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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칼럼] 양적완화와 금융개혁

중앙일보 2014.02.13 00:01 종합 35면 지면보기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수·경제학
2월 11일 전 세계의 이목은 미국 하원 금융서비스 위원회로 집중되었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이 증언을 하러 나오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경제인 미국의 통화정책을 관장하는 연준 의장의 의회 증언은 항상 관심사이지만, 이날의 증언은 특히 주목을 받았다.



 우선 눈길을 끈 사실은, 이날의 증언이 이달 초에 새로 임명된 신임 의장의 첫 증언이라는 점이다. 그에 더해, 그 신임 의장이 1913년 연준이 생긴 이래 최초의 여성 의장인 재닛 옐런(Janet Yellen)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명예교수라는 점도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관심을 끈 것은 이날 옐런 의장이 과연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의 점진적 축소 (tapering)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이날 옐런 의장은 증언에서, 연준은 양적완화를 축소해 나갈 것이지만 미국 경제의 회복세가 일정치 않고 제대로 된 일자리가 충분히 만들어지지 않는 등 경기회복의 질도 썩 좋지 않기 때문에, 경제 상황을 보아가면서 조심스럽게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이러한 옐런 의장의 증언 내용이 알려지자마자 양적완화의 기조가 당분간 유지되리라는 기대감에서, 며칠 전까지만 해도 몇 주째 하락세를 보이던 세계 주요 증권시장이 완연한 상승세를 보였다. 선진국 경제들이 아직도 양적완화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2008년 국제금융위기 이후 미국·영국 등 주요 선진국 정부들은 급격한 경기하강을 막기 위해 이자율을 내렸고, 더 이상 이자율을 내릴 여지가 없어지자 중앙은행이 대규모로 정부 채권을 사들이는 양적완화를 통해 계속 돈을 풀었다.



 양적완화 정책은 그 초기에는 불가피한 면이 있었다. 1929년 대공황 이래 최악의 금융위기를 맞아 어떻게든 경기 악화를 막아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상수단이 상시적인 정책이 되면서 양적완화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가져왔다.



 양적완화는 우선 엄청난 금융자산의 거품을 가져왔다. 실물경제는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데 계속 돈은 풀리니 당연한 결과였다.



 특히 미국의 경우, S&P500 지수는 2013년 3월에 이미 2007년의 정점을 초과하였다. 당시 미국 1인당 소득이 2007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을 때이고 2007년 당시 미국 증시에 엄청난 거품이 끼어있었음을 고려할 때, 거품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S&P500 지수는 그 이후로 20%가량 더 올랐다. 그 기간 동안 미국의 1인당 소득이 1% 정도밖에 증가하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거품이 엄청나게 더 커진 것이다.



 양적완화는 선진국에만 악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다. 선진국에서 돈은 많이 풀렸지만 이자율은 낮아서 자산수익이 떨어지자 소위 ‘신흥시장’이라고 일컬어지는 우리나라·중국·인도·브라질·남아공·터키·칠레·콜롬비아·인도네시아 등으로 자금들이 많이 흘러들어 갔다. 문제는 이 자금들이 투기성 자금이어서, 들락날락하면서 주가와 환율을 요동치게 해 경제활동을 교란시켰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전통적으로 자본통제라면 눈을 부릅뜨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콜롬비아 등 일부 국가에 자본통제를 강화하라고 권유했을까.



 양적완화의 가장 큰 폐해는 무엇보다도 필요한 금융규제 개혁을 지연시키거나 좌절시킨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초반에는 많은 사람이 은행, 신용평가 기관, 파생상품 등 금융 전반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함을 인정했다. 그러나 양적완화로 거품을 통한 겉보기 경기회복이 진행되면서, 기존의 금융체제를 완전히 뜯어고칠 필요는 없고 조금 손만 보면 된다는 금융권의 로비가 먹혀들어가게 되었고 이에 따라 필요한 금융개혁들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게 되었다.



 2008년 국제금융위기는 지난 30여 년간 세계경제를 지배해온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주의가 얼마나 문제가 많은가를 명백히 보여주었다. 환자로 이야기하면 대수술을 하고 식생활 등 생활습관도 완전히 바꾸어야 하는 상황임을 보여준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양적완화 정책이 고강도 진통제 역할을 하면서 환자에게 회복했다는 환상을 심어주었고, 급기야 환자는 수술을 거부하고 예전처럼 생활하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양적완화가 가져온 엄청난 거품을 하루 아침에 없애려 하면 그것이 터져서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최대한 빨리 이 거품을 제거하고 그와 동시에 금융규제 강화를 포함한 경제의 근본적인 개혁을 하지 않으면 금융위기가 또 재발할 수 있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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