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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예 기자의 위기의 가족] 엄마는 대리모

중앙일보 2014.02.15 00:03
[일러스트 중앙포토]
 “정말 고민이에요.”



얼마 전 아이 학부모 설명회에 갔다, 같은 반 아이 엄마를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다음달이면 출산을 한다는 엄마는 한참 고민에 빠져있더군요. 아이가 둘이나 있는데, ‘셋째가 생겨’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한창 서로 아이 키우기 힘들다는 하소연을 하고 돌아서는데, 엄마의 표정이 편안해 보였습니다. 계획해 생긴 아이든, 우연하게(?) 생긴 아기이든, 엄마를 찾아온 아기는 천사나 진배없으니까요.



이 엄마도 그랬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이번 회의 주인공은 아이가 보고 싶어 소송을 낸 20대 중반의 외국인 엄마입니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내용은 각색을 했습니다.



“제발, 아기를 만나게 해주세요”

#24살 엄마의 이야기.




저는 외국인입니다. 필리핀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한국말은 잘하지 못합니다.



저와 나이 차이가 30살이나 나는 남편을 만나게 된 건 국제결혼업체를 통해서였습니다. 아버지뻘인 한국남자가 하나 있는데, 아이만 낳아 주면 돈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돈이 없어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동생들 생각이 났습니다. 저라도 돈을 벌면, 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도시에서 살게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때 나이가 18살. 한창 어렸을 때였던 것 같습니다.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면서, 내가 선택한 일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서울에 도착해, 혼인 신고를 하기까지 두 달 남짓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남자의 집에서 살면서, 조금씩 한국말을 배웠습니다.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연년생으로 아이 둘을 낳았습니다. 둘째를 낳자마자 남자는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아이 얼굴을 보기도 전, 남자는 전처에게 아이를 데려갔습니다. 남자는 “계약한 대로 2만 달러를 줄 테니, 이혼하고 필리핀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통장에 들어온 돈은 바로 필리핀에 있는 식구들에게 보냈습니다. 그 돈으로 동생들은 오랜만에 따뜻한 밥을 먹고, 학교를 갈 수 있게 되었겠지요.



남자의 요구대로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필리핀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아이 생각에 눈물이 났습니다. 아이들은, 커서 엄마의 얼굴을 기억이나 해줄까요. 엄마를 보고 싶어 할까요.

고향에 돌아간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저는 다시 비행기를 탔습니다. 아이들이 보고 싶었습니다. 남자는 큰 아이만을 잠시 보여줬습니다. 건강하게 잘 있는 아이의 모습을 뒤로 한 채, 다시 필리핀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아이 모습이 눈에 밟혔습니다. 한 달 뒤,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없는 번호”라는 소리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아이들은 볼 수 없게 되는 걸까요.



“대리모 약정해놓고, 아이 앞세워 ‘돈’요구하다니”

#50대 아버지의 이야기




30년을 함께 살면서 우리 부부에게 부족한 게 있었다면 바로 핏줄이었다. 자영업이었지만, 한 달에 돈 1000만 원을 벌 정도로 벌이도 괜찮았다. 부부 관계도 좋았지만, 우리 사이엔 아이가 들어서지 않았다. 아내는 길거리 지나가는 아이만 봐도 눈물바람을 했다. 입양을 해서라도 아이를 키우자고 했지만, 아내는 고집을 피웠다. 우리 부부의 고통을 잘 알고 있던 한 지인이 “좋은 방법이 있다”며 알려온 방법이 하나 있었다. 대리모였다. 처음엔 우리도 펄쩍 뛰었다. “그렇게까지 해서 아이를 낳고 싶진 않다”고 했지만 “나를 닮은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생각이 잊히질 않았다.



아내를 설득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협의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국제결혼 업체에 찾아가 대리모를 할 아내를 소개받았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이 됐다. 대리모가 되어줄 여성이 스무 살이 채 안됐다는 사실은 여자가 입국해서야 알았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법적으론 우린 부부가 됐다. 여자가 첫 아이를 낳기 한 달 전. 전처를 찾아갔다. “곧 있으면 아이가 태어나니 키워줄 수 있겠느냐”고 다시 한 번 다짐을 받았다. 아내는 아이를 키우겠노라 약속을 했다. 그렇게 큰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나는 아이를 전처에게 데려갔다. 이후 대리모는 둘째를 가졌고, 이 아이 역시 큰 아이처럼 전처가 맡아 키우기로 했다.



여자에겐 원하는 금액을 전달했다. 협의 이혼서류까지 마치고, 여자는 필리핀으로 돌아가는 듯 했다. 하지만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연락을 해왔다. “아이가 보고 싶다”는 거였다. ‘낳은 정이 있어서 아이를 보고 싶어하는구나’란 생각에 큰 아이를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필리핀 남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유창한 한국말로 “그렇게 살지 마라”는 전화에 우리 부부는 간담이 서늘했다. 이러다간 아이들도 피해를 입게 될 것만 같아 전화번호를 바꿨다.



‘아이 보고 싶다.’라는 외국인 대리모의 소송

#법원의 판단은




“대리모였더라도, 아이 볼 권리 있어”



외국인 대리모였던 아이 엄마는 법원에 소송을 냈다. “아이 친 엄마이니 정기적으로 아이들을 만나게 해달라(면접교섭권)”는 것이었다. 반면 남자는 “면접교섭권을 줄 수 없다”며 버텼다. ‘혼인신고해 아이를 낳아주고 다시 이혼해주면 돈을 주겠다’는 대리모 약정을 했다는 거였다. 게다가 아이들이 한국인 엄마를 ‘친 엄마’로 알고 있어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고 반박했다. “아이 엄마는 아이를 앞세워 돈을 타내려 소송을 건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하지만 서울가정법원은 “대리모 약정을 인정할 수가 없다”고 판단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리모와 관련된 법률 규정이 정비돼 있지 않아 현행 민법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법원은 “자녀에 대한 면접교섭권은 ‘천부적인 권리’”라며 “이를 전면 배제하는 당사자 간 약속은 민법 제 103조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 행위로 효력이 없다”고 못박았다. 설사 대리모 약정을 했다 하더라도, 아이를 출산하면 우리 민법에 따라 바로 모자관계가 인정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외국인이었지만 정식 혼인신고를 통해 부부의 자격을 얻었고, 출산을 해 법적으로 어머니의 신분을 갖고 있다는 설명이다.



법원은 “자신의 난자를 제공해 유전자를 아이들에게 대물림해주고, 출산의 고통을 감수한 유전학적, 생물학적 어머니이기도 하므로 당연히 어머니로서 아이들을 만날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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