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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잉여로 만드는 ‘미래의 노인’들

중앙선데이 2014.02.15 21:05 362호 26면 지면보기
저자: 오근재 출판사: 민음인 가격: 1만5000원
#1. 어느 날 오후 서울 종로 3가역 부근.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거리에 무리지어 서 있는 노인들을 발견하고 기묘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누가 저들을 거리로 내몬 걸까?

『퇴적공간』

#2. 가방이 유난히 무겁던 어느 날 전철 안. 백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다가 노약자석에 가지 않은 그를 은근히 원망하는 자신에게 흠칫 놀란다. 노인은 노약자석에 앉아야 마땅하다고 누가 그랬나?

뿌연 안개가 낀 듯 해답을 찾을 수 없던 의문들이다. 그러면서 ‘나 역시 노인이 될 테지’라는 막연한 불안감에 착잡했다. 『퇴적공간』은 이런 의문과 불안의 실체를 명쾌하게 분석하고 노령화 사회를 사는 모든 현대인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홍익대 미대 교수를 지내고 ‘노인’이 된 저자는 가족 품을 떠나 정책적 과제, 시사적 이슈거리로 떠돌게 된 노인 문제를 철학·미학·사회학·인류학적 방법론을 동원해 입체적으로 고찰했다.

청년 백수는 스스로를 ‘잉여’라 칭하며 자조하지만, 진짜 잉여는 종로 일대의 노인들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가치를 잃어버린 그들은 과거에는 귀중한 경험과 기억의 소유자로 존경의 대상이었지만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사회적 기여도 제로’의 존재로 ‘남겨졌다’.

종로 일대는 노인을 위한 복지제도와 이름 모를 선의가 집중된 ‘실버 천국’이다. 그들은 지패스 카드로 공짜 전철을 타고 노약자석에 편히 앉아 그리로 모여든다. 복지센터에서 점심을 때운 뒤 허리우드 클래식 영화관에서 푼돈으로 구시대의 유물 같은 영화를 본다. 지금도 200원짜리 커피를 맛볼 수 있는, 시간이 정지된 구역이 바로 거기다. 젊은 사람들은 아무도 접근하지 않는 담장 없는 폐쇄 공간. 과연 적은 돈으로 특별한 혜택을 누리는 천국인가, 깨끗한 서울의 나머지 공간을 위해 격리된 감옥인가? 저자가 몇 달 동안 그들의 일부로 살아본 뒤 내린 결론은 이런 ‘노인 예우 공간’은 마치 부조리 연극처럼 노인을 더욱 고독하게 추방하는 초라한 사각지대다.

노인 문제는 곧 가족 문제다. 자본주의사회 개인소외 현상의 극단적인 예인 것이다. 저자는 그 원인을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로 촉발된 이른바 ‘세계화전략’에서 찾는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는 무한경쟁을 부추겨 나를 제외한 모든 이웃을 극복해야 할 남으로 규정했고, 전통적 인정사회는 파쇄됐다. 공동체가 파괴되자 요람에서 무덤까지 개인의 문제를 떠안게 된 국가는 인간을 사물로 간주한 계량화된 정책을 쏟아냈다. 노인은 병원에 입원시켜야, 아이는 시설에 맡겨야 돈을 준다니, 노인과 아이는 별 수 없이 대문을 나서야 했다. 3대가 오순도순 정을 나누는 주말 가족드라마는 이제 판타지가 돼버렸다. 영혼 없는 복지가 가족의 해체를 부추긴 셈이다.

지금 필요한 건 복지의 철학을 새롭게 정립하는 일이다.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론과 보르헤스의 가치론을 대비하며 근본적인 인간 존엄의 문제를 묻는다. 노화를 단지 쇠락의 과정으로 보는 형상론을 극복하고 죽음이 있기에 인간이 숭고하다는 가치론을 택하는 것이 생명의 주체권을 되찾는 길임을 직시하고, 노인복지의 포커스를 질병 자체가 아닌 가족의 회복에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인정 사회를 정책적으로 회복하기에 우린 너무 멀리 와버린 것 아닐까. 경제·정치가 식혀버린 인간사회의 체온은 개개인의 자발적인 인간성 회복만이 끌어올릴 수 있다. 좋은 뉴스라면 노인의 삶이 우리 모두에게 필연적으로 도래할 미래라는 것. 그것을 깨닫는 것만이 인간성 회복의 희망이 된다는 역설이다. ‘메멘토 모리’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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