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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hi] 박 대통령이 부조리 지적한 빙상연맹 무슨 일이 …

중앙일보 2014.02.15 00:51 종합 4면 지면보기
빅토르 안(왼쪽)이 13일(현지시간) 쇼트트랙 1000m 예선에서 한국의 신다운(왼쪽 둘째)과 경쟁하고 있다. 두 선수는 조 1, 2위로 준준결승에 진출했다. [뉴스1]


박근혜(62) 대통령도 지적한 빅토르 안(29·한국명 안현수)의 러시아 귀화, 누가 ‘안현수’를 ‘빅토르 안’으로 만들었을까.

"고위 임원이 파벌 평정 … 찍소리 내면 찍히는 독재 체제"



 빅토르 안이 귀화를 택한 표면적 이유는 소속 팀의 해체다. 하지만 속에는 성적지상주의, 파벌싸움, 대한빙상경기연맹의 부조리가 숨어 있다.



 이 문제는 2006년 안현수의 부친 안기원씨가 “상대 파벌의 코치와 선수가 짜고 현수가 1000m와 3000m에서 1등 하는 걸 막았다”고 폭로해 세상에 알려졌다. 안씨는 2010년 안현수 팬카페에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정수가 코치의 강요로 부상 사유서를 쓰고 세계선수권 출전을 포기했다’는 글을 올려 또다시 파문을 일으켰다. 감사에 들어간 대한체육회는 당시 코치진의 강압적 지시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안현수 측의 주장을 사실상 인정했다.



 김기훈-김동성-안현수-전이경-진선유 등을 배출한 세계 최강 한국 쇼트트랙 대표 선발전은 바늘구멍 뚫기였다. 여기에 한체대와 비(非)한체대의 파벌싸움, 짬짜미(담합)가 활개를 쳤다.



 안현수는 대표적인 희생양이었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 3관왕 안현수는 2008년 1월 훈련 도중 왼쪽 무릎을 다쳤다. 수술 부위에 염증이 생겨 네 차례나 수술대에 오른 안현수는 이듬해 2010년 밴쿠버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대표 선발전에 나섰지만 탈락했다. 2010년 재도전했지만 빙상연맹이 짬짜미 사태 수습을 이유로 선발전을 9월로 미뤘고, 그해 5월 기초군사훈련을 받기로 했던 안현수는 최악의 몸 상태로 나서야 했다.



 1992년 알베르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이준호 전 여자대표팀 감독은 14일 “빙상연맹이 2010년 올림픽 대표 선발 방식을 2배수가 아닌 5명을 한 번에 뽑는 것으로 바꿨다”며 “무릎에서 철심을 제거한 지 얼마 안 된 현수에게 많이 불리한 방식이었다. 현수가 조금만 연기해 달라고 청원했지만 묵살당했다”고 전했다. 이 감독은 “현수는 교과서 같은 존재다. 러시아 선수들의 실력이 올라온 것을 보라. 후배들을 위한 대들보를 잃었다”고 탄식했다.



 성남시청이 불 난 집에 기름을 부었다. 안현수는 2010년 말 성남시청 팀이 해체돼 무적 신세가 됐다. 안현수와 러시아에서 1년6개월간 동고동락한 황익환 전 성남시청 코치는 “성남시장(당시 이재명)이 ‘난 인권변호사 출신이다. 직장운동부 1명 인건비면 가난한 아이 3명을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 구조조정도 전 부서가 아닌 체육팀에만 적용했다”며 “지방자치단체들이 긴축을 해 현수를 데려갈 팀도 나오지 않았다. 결국 2011년 러시아 빙상연맹의 귀화 제안을 수락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성남시청 관계자는 "'선수 5명 인건비면 지역아동센터 등 시추진사업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발언이었다"고 해명했다.



 더 큰 문제는 현재 빙상연맹의 ‘파벌싸움’이 ‘독재’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이준호 감독은 “빙상연맹 고위 임원이 비한체대파까지 포섭해 천하통일을 했다. 차라리 한체대파, 비한체대파가 대립각을 세우며 견제하던 과거가 나았다”며 “한 사람이 전횡을 휘두르다 보니 지도자 선정에 문제가 있다. 실력이 없는 B코치가 협회추천제로 상무팀 코치가 됐다. 연맹에 찍소리도 못하는 사람들만 살아남는다”고 개탄했다.



 스포츠평론가 기영노씨 역시 “그 임원은 스케이트 날 들이밀기 기술 등 큰 업적을 이뤘다. 하지만 최근 대표팀 코치 성추행 의혹을 무마하려는 등 비상식적 행동을 하고 있다. 빙상연맹은 이를 전혀 제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빙상뿐 아니라 스포츠계 전반에 부정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태권도에서 심판의 말도 안 되는 편파판정에 당한 선수의 학부모가 자살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스포츠 단체 개혁을 추진하고 있고, 박근혜 대통령도 “체육 비리 근절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빙상연맹은 묵묵부답이다.



 정용철(서강대 교수) 문화연대 스포츠문화연구소 운영위원은 “빙상연맹은 문제가 발생하면 몸통이 아닌 주변 인물에게 징계를 준다. 늘 꼬리 자르기 식이다. 집행부를 물갈이해야 하는데 교체된 사람이 잘 하리란 보장도 없다”며 “지금 국민 여론도 있고 빙상연맹 개혁의 시기가 좋다. 비리와 파벌이 발붙일 수 없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린·장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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