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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언제 멈추어야 할지' 를 모르는 아베 정권

중앙일보 2014.02.15 00:01 종합 31면 지면보기
장달중
서울대 명예교수
정치외교학
제2차 세계대전 후 냉전을 촉발시킨 스탈린. 그를 비난하는 영국 총리 이든에게 말했다. 자신은 히틀러와 다르다고. “히틀러의 문제는 ‘언제 멈추어야 할지’를 모르는 데 있다.” 하지만 ‘나는 언제 멈추어야 할지를 알고 있다(I know when to stop)’고 응수했던 것이다.



 국제적 긴장상황에서 ‘언제 멈추어야 할지’를 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치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 중의 하나다. 이를 모르면 전쟁의 불씨를 키울 뿐이다. 이런 지도자가 결코 히틀러만은 아니다. 쿠바 미사일 위기를 야기시킨 흐루쇼프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언제 멈추어야 할지’를 알게 된 것은 1962년 미·소 핵전쟁 일보 직전의 순간이었다. 저명한 국제정치학자 고(故) 한스 모르겐타우의 지적이다.



 어디 이들뿐인가. 일본의 아베와 북한의 김정은도 이들을 닮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김정은은 권력세습 후 장거리 로켓 발사, 핵실험, 장성택 처형 등 과격한 도발을 계속하고 있다. 이런 그가 지금 남북고위급 회담을 추진하며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하는 등 방향 선회를 모색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정말 그가 ‘언제 멈추어야 할지’를 알고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아베의 과거사 도발은 브레이크 없는 질주에 가깝다. 지난 연말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한 데 이어 국회에서 4차례나 역사인식에 관한 질문을 받았으나 ‘식민지배’와 ‘침략’이란 표현은 끝까지 피해갔다. 그리고 지난 12일에는 우리 정부의 위안부 문제 제기를 일본에 대한 ‘비방, 중상’이라고 깎아내리기까지 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일본의 공영방송인 NHK 경영위원들까지 이에 가세하고 있다. 내각과 자민당이 과거사 도발을 위한 관민 동원을 주도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물론 이전에도 과거사 도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베 정권의 도발은 그 차원을 달리하고 있다. 아베가 간판으로 내걸고 있는 ‘적극적인 평화주의’만 해도 그렇다. 이런 간판은 이웃 국가들의 협조를 전제로 해야만 빛을 발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이런 간판을 스스로 부정하는 모습이다. 집단자위권 행사를 위한 헌법해석 변경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군사대국화의 꿈을 이루려는 그의 모습에 다름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이러다 보니 중·일 관계가 냉전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의 유력지인 요미우리신문은 2012년 9월 일본의 센카쿠 열도 국유화 이후 영토문제와 역사문제를 둘러싼 중·일 간의 갈등이 냉전을 방불케 한다는 기획물을 내보냈다. 독도와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갈등도 곧 이를 뒤따를지 모른다.



 주지하다시피 냉전은 두 가지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타협을 통한 문제해결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일방적 압력의 행사 필요성이 증대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서로의 입장을 수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상대방의 의지를 꺾기 위한 일방적 강요가 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외교는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대신 무력을 제외한 온갖 여론전의 테크닉이 동원된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한·일, 중·일 간의 현실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런 냉전적 트랩에서 벗어날 의사소통의 회로는 보이지 않는다. 지난 1년간 한·일, 중·일 간에는 단 한 차례의 정상회담도 없었다. 또 이런 것을 해결할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와 같은 제도적 장치도, 외교문화도 없다.



 그래서 냉전이 열전으로 비화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키신저는 ‘중·일 관계의 긴장 국면이 격화하면서 전쟁의 유령이 아시아를 배회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아베 자신도 제1차 세계대전과 같은 ‘우발적 충돌을 막을 로드맵이 없다’고 우려했다.



 지금까지 동북아에는 현상(status quo)을 유지시키는 일정한 선(line)이 있었다. 한·중·일 3국의 주요 외교안보 과제도 이 선을 지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베의 도발로 지금 이 선이 위태로워지고 있다. 그래서 정말 우발적 충돌을 우려하고 있다면 그는 이제 과거사 도발을 멈추고 충돌 방지를 위한 로드맵을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한다.



 우리의 문제는 지금부터다. 어디에 새로 선을 그어야 할지, 아니 도대체 그런 선이 있기나 한지, 정말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일 공조체제에 매달려 있을 수도 없게 됐다. 그렇다고 뚜렷한 선택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아베의 도발을 멈추기 위한 도덕적 압박을 넘어서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장달중 서울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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