타났다. 쇼트 프로그램에서 배경음악으로 사용한 ‘파리지앵 워크웨이’는 단번에 각종 음원 사이트에서 1위로 올랐다. 이 음악은 2011년 사망한 북아일랜드 출신 기타리스트 게리 무어가 1978년 발표한 곡이다.



 하뉴가 실력과 준수한 외모, 세련된 말재주 외에도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으로 막대한 피해를 본 센다이(仙臺) 출신이기 때문이다. 대지진과 쓰나미가 몰려 온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46분. 당시 16세의 하뉴는 태어나 자란 센다이시의 스케이트 링크 ‘아이스링크 센다이’에 있었다. 연습 도중 스케이트화를 신은 채 간신히 밖으로 대피했다. 자택도 큰 피해를 보았다. 이후 가족 4명이 피난소에서 쪽잠을 자며 버텼다. 전기가 끊긴 암흑 속에서 여진과 추위와 싸웠다. 충격이었던 건 하뉴의 훈련 거점인 ‘아이스링크 센다이’가 잇따른 여진으로 붕괴되고 만 것이다.



 어머니는 피난소 생활이 열흘 정도 지났을 때 조용히 하뉴의 등을 떠밀었다. “이제 슬슬 연습을 해야지.”



프리스케이팅에서 비엘만 스핀을 연기하는 모습. [소치 로이터=뉴스1]
 하뉴는 어머니의 권유로 초등학교 시절부터 8년간 자신을 훈련했던 스즈키 쇼이치로(76) 코치의 거점 요코하마(橫濱)로 떠났다. 센다이를 떠날 때 하뉴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요코하마로 옮긴 이후에도 하뉴는 심적 안정을 되찾을 수 없었다.



 대지진 이후 한 달 정도 지난 2011년 4월 7일에는 센다이에 다시 진도 ‘6강’의 여진이 몰려왔다. 직선거리로 300㎞ 넘게 떨어진 요코하마에서조차 큰 흔들림을 느낀 하뉴는 스즈키에게 “선생님, 이제 지쳤어요” “이런 상태에서 계속 (피겨스케이팅을) 해도 되는 건가요”라며 고민을 털어놓았다.



 하뉴의 마음을 다잡은 계기는 이틀 후에 찾아왔다. 고베에서의 아이스쇼. 하뉴는 고베 지역 팬들로부터 우레와 같은 기립박수를 받았다. 순간 하뉴는 느꼈다고 한다. “아, 고베도 대지진(1995년 1월 17일 발생, 6434명 사망)을 겪으면서 부활했던 것처럼 센다이도 꼭 부활할 수 있을 거야.”



 이후 전국의 아이스링크를 돌며 아이스쇼를 하는 것이 하뉴의 연습처럼 됐다. 60차례의 아이스쇼를 했지만 전국 어느 곳도 하뉴에게 사용료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센다이의 부흥과 재건을 바라는 일본 국민 전체의 염원이 실려 있었다. 그 부담만큼 하뉴는 더욱 연습에 열중했고 집중력도 향상됐다. 학업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다고 한다. 모교인 도호쿠(동북)고에서 3학년 때 담임이었던 나카쓰카와 스미오(中津川澄男·46)는 “성적도 수위권으로 숙제를 제출하지 않은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시상식 후 기자회견에서도 하뉴는 10대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성숙함도 보였다. “나 스스로는 금메달을 놓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많은 분의 응원이 최고의 결과(금메달)를 안겨준 것 같다. 재해지역의 여러분들이 기뻐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들의 힘이 됐으면 한다.”



 피해를 입은 도호쿠(東北) 지역은 하뉴의 금메달 소식에 축제분위기다. 미야기(宮城)현 히가시마쓰야마(東松島)시의 가설주택에 사는 이재민 오노 다케카즈(66)는 “거점 링크가 무너져 전국을 전전하면서 기술을 닦아 온 하뉴 선수의 모습은 쓰나미로 집을 잃고 가설주택에서 생활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며 “그로 인해 무한한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메달을 따낸 하뉴에게는 새로운 ‘과제’가 남았다. ‘쿼드러플 살코(4회전 점프)’다. 하뉴에게는 이 점프가 ‘동일본대지진 후의 희망’을 뜻한다. 소치에서는 프리 프로그램에서 시도했지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금메달을 땄음에도 하뉴의 얼굴에 웃음이 별로 없고 “분하다”는 말을 거듭하는 이유다. 하뉴의 시선은 벌써 2018년 평창으로 향해 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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