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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차' 홀딱 벗겨 명품 차로 … 아무도 안 간 길을 뚫다

중앙일보 2014.02.17 00:02 경제 2면 지면보기
그는 사진촬영을 사양했다. “찍는 사람이라 찍히는 건 익숙지 않다”고 했다. 한발 양보해 “모헤닉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자화상을 직접 촬영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작가정신’을 담은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 김태성]


“왜 모두가 80~90명을 위해서 일해야 하나요? 열 명, 아니 서너 명을 위한 제품도 만들 수 있어야죠.”

퍼스트 펭귄 ② 김태성 모헤닉 게라지스 대표



 10일 경기도 파주 ‘모헤닉’ 작업장에서 만난 김태성(43) 대표는 “소수의 취향도 고려돼야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라고 입을 열었다. 정치인이나 사회운동가의 얘기가 아니다. 단종된 중고 자동차를 완전히 새것으로 바꿔내는 ‘리스토어’ 장인의 말이다.



 자동차 리스토어는 기념비적인 모델이나 극소수만 생산된 모델을 복원하는 작업이다. 미국에서는 1960~70년대 차량을 복원하는 ‘아이콘 포바이포(4X4)’나 구형 포르셰를 다시 만드는 ‘싱어포르셰’ 등이 유명하다. 1억~1억5000만원, 많게는 3억~6억원에 달하는 가격에도 매니어들이 열광해 시장이 형성돼 있다. 신차를 좋아하고 차를 자주 바꾸는 국내에서는 리스토어가 성장하기 쉽지 않았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100만~200만원대인 중고차를 리스토어하는 데 2000만~3000만원이 든다. 엔진만 바꿔도 ‘불법 튜닝’으로 제재받는 국내법도 걸림돌 중 하나였다.



 그러나 척박한 문화토양과 각종 제재에도 불구하고 승승장구하는 리스토어 장인이 있다. 지난해 말 국내 첫 리스토어 숍을 연 ‘모헤닉 게라지스’의 김 대표다(모헤닉은 그의 이름(헤니킴)과 여자친구(모니카)를 합쳐 만든 브랜드다). 그가 선택한 차량은 2003년 단종된 4륜구동 SUV 갤로퍼. 그는 “2012년 우연히 갤로퍼를 보게 됐는데 이 놈 잘 꾸미면 새 차보다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개월간 공업사들을 돌아다니며 차를 손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갤로퍼 차량(왼쪽)이 입고되면 차체만 남기고 부품은 완전히 들어낸다. 새 엔진과 배선·도장작업으로 차가 새롭게(맨 오른쪽) 태어나기까지는 2~3주가 걸린다.
 그는 단순히 옛 차를 그대로 복원하는 게 아니라 아날로그 감성에 현대적 기술들을 넣어 완전히 재해석한 ‘수제차’를 꿈꿨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공업사에서는 값이 싼 중고차를 거들떠도 안 봤다. “왜 똥차에 이렇게 공을 들이느냐”며 대충 수리하는 게 고작이었다. 망가진 부분만 그때 그때 수리하는 ‘공업사 마인드’로는 접근 자체가 불가능했다. 제대로 된 리스토어 업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지인들은 “국내 첫 수제차를 표방한 어울림모터스의 ‘스피라’가 수백억원을 쏟아붓고도 열 대도 못 팔지 않았느냐” “한국에서 수제차는 성공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그는 주변의 걱정을 뒤로하고 본격적인 리스토어 작업을 시작했다. ‘미친놈’ 소리엔 이미 익숙한 터였다. “남들이 잘하는 일이라면 내가 굳이 뛰어들 필요가 없잖아요. 그 사람들보다 훨씬 잘할 수 있거나, 엄두를 못 내던 일을 해야죠.” 결심이 서자 튜닝숍이나 공업사들이 엄두를 낼 수 없었던 정공법을 택했다. 제대로 만드는 차라면 고객은 절로 생길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중고 갤로퍼를 가져다가 실오라기 하나 없이 모두 드러내고 뼈대만 남긴 채 ‘모헤닉’다운 차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싸맸다. 녹을 갈아내고 오염제거, 배선이나 엔진 조립, 도장까지 모두 직접 했다. 재활용이 어려운 부품이나 차체의 유리는 따로 만들고 차량 안에 현대적 감성을 넣어 아이폰 도크를 디자인했다. 내비게이션과 카오디오 대용이다. 운전대 옆에는 수평계를, 룸미러에는 후방카메라를 함께 달았다. 차량 색과 핸들, 내부 시트 등은 디자이너 특유의 감각을 살려 민트색이나 흰색, 노란색 등 파스텔톤으로 도장해 따뜻한 감성을 줬다. 뼈대를 제외하고는 차의 구석구석 김 대표의 손을 타지 않은 곳이 없다. ‘참을 수 있는 정도의 불편’을 아날로그 감성으로 승화시키는 게 모헤닉의 철학이다.



 고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실력만 있으면 수요는 끌어낼 수 있다는 판단이 맞아떨어졌다. 2014년에 출고할 차량 16대가 모두 계약됐고 2015년에 리스토어할 차량도 10대가 이미 계약된 상태다. 2015년 물량을 예약받을 때는 하루에 100명이 넘는 고객들의 문의가 쇄도했다. 대기 시간이 길고 비용도 3000만원대로 양산차를 사는 것보다 비싸지만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만의 차’라는 점과 꼼꼼한 작업에 매료된 사람들의 러브콜은 계속됐다.



 자동차 전문가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는 고집스러운 작가정신으로 점철된 삶을 산 디자이너다.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그는 국내에서 불모지였던 가구시장에 ‘디자인 가구’를 소개했다. 본인이 직접 디자인하고 만든 ‘더 디자인’의 가구들은 강남을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고 백화점에도 입점했다. 그러나 성공은 길지 않았다. 2000년에는 전국 대리점 40개와 직영 쇼룸 3개, 70여 명의 직원을 둘 정도로 성장했지만 중국에서 저가 디자인가구 카피 제품들이 들어오면서 시장 대응에 실패했다.



 가구점이 기울던 2008년에는 자신이 찍은 사진을 담은 잡지 ‘헤니하우스’를 창간했다. 상업사진을 거부하고 자신의 고집을 그대로 드러내는 작가주의 사진을 찍기 위해 광고를 거부했다. 세상을 향한 도발, 카리스마, 관능을 패션과 조화해 찍어낸 사진이라 온라인 포털에서는 성인물로 지정돼 접근이 차단될 정도로 작가정신에만 집중했다. 초반에는 유료 독자들이 몰렸지만 얼마 못 가 자금 압박이 심해졌고 잡지는 6개월 만에 휴간했다. 그러나 사진의 가치는 더 높아졌다. 그가 찍은 화보사진을 프린트한 티셔츠 ‘헤니뮤지엄’이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다. 잡지의 사은품으로 만들어냈던 티셔츠가 잡지보다 반응이 더 좋아지면서 티셔츠에 잡지를 끼워주는 형태가 됐다. 헤니뮤지엄은 현재 김 대표의 여자친구인 김윤정(모니카)씨가 담당하고 있다.



 갤로퍼 리스토어 역시 그의 작가정신과 고집이 집약된 사업이다. 그는 2014~2015년 예약 고객들에게서 받은 계약금으로 지난해 말 경기도 파주에 120평 규모의 정비공간 ‘모헤닉 게라지스’를 열었다. 완벽한 작업을 위해 정비사와 도색기능사 등 전문가도 영입하고 불법 튜닝 시비를 피하기 위해 정식 공업사 허가를 받았다. 김 대표는 “서치라이트를 달거나 엔진을 바꾸는 데도 튜닝숍에서 하면 불법, 공업사에서 하면 합법인 게 현실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창의력과 자유로운 사고를 막는 규제에 대한 안타까움도 드러냈다. 그는 “국내 자동차 튜닝 시장은 너무 경직돼 있다”며 “세계적인 완성차 브랜드를 가진 나라에서 자동차 관련 사업들이 적은 건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공업사가 아니라도 엔진 튜닝 전문점, 도색 전문점, 조향장치 튜닝숍 등 허가를 내 시장을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의 꿈은 모헤닉의 이름을 딴 완성차를 만드는 것이다. 수제차는 비싼 만큼 가치 있고, 믿고 탈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자차보험제도와 2년, 4만㎞ 무상 AS도 시작했다. 김 대표는 “대한민국 자동차 리스토어의 표본이 되고 수제자동차 의 새 문화를 열 것”이라며 “ 다른 차종 리스토어 업체들도 계속 생겨났으면 한다”고 밝혔다.



파주=채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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