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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오바마 방한, 공짜 점심은 없다

중앙일보 2014.02.17 00:01 종합 31면 지면보기
문정인
연세대 교수
정치외교학과
참으로 대단하다. 미국 대통령의 해외순방 일정까지 바꾼 한국 정부의 외교력 말이다. 지난주 존 케리 국무부 장관의 방한을 앞두고, 미국 측은 오는 4월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일정에 한국이 포함됐다고 공식 통보했다. 그동안 ‘일본만 방문하고 돌아가면 어쩌나’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청와대와 외교부 당국자들에게는 단비 같은 낭보였을 것이다.



 일본은 한국 정부가 얄궂을 것이다. 최소 2박3일의 국빈 일정을 잡아놓고는 ‘역사 논쟁에도 미·일동맹은 건재하다’는 것을 안팎으로 널리 과시하려던 아베 내각으로서는 낭패가 아닐 수 없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상이 ‘전세기 외교’까지 동원하며 워싱턴을 공략한 마당에 최종 결론이 ‘1박2일 실무 방문’이라면 꽤나 당혹스러운 일일 것이다. 전통적으로 미·일동맹이 한·미동맹보다 한 수 위라고 믿어온 일본이기에 더욱 그렇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이후 한국을 세 차례 방문했지만 일본은 한 번밖에 들르지 않았다. 일본 측이 이렇듯 공을 들이는 이유를 알 만하다.



 일각에서 지적하듯 이번 결정은 미국이 한·일 외교전에서 한국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일본만 방문할 경우 과거사 문제에서 일본 측 주장을 용인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우리 측 주장이 먹힌 셈이다. 문제는 자칫 방심할 경우 오바마의 방한이 더 큰 정치적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으로서는 그 반대급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당장 케리 장관이 방한 중 남긴 말은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한·일 간의 긴장은 누구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며 “과거 역사를 뒤로하자”는 발언이 그것이다.



 4월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을 찾으며 들고올 메시지의 핵심은 한·일관계 개선과 한·미·일 3국 공조 강화가 될 것이다. 물론 오바마 대통령이 아베 총리의 입장 변화를 설득해내고 이를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식의 ‘정직한 중재자’ 역할을 한다면 우리로서도 그 이상 바랄 것 없는 ‘윈-윈’ 외교다. 그러나 아베 총리가 과거사나 위안부, 야스쿠니 신사 문제에 이르기까지 기존 태도를 고수할 경우 난감해질 수 있다. 일본은 달라지지 않았는데 미국이 우리에게 화해를 보채는 상황이 코앞에 닥치면 한·일 외교전에서의 승리는 순식간에 족쇄가 될 수도 있다. 이 경우 박 대통령이 마주 앉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척 헤이글 미 국방부 장관이나 조 바이든 부통령에게 했던 외교적 수사가 전부일 것이다.



 한·미 두 나라 사이의 현안도 간단치 않다. 방위비 분담 협상은 이미 타결됐고,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진전이 이뤄지면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 논의도 탄력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워싱턴의 전반적 기류를 감안하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문제는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박 대통령이 어떤 카드로 오바마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을지 주목되는 이유다.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은 더욱 넘기 힘든 산이다. ‘미국과 원자력협정을 맺는 모든 국가는 농축·재처리 권한을 포기해야 한다’는 미 원자력에너지법 123항에 대해 한국은 예외로 인정해달라고 설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협정 개정이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면 ‘핵무기 없는 세계’와 비확산은 오바마 대통령의 최우선 정책이다. 섣부른 설득 시도는 오히려 외교적 부담으로 작용할 공산마저 있다는 뜻이다.



 만에 하나 양국 정상이 과도하게 ‘통일 대박론’을 부각시킬 경우의 후폭풍도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북한 체제불안과 급변사태를 전제로 삼은 듯한 담론이 외교무대를 지배하게 되면 이산가족 재상봉으로 모처럼 마련된 남북 화해 분위기와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한·미 정상이 북핵 문제에 새로운 창의적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그간 반복해온 ‘응징과 전략적 인내’에 연연한다면 국민의 실망이 매우 클 것이다. 시각을 넓혀 보면 중국을 의식한 박근혜 정부의 동북아 평화협력구상과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태평양 재균형 정책을 조율하는 문제가 복병으로 등장할 수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연내 방한 의사를 피력한 상황까지 감안하면 우리 측 부담은 한층 배가될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오바마 대통령의 4월 방한은 외교적 승리인 동시에 만만찮은 부담인 게 사실이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국제관계에는 공짜가 없고, 순진한 셈법은 낭패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그의 서울 방문이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치밀하게 준비해야 하는 이유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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