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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나면 오르는 물가 … 그런데 통계는 15개월 연속 1%대?

온라인 중앙일보 2014.02.16 08:22



저물가 미스터리 빠진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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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발표되며 물가지수가 또 한번 신기록을 갱신했다. 15개월째 전년 동월 대비 물가 상승률이 1%대를 기록한 것이다. 이전에도 물가 상승률이 종종 1%대 전후로 떨어진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길게 지속된 적은 없었다. ‘역사적 저물가 사태’로 한국은 지금껏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질문 앞에 섰다. 저물가라는데 내 살림살이는 왜 이런가. 저물가가 이대로 지속돼도 괜찮을까. 저물가를 둘러싼 논란을 점검한다.



서울 당산동에 사는 주부 김영미(36)씨는 요즘 물가 뉴스를 보면 화가 난다. “아이 간식을 사려고 해도 과자며 빵이며 다 올랐어요. 작년에 택시비 올랐죠, 가스·전기요금 올랐죠, 뭣보다 전셋값 때문에 죽겠어요. 그런데 저물가라니, 물가를 어떻게 재는 건가요.”



요즘 물가 뉴스, 의문투성이다. 우선 “물가 상승률이 1%대로 안정적”이라는 보도를 시민들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지난해 대중교통비를 비롯해 전기·가스 요금까지 공공요금은 거의 안 오른 게 없고, 최근 가공식품 가격도 무섭게 들썩이고 있다. “저물가가 지속되지 않도록 정부 대책이 필요하다”는 뉴스도 이상하다. 졸업을 앞둔 대학생 김가현(24)씨는 “물가는 안정되면 좋은 것 아니냐. 왜 대책을 만들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피부물가와 지표물가 차이, 왜



저물가를 도통 체감할 수 없다는 주부 김영미씨. 엄살은 아니다. 지난해 도시가스와 지역난방비는 각각 6.2%, 5.2% 올랐고 전기요금은 3.8% 올랐다. 택시요금(8.9%)과 시외버스·고속버스 요금도 각각 4.9%, 3.6% 인상됐다. 지난 연말부터는 가공식품·외식비 가격이 들썩였다. 지난해 말 오리온이 초코파이 값을, 롯데제과가 빼빼로 값을 각각 20% 올린 걸 시작으로 올 초엔 농심·크라운제과가 새우깡 등 대표 제품의 가격을 최대 10% 올리겠다고 나섰다. 롯데리아와 탐앤탐스·도미노피자·파리바게뜨 등 외식업체도 연초부터 가격 인상을 선포했다.



이렇게 피부에 와닿는 물가와 통계로 뽑은 물가가 다른 이유는 뭘까. 가중치 때문이다. 정부는 물가지수를 낼 때 국민의 실제 씀씀이를 반영한 가중치를 가격 상승 폭에 곱한다. 예를 들어 국민이 1년에 쓰는 돈이 평균 1000원인데 그중 16원을 채소 사는 데 썼다고 치자. 채소의 물가 가중치는 16이 된다. 채소 값이 10% 오르면 물가지수는 0.16%(10%×16÷1000) 오르게 된다.



새우깡이나 초코파이 같은 품목은 친숙해서 가격이 오르면 와닿는 충격이 크지만 실제 가중치는 그리 높지 않다. 라면과 빵, 참치캔과 믹스커피 같은 전체 가공식품을 다 합친 가중치가 71.8이다. 실제 가구 소비를 따져보니 1000원 쓸 때 71.8원만 가공식품 사는 데 썼다는 거다. 가공식품 값이 들썩들썩해도 소비자 물가 전체가 확확 바뀌지 않는 이유다. 화장품이나 의류 가격도 최근 1년 사이 각각 5% 가까이 올랐지만 가중치가 13.2와 58.3에 불과해 전체 물가 상승률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반면에 가중치가 119에 달하는 외식 비용은 불황의 여파로 최근 1년 사이 상승률이 1% 안팎에 머물렀다.



이례적 풍작도 1%대 물가의 원인이다. 가격 변동 폭이 커 물가 지수를 쥐락펴락하는 농·축·수산물 물가는 지난달 전년 같은 달보다 5.6% 떨어졌다. 특히 채소와 과일 값은 각각 25.1%, 5.5% 떨어졌다. 이대희 기획재정부 물가정책과장은 “37년 만의 대풍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파나 양파·배추·무 공급이 늘었다”며 “올겨울 한파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제 원자재 가격 안정세로 석유류 값도 지난해 1월보다 1.5% 내렸다. 무상보육 정책도 최근의 저물가 원인 중 하나다. 통계청은 최근 유치원 납입금이 차지하는 물가 가중치를 6.9에서 4.9로 낮췄다. 정부가 무상보육을 실시하며 그만큼 보육 관련 가계지출이 줄어든 거다.



정부 “저물가 곧 끝난다” 느긋



정부와 학계의 화두는 이런 저물가 추세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이냐다. 일단 정부는 “물가 1% 상승 시대는 곧 끝난다”는 입장이다. 한국은행이 내놓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2.3%. 지난해 상승률(1.3%)보다 1%포인트 높다. 상반기 물가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 정도 오르겠지만, 하반기 물가는 2.8%까지 치솟을 거라고 봤다. 한은의 물가 상승률 목표치인 2.5~3.5%에 조만간 근접할 거란 전망이다. 최근 저물가 우려 속에서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동결한 데는 이런 계산이 깔려 있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13일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물가 상승률은 국제 원자재 가격 안정 등으로 당분간 낮은 수준을 나타내겠지만 점차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금리 동결 배경을 밝혔다.



우선 최근의 이례적인 물가 여건이 지속되기 쉽지 않다는 견해다. 신운 한국은행 조사국장은 “기상 여건으로 인한 농산물 가격 하락세가 계속 지속될 확률은 극히 낮다”고 말했다.



장기 저물가로 인한 기저효과(基底效果)도 만만치 않을 거라고 정부는 내다본다. 지난해 물가가 무상보육 전면 확대와 농산물 가격 하락으로 저공비행했다면, 이미 내려간 물가 때문에 올해는 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상승률은 뚜렷할 거란 얘기다. 이대희 과장은 “지난해 3월 보육료·유치원비·급식비 지원이 확대돼 개인서비스 요금 중심으로 물가 하락세가 강해진 것”이라며 “올 3월부터 기저효과가 반영돼 물가 상승률이 오르기 시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간 “디플레로 번질 수도” 우려



정부는 “곧 오르게 돼 있다”며 느긋하지만 민간의 목소리는 다르다. 최근의 물가 지표를 “선진국형 저물가 시대에 접어든 신호탄”으로 해석하는 이가 많다. 특히 글로벌 경기 회복 속도가 그리 빨라지지 않는 만큼 수요가 쉽게 살아나지 않을 거란 분석이다. 오정근 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원은 “중국 경기가 둔화되면서 원자재 가격과 수입 물가 하락세가 지속될 걸로 보이고, 국내 가계부채와 부동산 문제도 단시간에 해결되지 않아 수요 위축을 부추길 것 같다”며 “물가가 지난해 수준에 머물거나 더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저물가가 장기화되면서 디플레이션으로 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그간 한국은 인플레이션만 걱정해 왔지만 디플레이션도 인플레 못지않게 무섭다. 계속 물건 값이 내릴 거라 예상되면 기업은 투자를, 개인은 소비를 망설이게 된다. 자연히 생산은 더 줄어들고, 고용시장이 얼어붙으며 수요가 위축되는 악순환에 빠진다. 화폐 가치가 오르니 빚을 낸 사람은 고통이 커진다. 가계부채 1000조원이 넘는 한국에선 디플레이션이 그야말로 폭탄이 될 수 있단 얘기다. 이웃 나라 일본이 ‘전쟁’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디플레이션을 끝장내려고 하는 이유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국내총생산(GDP) 갭에 주목했다. 실질 GDP에서 잠재 GDP를 뺀 GDP 갭은 물가 압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쓰인다. GDP 갭이 플러스면(인플레이션 갭) 그 나라의 역량에 비해 과잉 생산되고 있다, 즉 경기가 과열돼 있다는 뜻이므로 물가가 오를 걸로 보고, GDP갭이 마이너스면(디플레이션 갭) 유효 수요가 부족해 물가는 내릴 가능성이 높다. 김천구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GDP 갭이 2012년 하반기 이후 줄곧 마이너스인 데다 통화 증가율도 떨어져 물가 상승 압력이 낮다”며 “정부가 다각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압박인 셈이다. 오정근 연구원 역시 “신흥국인 우리나라의 물가 상승률이 1% 아래로 떨어지면 실질적인 디플레이션이라고 봐야 한다. 일본과 같은 구조적 디플레이션 덫에 빠지지 않도록 정책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신운 국장은 “GDP 갭은 하반기 들어 마이너스 폭이 줄어들 걸로 전망되며, 그렇게 되면 수요 측면의 저물가 압력은 거의 사라질 것”이라며 “최근의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물가상승률 둔하) 현상을 일본과 같은 장기 디플레이션과 비교하는 것은 과도한 우려”라고 반박했다.



임미진 기자 mi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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