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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2035] 88만원 세대는 없다

중앙일보 2014.02.17 00:01 종합 28면 지면보기
대학 때 『88만원 세대』란 책이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20대의 기대소득은 88만원밖에 안 된다. 당장 짱돌을 들고 시위라도 하지 않으면 미래엔 꿈도 희망도 없다”는 저자 우석훈씨의 주장은 제대로 먹혀들었다. 나도 친구들도 취직 걱정에 분노했던 기억이 난다.



 몇 년이 지나 ‘88만원 세대’는 이제 우리 세대를 일컫는 보통명사가 됐다. 그동안 88만원짜리 인생을 달래기 위한 대책도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달래는 사람(김난도 교수)도 생겼고 “악착같이 살지 말라”고 조언하는 이(김범수 카카오이사회 의장)도 나왔다. 정부에선 이런 말이 안 나오게 하려고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고 청년 창업을 독려한다.



 그런데 돈을 벌기 시작한 지 만 2년이 지난 지금은 88만원 세대란 단어가 절반은 사기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실체가 불분명해서다. 2013년 기준 20대 인구는 650만 명 정도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주변 친구들을 ‘88만원’ 갖고 묶는 건 무리다. 얼마 안 되는 내 친구들만 봐도 월급 400만~500만원이 넘는 고임금 샐러리맨부터 월급 100만원을 받으며 사는 공장 일용직 노동자까지 너무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 때 우리는 모두 88만원 세대였다.



 과거 논란을 겪었던 ‘486세대’는 좀 경우가 다르다. 486만 해도 4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으로 지칭하는 대상이 비교적 분명하다. 대학 나온 사람만 대상으로 한다고 해 계층 차별 세대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88만원 세대’처럼 뜬금없이 돈 갖고 도매금으로 묶이진 않았다. ‘베이비붐’ 세대는 그냥 숫자가 많다고 붙은 이름이니 이런 논란이 생길 이유도 없다.



 가까이서 진지하게 우리 세대를 바라봤더라면 감히 88만원 세대라는 이름표를 달 수 있었을까. 젊은 진보논객 가운데 일부는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계층 불평등을 세대 갈등으로 돌려 본질을 흐리게 한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면 저출산의 초입에 탄생했으니 ‘베이비곤(Baby-gone)’ 세대는 어떨까. 적어도 우리 세대의 다양성을 해치진 않을 것 같다. 논란 될 만한 이름이 좋다고 ‘일베세대’ ‘오유세대’란 이름표를 달 순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한영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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