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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마다 ‘간판 뗐다 붙였다’ 연속성 잃어 … “전 정부 아이디어 전향적 수용을”

중앙선데이 2014.02.16 00:09 362호 6면 지면보기
“2000년에는 한국에 전자계산기(컴퓨터)가 1만 대까지 늘어나고 김포~뉴욕 간 비행시간이 다섯 시간으로 단축될 것이다. 대학입시도 없어진다.”

한국의 국가미래전략기구 변천사

 우리나라가 국가적 차원에서 처음으로 내놓은 미래전략은 1971년 과학기술처가 한국미래학회와 함께 만든 ‘서기 2000년의 한국에 대한 조사연구’다. 조순·이홍구·이한빈 박사 등 당시 학계에서 1060명이 참여해 140쪽짜리 보고서를 내놨다. 보고서는 당시 국내에 20여 대뿐이었던 컴퓨터가 2000년이면 1만 대로, 50만 개인 전화회선이 1500만 개로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컴퓨터가 2000년에 400만 대, 전화회선은 2500만 개를 각각 돌파해 예측은 틀린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00년이면 전국이 1시간 생활권이 되고 1가구 1주택과 연 4주 유급휴가도 실현될 것이라고 보고서는 예측했지만 이 또한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인터넷과 유전자 조작이 실현될 것이란 예언 등 들어맞은 것도 없지 않았다. 특히 2000년의 한국이 물질·에너지 문명’에서 물질·에너지·정보’ 문명으로 진화해 평화·풍요·합리성·인간성·아름다움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 것은 돋보였다.

 당시로선 획기적인 델파이 기법(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되풀이해 모으고 종합해 결론을 내는 방식)을 적용해 국가의 미래를 전망하고 정책의 방향을 제시한 점에서 보고서의 의미는 상당했다.

 국가의 중장기 발전전략을 수립해 대통령에게 건의·자문하는 기구는 그로부터 18년 뒤에야 탄생했다.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9년 6월 대통령령으로 발족한 ‘21세기위원회’가 그것이다. 이 기구는 95년 ‘정책기획위원회’로 명칭을 바꿔 미래뿐 아니라 현안에 대한 자문까지 기능을 확대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 이후 집권한 대통령마다 자신의 핵심 정책을 자문하는 별도의 미래전략기구를 만드는 바람에 큰 힘을 쓰지는 못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세계화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자신의 정책 화두였던 ‘세계화(globalization)’를 연구하게 했다. 김대중 대통령 집권 뒤엔 이 위원회가 사라지고 ‘밀레니엄 프로젝트’가 발족해 김 대통령의 핵심 정책이던 정보화와 벤처기업 육성 비전을 제시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하자 이 프로젝트도 소멸됐다. 노 대통령은 대신 ‘국가비전 2030 미래비전 보고서’를 만들도록 했다. 100여 명의 학자가 참여해 노 대통령의 관심사였던 복지와 성장의 선순환을 집중 연구했다.

 그러는 와중에 점점 존재감이 약해진 정책기획위원회는 발족 19년 만인 2008년 2월 이명박 대통령 취임 직후 해체됐다. 이 대통령은 대신 ‘미래기획위원회’를 만들었지만 이 또한 그의 임기가 끝나면서 사라졌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미래기획에 참여했던 한 학자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직후 전임 정부에서 나온 기획은 무조건 피하라는 지시 때문에 같은 내용을 어떻게 다르게 표현할지를 놓고 고심을 거듭했다”며 “박근혜 정부가 전 정부의 기획 가운데 좋은 내용을 전향적으로 받아들이면 보다 풍부하고 발전된 미래전략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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