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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크스바겐 미국 근로자 가입 거부 … 엎친 데 덮친 UAW

중앙일보 2014.02.17 00:03 경제 3면 지면보기
미국 폴크스바겐 노동자들이 14일 투표를 통해 전미자동차노조(UAW)에 가입하지 않기로 했다. 은퇴한 순회판사인 샘 페인(왼쪽) 등이 이날 투표 결과를 발표했다. [채터누가 AP=뉴시스]


전미자동차노동조합(UAW)이 중상을 입었다. 미국 테네시주 채터누가에 위치한 독일 자동차 회사 폴크스바겐 공장 근로자들이 투표를 통해 UAW에 가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반(反) 노조 진영엔 승전가가 울려퍼지고 있다.

회원 152만 → 43만 … 쇠퇴 가속
고용·처우 안정 비전 없어
공화당 의원까지 나서 반대
세력 키우려던 전략에 차질



 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 진행된 이번 투표는 UAW로선 사활을 건 승부였다. UAW는 150만여 명의 조합원을 자랑했던 1979년을 정점으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2000년대엔 30만 명대로 떨어지기도 했다. 2008년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지원한 정치적 후원의 반사 효과를 톡톡히 누리면서 최근 조합원수가 40만 명대를 넘어서긴 했다.



그러나 예전의 명성엔 한참 못 미친다. 악전고투하던 UAW가 승부처로 삼은 것이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이 미국 시장 공략을 위해 미국 남부에 세운 공장들이었다. 독일의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일본의 도요타와 혼다 등 내노라 하는 외국 업체들이 앞다퉈 남부에 현지 공장을 설립했다. 현대·기아차도 조지아에 공장이 있다. 이들 외국계 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은 UAW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 UAW는 이들 근로자의 처우가 디트로이트 자동차업계보다 다소 처지는 점을 부각시켰다. 그들을 노조에 가입시킴으로써 영향력을 복원하겠다는 구상이었다. 그 첫 단추가 폴크스바겐이었다. 다음은 앨라배마에 있는 메르세데스-벤츠 공장이라고 일찌감치 공언했다. UAW는 봅 킹 위원장의 지휘 아래 2년간 수백만 달러를 쏟아부으며 이번 투표를 준비했다.





 여건은 좋았다. 폴크스바겐 사측은 노조 친화적인 독일 회사답게 투표에서 중립을 지켰다. 굳이 따지자면 UAW 가입을 후원하는 쪽이었다. 근로자들의 UAW 가입에 반대하지 않겠다고 했다. UAW가 공장 내에서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가입을 권유하는 홍보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도 했다. 2001년 테네시주 닛산 공장의 UAW 가입 투표 때 닛산 사측이 노조 결성 반대를 천명하며 근로자들을 압박했을 때와 비교하면 상황은 천지 차였다. 게다가 독일 금속노조인 IG메탈도 UAW를 전폭 지원했다.



 그러나 폴크스바겐 근로자 다수는 반대 표를 던졌다. 투표 결과는 712대 626으로 UAW 가입을 원치 않는 이들이 더 많았다. 이로써 남부의 현지 공장들을 새로운 근거지로 삼으려는 UAW 전략엔 브레이크가 걸렸다. UAW와 함께 보수 진영의 텃밭을 공략하려던 진보세력도 찬물을 뒤집어쓴 셈이 됐다. 조지아의 현대·기아차 공장도 당분간 UAW의 공격에 시달릴 걱정은 피하게 됐다.



 UAW의 패배 원인은 복합적이다. 우선 남부의 뿌리 깊은 반 노조 정서가 작용했다. 고급 일자리가 적은 남부에선 회사와 충돌을 불사하는 강경노조에 대한 반감이 강하다. 공화당 소속 정치인들의 반대도 주효했다. 공화당의 빌 해슬렘 주지사는 “폴크스바겐 공장에 노조가 조직되면 자동차 부품 업체들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봅 코커 상원의원은 “근로자들이 UAW를 거부하면 폴크스바겐이 지역에 추가 생산라인을 설치할 것”이라고 근로자들에게 당근을 제시했다. 보 왓슨 주 상원의원은 한술 더 떠 “노조가 결성되면 주 의회가 폴크스바겐에 보조금을 더 이상 주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게다가 보수단체들은 UAW가 디토로이트 자동차산업 퇴조에 기여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급기야 근로자들 사이에서 노조 가입이 일자리 상실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번졌다. 투표가 끝나자마자 UAW와 진보진영에선 외부 간섭이 투표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반 노조 진영의 선전전이 먹혀든 측면이 분명히 있다. 그렇다 해도 근로자들 선택의 본질은 고용과 처우의 안정성이었다. 미국 언론들이 이번 투표 결과를 “폴크스바겐 근로자들이 기존의 임금과 경영방식에 대해 만족하고 있는 데 비해 UAW는 근로환경을 어떻게 개선시킬지 확신을 주지 못했다”고 분석하는 이유다. UAW가 근로자들에게 고용 안정과 보다 나은 처우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 쇠락은 다시 가속화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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