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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장애인의 꿈엔 과학자가 없다

중앙일보 2014.02.17 00:01 종합 30면 지면보기
강인식
사회부문 기자
서울대 이상묵 교수는 장애인이 된 과학자다. 건강하고 똑똑했던 그는 서울대와 MIT를 거쳐 과학자가 됐다. 2006년 캘리포니아 데스벨리에서 지질연구 중 목뼈(4번 척수)를 다쳤다. 목 아래 감각과 운동신경을 모두 잃었다. 하지만 그는 입과 머리로 조종할 수 있는 IT기기를 통해 기적적으로 강단에 복귀했다.



 2009년 지식경제부는 이 교수에게 장애인을 위한 기술개발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여러 기술 중에 그가 가장 천착한 건 휴먼웨어(Human ware)였다. 장애를 가진 인간, 그 자체에 대한 고민. 왜 한국엔 과학자가 된 장애인이 없는가.



 그는 학교와 ‘장애인 산업기술 전문인력양성(Quality of Life Technology·QoLT)’을 시작했다. 수퍼컴퓨터를 이용한 수업까지 개설했다. 그러나 대학엔 교육할 학생이 없었다. 최근 4년간 서울대에 입학한 장애인 25명 중 이공계는 2명뿐이다. 톱 클래스에서 경쟁할 수 있는 장애인은 과학을 선택하지 않는다. 한국엔 판사가 된 장애인은 있어도, 존스홉킨스대학의 이승복(척추장애) 박사처럼 장애인이 이공계에서 성공한 예는 거의 없다.



 결국 중·고교 때부터 과학자 코스를 밟도록 해줘야 한다. 이 교수가 내린 결론이었다. 정치인과 관료를 만날 때마다 수없이 이런 제안을 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현실로 침투하지 못했다. 약자에 대한 특별전형이 있지 않냐고, 사람들은 말했다. 가난하고 건강한, 한부모 가정의 건강한, 다문화가정의 건강한 아이와 장애학생의 경쟁은 뻔했다.



 그는 2012년 11월 서울시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후보로 나선 문용린 교수에게 메일을 보냈다. 장애인을 위한 과학고 정원외 전형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답장은 없었다. 하지만 그 내용이 공약집에 수록됐다. 지난해 시교육청에 서울행복교육추진단이 만들어지면서 이 교수가 일원으로 참여했다. 지난해 12월 11일 교육청은 2015학년도부터 장애인에 대한 과학고·예술고 정원외(2%) 특별전형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서울·한성·세종과학고를 합해 한 해 8명의 장애인이 입학할 수 있게 됐다.



 우려도 있다. 과학고에서 다른 영재들을 따라가지 못하는 장애학생, 소수의 장애학생을 위해 큰돈을 들여 시설을 개·보수해야 하는 학교, 모두가 설익은 제도의 피해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12년간 신입생을 선발해온 서울대 김경범 교수는 교육의 본질을 얘기했다. 형편과 상관없이 꿈을 꾸고, 그 꿈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는 게 교육이다. 출발점에선 누구에게나 선택의 폭이 같아야 한다. 세계적 명문대는 왜 다양한 트랙에서 신입생을 뽑아왔는가.



 이 교수가 답했다. “엄마들이 난리 칠지 몰라요. 우리 애보다 점수가 낮은 장애학생이 선발됐다고. 연세대 공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신형진(척추성 근위축증)과 얘기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어요. 놀라운 뇌가 감옥에 갇혀 있구나. 형진이의 뇌를 감옥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면 그 혜택이 누구에게 돌아갈까.”



강인식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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