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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돌며 이만큼 성장했어요 이젠 우리만의 안무 내놔야죠

중앙선데이 2014.02.08 16:58 361호 19면 지면보기
요즘 뜨는 한류는 ‘발레 한류’다. 2000년대 들어 우리 무용수들이 각종 해외 콩쿠르를 휩쓸고 메이저 발레단에서 당당히 주역으로 활동하면서 한국 발레의 위상이 부쩍 높아졌다. 해외 공연은 가는 곳마다 매진사례고, 일본에서는 한국 꽃미남 발레리노들을 두고 ‘발레돌’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창단 30주년 기념 공연 갖는 유니버설 발레단 문훈숙 단장

이런 발레 한류의 중심에 유니버설 발레단이 있다. 창단 이듬해인 1985년부터 해외공연에 나섰고, 98년 뉴욕 입성 이후 꾸준히 미국·유럽 투어를 이어왔다. 세계 진출을 겨냥한 창작발레 ‘심청’은 10여 개국 200여 차례 무대에 올라 극찬을 받았다. 꾸준히 공략해온 일본에선 팬층도 두터워졌다. 이승현·강민우는 대표적인 ‘발레돌’로 인기몰이 중이고, 유니버설 발레단의 단기 발레스쿨에는 지난해 일본인 15명이 ‘유학’을 오기도 했다.

올해 유니버설 발레단이 30주년을 맞았다. 84년 발레 불모지 한국에 최초의 민간발레단으로 설립돼 국립발레단과 양대 산맥으로 한국 발레의 도약을 이끌어온 유니버설의 30년은 발레에 인생을 바친 한 여인의 도전의 역사기도 하다. 창단 멤버로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 최초의 동양인 객원주역을 맡는 등 80~90년대 한국 발레를 대표하다 경영자로 변신해 ‘발레 한류’를 개척해 가고 있는 문훈숙(51) 단장을 만났다.

현역시절 ‘가장 지젤다운 지젤’로 불렸던 문훈숙 단장
유니버설 발레단은 올해 첫 공연도 해외에서 치렀다. 1월 29·30일 도쿄 유포트홀에서 클래식과 모던 레퍼토리를 다양하게 엮은 갈라 무대로 창단 30주년 기념공연을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다. “다양한 춤을 소화하는 무용수들에 대한 평가가 좋았어요. 일본에는 클래식, 컨템퍼러리를 같이 소화하는 발레단이 많지 않대요. 어떤 분은 지리 킬리언 작품을 싫어했는데 우리 공연을 보니 그의 의도를 알겠다고 하더군요. 일본 기획사가 한류 매체를 통해 홍보하면서 발레를 전혀 모르는 분들도 많이 보러 오세요. 마스터클래스를 열면 학생들도 많이 모이고, 이번에 일본인 4명을 연수단원으로 뽑았어요. 국립발레단 초대 단장을 지내신 임성남 선생님이 일본에서 발레를 배워 오셨던 걸 생각하면 격세지감이죠.”

‘물가의 수초’라는 별명처럼 새침하고 베일에 싸인 분위기를 예상했지만 문 단장은 의외로 소탈했다. 적극적으로 발레단 자랑을 하면서도 과장 없이 솔직했다. 국내에서 발레단이 정착도 하기 전에 해외시장 개척부터 나선 이유를 묻자 “국내시장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깔깔 웃었다. “관객이 없으니 공연을 못 올렸죠. 공연 하나 올리고 미국 가서 두 달 쉬었다 올 정도로. 365일 연습해봤자 공연 한번 뛰는 것보다 못하거든요. 외국에 나가서라도 공연을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발전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는 30년 역사의 가장 중요한 변곡점으로 마린스키 발레단과의 인연을 꼽았다. 92년 마린스키 예술감독 올레그 비노그라도프를 초빙해 ‘백조의 호수’ 전막발레를 성공한 후 유니버설의 고전 레퍼토리는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그 인연이 오늘의 발레단을 만들지 않았나 싶어요. 작품 하나 올릴 때마다 수준이 껑충 뛰었죠. 명작을 원산지에서 직수입한 셈이니까요. 발레는 입에서 입으로 선생이 제자에게 전하는 디테일이 중요해요. 20년 동안 상주 러시아 선생들에게 꾸준히 지도받고, 지금도 우리 지도자들이 다 그들에게 배웠기 때문에 스타일을 이어갈 수 있는 거죠.”

이제 세계 어디 내놔도 꿇리지 않을 정도로 수준을 인정받고 있지만, 전통과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창작물을 만들어 내야 하는 과제 때문에 결코 안주할 단계는 아니란다. 그는 지금 우리 발레의 입장을 ‘삼성’에 비유했다. “삼성도 패스트 팔로어에서 이제 리더가 됐죠. 1등을 지키기 위해선 새로운 것으로 선도해야 해요. 러시아가 이탈리아·프랑스 발레를 수입하다 거꾸로 세계 발레에 새 활력을 불어넣었듯 한국 발레도 이제 우리만의 안무로 신작을 내놔야 되는 시기예요. 우리 작품으로 세계 시장에 나가고, 해외 발레단이 그걸 수입하는 단계까지 가야죠.”

국내 첫 창작발레 ‘심청’은 기획단계부터 문 단장을 심청으로 설정한 작품. 1986년 초연 이래 2001년 공연까지 문 단장이 심청을 도맡았다.
9월엔 제2의 창작 발레 ‘춘향’ 업그레이드
9월엔 제 2의 창작발레 ‘춘향’을 업그레이드해 선보인다. 2007년 배정혜 전 국립무용단장의 ‘춤, 춘향’을 토대로 만들어 다소 추상적이었던 무대를 서양인도 이해할 수 있게 새롭게 구성 중이다. “창작발레 만들기가 어려워요.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도 초연 땐 실패작이었죠. ‘춘향’은 신작인 데다 동서양 문화를 퓨전해야 하다 보니 균형 맞추기가 정말 어려워요. ‘심청’과 차별화를 위해 좀 더 네오클래식 스타일로 만들려고 해요.”
외국 클래식 명작을 컨템퍼러리하게 표현하는 신작도 내년쯤 선보일 계획이다. 문 단장은 작품 수준을 올리고 관객을 개발하는 단계를 지나 안무가 발굴이 한국 발레의 마지막 숙제라고 강조한다. “지금까진 안무가가 나올래야 나올 수 없었어요. 안무가는 그냥 나오는 게 아니고 세계 무대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하니까요. 뉴욕시티발레단의 조지 발란신, 영국 로열발레단 캐네스 맥밀런,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존 크랭코처럼 발레단이 세계적으로 발돋움한 시기엔 반드시 훌륭한 안무가가 있어요. 우리는 30년 걸려 겨우 토대를 만든 정도인데, 신작에 대한 격려가 필요합니다.”

21~23일 예술의전당에 오르는 ‘30주년 스페셜 갈라’는 유니버설의 대표 레퍼토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무지개처럼’ 펼친다. 국내 갈라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니버설이 배출한 세계적인 무용수 서희와 강효정도 출연한다. 4월 예정인 모던발레 거장 나초 두아토의 ‘멀티플리시티’는 유니버설이 처음 전막에 도전하는 모던 레퍼토리다. “너무 기다려져요. 꼭 해보고 싶은 작품이었거든요. 나초가 직접 오는데, 우리 단원들과 일하는 건 처음이라 많이 배울 거예요. 지난해 ‘두엔데’도 올렸지만 이번엔 바흐 음악이라 또 달라요. 그가 직접 출연했던 작품인데, 바흐의 위대한 음악에 안무한 것에 용서를 구하면서 출연했다죠.”

유니버설 발레단 ‘지젤’ 중 윌리들의 군무. 유니버설의 군무는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내 인생은 순종 그 자체 … 서른아홉에야 처음 반항”
문 단장은 4일 국립발레단 강수진 신임 예술감독 취임식에도 참석했다. 강 감독은 이날 모든 단원이 단결해야 빛나는 작품을 10월 첫 작품으로 선보인다고 밝혔는데, 리틀앤젤스와 선화예술학교, 모나코왕립발레학교를 모두 살짝 앞서 가며 강 감독과 인연을 이어온 문 단장은 “아주 잘할 것 같다”며 기대감을 표했다. “워낙 경험이 풍부하니 어떻게 지도할지 굉장히 기대돼요. 행정을 걱정들 하지만 결국엔 예술성, 공연 결과물로 승부하는 거니까. 그녀는 틀림없이 잘할 겁니다.”

‘강철나비’ 강 감독에 비해 문 단장은 89년 마린스키 발레단 ‘지젤’ 공연에서 일곱 차례 커튼콜을 받은 이래 국내외적으로 가장 ‘지젤다운 지젤’로 불려 왔다. 동양인임에도 ‘지젤의 대명사’가 된 비결을 묻자 “제 성품이 지젤과 비슷한 것 같다”고 답한다. 워싱턴발레단 솔리스트로 있다가 발레 불모지로 돌아온 선택도 “아버지가 오라니까” 왔고, 세간에 유명한 영혼결혼식에 대해서도 “내 인생이 순종 그 자체”였다고 회고한다. 발레를 하면서 사춘기도 못 거치고 순종해 오다 서른아홉에 부상당했을 때 처음 반항을 해봤다. “빨리 복귀하라는 아버지 말씀에 처음으로 ‘노’했어요. 복귀하더라도 내가 결정하겠다고 했죠.”

부친은 몹시 서운해했지만, 그는 결국 은퇴를 택했다. “혹시 향수를 쓰시나요? 나이가 들면서 옛날에 좋아하던 향수가 안 좋아지더군요. 좋아하는 향수가 바뀌듯 20대 때는 낭만적이고 순수한 지젤을 좋아했지만 나이 드니 라바야데르 같은 개성적인 캐릭터가 좋아져요. 사람 안에 다양한 성격이 있는 것 같죠.”

2001년 그렇게 무대를 떠난 뒤에는 가녀린 지젤 이미지를 벗고 발레 대중화를 위해 발로 뛰었다. 발레뮤지컬, 자막제공, 브런치발레, 오픈리허설 등 다양한 시도 중에 2008년 시작한 ‘공연 전 해설’이 가장 성공작이다. 공연 시작 전 무대에 올라 감상 포인트를 설명하고 직접 동작을 보여주기도 한다.

“발레를 모르는 사람들이 뭐가 궁금할까, 알고 보면 재밌겠다 싶은 걸 제가 직접 원고를 써서 시작했는데, 사람들이 정말 도움된다고, 해설 때문에 재미있게 봤다고 해주세요. 그렇게까진 예상 못 했는데, 대신할 사람 찾을 때까진 계속 해야죠.”

일곱 살 때부터 발레에 바친 인생, 개인적인 즐거움은 어디서 찾느냐는 물음엔 서슴없이 “우리 딸”이란다. 입양한 딸 신월이 역시 유니버설 무대에 아역으로 서는 소녀 발레리나다. “처음엔 힘들다고 말렸는데 일곱 살짜리가 그런 말씀 말라고, 저도 꿈이 있다면서 우는 거예요. 얼마 전에 발레 노트를 봤는데 제가 그걸 베끼고 싶을 정도예요. 음악을 몸으로 받아 표현하는 그 순간이 그렇게 행복하다고, 내가 누군가를 행복하게 한다는 게 너무 행복하다며 무대에 섰을 때의 느낌을 써놨는데, 저보다 낫더라고요.”

집에서 밥 먹다 말고 발레를 가르쳐주기도 한다는 그는 이젠 한국에서도 충분히 교육이 가능해 유학도 안 보내고 싶단다. “신월이 없으면 너무 심심할 것 같아요. 걔 보는 낙으로 사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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