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F 모델 맛들였다고? 아니라오 아니라오♬ … 국악 대중화 위해서라오

중앙일보 2014.02.15 00:11 종합 18면 지면보기
‘국악 아이돌’ 송소희양은 다음 달 16일 열리는 소치 겨울 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 폐막식에서 ‘아리랑’을 부를 예정이다. 2018년 평창올림픽의 성공을 기약하는 공연이기도 하다. 올해 그의 꿈은 첫 앨범을 내는 것. “우리 민요를 부르되 서양음악의 풍성한 사운드를 입힐 계획”이라고 했다. [사진 넥슨]
‘예향(藝鄕) 내포’라고 했다. 예부터 예산·당진·서산 등 충남 서북부 지역을 아우르는 말이다. 이곳에서 불려 오던 전통 시조창(時調唱)이 ‘내포제(內浦制)’다. 밝고 깨끗한 음색이 특징이다. 가수 심수봉의 할아버지로, 20세기 초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심정순(1873~1937) 명인의 고향이 서산이다. 판소리 명창 박동진(1916~2003)도 이웃 마을 공주 출신이다.


이동통신 광고 스타 '국악 소녀' 송소희

 요즘 내포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기폭제는 TV 광고 ‘아니라오. 아니라오, 다 되는 건 아니라오’로 스타덤에 오른 국악소녀 송소희(17)양이다. 송양의 고향은 예산. 현재 당진에서 살고 있다. 옛날 고리짝처럼 여겨지는 국악이 시장경제 첨병인 TV 광고에서, 그것도 첨단 중 첨단인 이동통신 광고모델로 각광받고 있다. ‘제비 몰러 나간다.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라 했던 박동진 명창 이후 20여 년 만의 일이다. 이를테면 ‘내포 DNA’의 부활이다.



 9일 오후 서울 서대문 NH아틀홀. ‘배~~띄~~워라. 배~띄~워라’. 꺾어질 듯 넘어가는 찰랑찰랑 목소리에 어깨춤이 들썩인다. 150여 관객 대부분은 10~20대 청춘. 슈팅게임 ‘서든 어택(Sudden Attack)’ 유저들이다. 지난해 말 송양의 ‘서든 어택’ 캐릭터 출시를 기념해 마련한 콘서트다. 국악과 게임의 접속, 전위적 현장이다.



 에피소드 하나. 행사 진행자가 10대 후반쯤 보이는 앳된 관객에게 물었다. “좋아하는 국악 있나요.” 대답이 걸작이다. “‘아니라오’요.” 폭소가 터졌다. 국악이 우리 젊은이들로부터 너무나 멀리 있고, 그 간극을 일정 부분 송양이 좁히고 있다는 얘기다.



 - CF와 게임모델, 스타성이 음악에 독이 될 수 있다.



 “피투성이 게임 캐릭터가 정말 걱정됐어요. 게임 홍보에 그칠까 여러 번 거절했지요. 하지만 노출이 안 되면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게임에 ‘얼쑤’라는 추임새도 들어가는데, 그런 국악요소가 신선한 충격이 되지 않을까요. 국악과 대중의 높은 벽을 허물고 싶습니다. 한 번 꾹 참고 용기를 냈어요. 제 또래들이 무의식 중에라도 국악과 만나게 되잖아요. 국악 대중화가 제 목표입니다.”



 송양은 속에 어른 하나가 앉아 있는 듯했다. 차분차분 말을 이어 갔다. 다섯 살 때 시작한 소리, 지난 12년간 닦아 온 마음을 열어 보였다.



 - ‘군밤타령’ ‘태평가’ 등 민요를 주로 부른다. 시조창으로 인연을 맺었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어요. 다 제 끼를 일찍 알아채고 지원을 아끼지 않은 부모님 덕분이죠. 어려서부터 음악·미술학원에 다녔고, 주변 선생님들이 국악에 재능이 있다는 걸 발견하셨어요. 시조대회 대상만 70여 회 받았습니다. 초등 5학년 때부터는 성인 대회에 나갔고요. 주최 측에서 저만 상을 받는다고 학생부 대회에 나오지 말라고 했거든요.”



 -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본조 아리랑’입니다. 어떤 악기와도 잘 어울려요. 제가 그 회한을 아직 다 짐작할 수 없지만 그리움도, 외로움도, 희망도 다 들어 있죠. 한 소절 한 소설 신경 쓰고 부릅니다. 2000년 모스크바 공연 땐 백발의 러시아 노신사가 ‘아리랑’을 듣고 눈물을 흘리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송양은 2008년 KBS ‘전국노래자랑’에서 역대 최연소 대상을 받으며 얼굴을 알렸다. 이후 각종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타고난 재능에 하루도 연습을 거르지 않는 노력파다. 올 연말까지 공연 일정이 꽉 차 있을 만큼 부르는 데가 많다. 외부 행사 출연료도 여느 명창보다 높은 수준이다. 1회당 1000만원 정도다. 네이버·다음 팬카페 회원만 1만 명에 이른다. 삼촌팬을 넘어 아빠팬이 많다. 매년 20여 차례 자선공연도 여는 등 사회봉사에도 관심이 크다.



 - 음악적 영역을 넓힐 생각은.



 “민요는 곱고 경쾌한 목소리가 특징이에요. 굵고 거친 어조의 판소리와 함께할 수 없죠. 대신 여러 악기를 배우려 합니다. 사물놀이 원년 멤버인 이광수 선생님께 꽹과리·장구를 익혔어요. 가야금도 조금 할 수 있고요. 아직 다루진 못하지만 요즘에는 해금 소리가 너무 좋아요.”



 - 국악신동 극찬도 들었다.



 “제가 잘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매스컴을 많이 탔을 뿐이죠. 레퍼토리도 부족하고…. 물밑에서 드러나지 않게 노래 잘하는 친구가 너무 많아요. 깊이 있는 소리를 내려면 내공을 더 다져야 합니다.”



 - 인문계 고교(당진 호서고 2학년)에 다닌다.



 “세상을 크게, 두루 배워야 한다는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대학은 국악과로 가야죠. 일반 과목 중에선 한국사가 재미있어요. 다른 건 몰라도 국사 성적이 나쁘면 아버지께서 용납하지 않으시죠.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우리는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 그래도 음악이 우선인데.



 “지난해 여름부터 작곡·편곡도 배우고 있어요. 화성악이란 걸 처음 접했죠. 국악만 연습하는 데서 생기는 지루함을 덜 수 있었어요. 서양 음악을 익히니 국악이 더 풍부해지는 느낌입니다. 오케스트라 협연을 자주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죠. 대중에게 더 편하게 다가갈 수 있잖아요.”



 - 전통 국악인과 가는 길이 달라 보인다.



 “그렇죠. 국악 선생님들이 싫어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아요. 공연 수를 줄이고, 좀 더 우리 소리에 집중하라고 하시죠. 그런데 아직 무형문화재를 꿈꿀 나이도, 경륜도 안 되고 지금은 다양하게 접하려고 해요. 국악을 외국인에게 소개할 만큼 영어 실력도 키우고 싶고….”



 - 또래들에게 한 소절 불러 준다면.



 “요즘 친구들은 공부·진로 문제로 고민이 많아요. 일찍 재능을 찾은 저는 행복한 편이죠. 다시 태어나도 국악을 할 것 같다는 자부심 하나로도 얼마나 즐거운데요. ‘아리랑’에 이런 대목이 있어요.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엔 희망도 많다’. 지금 힘들더라도 공부는 놓지 않았으면 합니다.”



박정호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