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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닭국물에 육질 쫄깃 할머니 손맛, 살아있네~

중앙선데이 2014.02.08 17:11 361호 24면 지면보기
1 백숙보다 쫄깃한 이북식 찜닭.
가족 몸보신 음식 만들던 솜씨로 요리
어릴 적 집 앞마당에는 닭장이 하나 있었다. 시골이 아니라 나름 큰 도시에 살았는데도 할머니께서는 병아리를 사다가 직접 닭을 키우셨다. 그러다가 식탁에 ‘뱀이라도 나올 것 같다’ 싶으면 닭을 잡아 주시곤 했다. 집에 손님이 오셨을 때 대접하는 메뉴 일 순위도 당연히 닭 요리였다. 넉넉하지 않았던 형편이었지만 닭고기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먹을 수 있었다. 가족들밖에 모르는 부지런하신 할머니 덕분이었다.

주영욱의 이야기가 있는 맛집 <31> 진남포 면옥 이북식 찜닭


할머니께서는 닭으로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주셨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해주셨던 것은 닭 백숙이었다. 쉽게 만들 수 있고, 담백해서 누구나 먹기에도 좋고, 죽까지 같이 끓여서 많이들 나눠 먹을 수 있으니 우리 집 같이 식구 많은 집에서는 딱이었다. 닭 다리가 두 개밖에 없는 것이 언제나 우리 형제들에게는 분쟁의 씨앗이 되기는 했지만.

어릴 때 닭고기를 많이 먹어 익숙해져서인지 나는 지금도 닭고기를 좋아한다. 기회가 날 때마다 닭고기를 찾곤 하는데 그게 좀 유난했는지 친구들에게 전생에 닭고기에 무슨 한이 맺혔느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어쨌건 요즘은 닭고기가 귀한 세상도 아니고, 내가 좋아하기도 해서 여러 가지 다양한 닭 요리들을 찾아다니며 즐기곤 한다.

그런데 다른 닭 요릿집들은 많은데 닭 백숙 집은 생각보다 많지가 않았다. 시골에 나가면야 흔하지만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는 찾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도시 사람들이 더 자극적이고 강한 맛을 찾기 때문인지, 아니면 백숙이 옛날 시골 음식이어서 대도시에서는 인기가 없어졌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소박한 백숙의 맛이 그리워 일부러 찾아다니곤 했는데 그러다가 알게 된 맛집 중 하나가 바로 약수동에 있는 ‘진남포 면옥’이다.

이곳은 백숙이라 하지 않고 ‘이북식 찜닭’이라고 부르는 요리를 하는 곳이다. ‘아무런 양념을 하지 않고 익혀낸 닭 요리’라는 점에서는 백숙(白熟)류로 분류할 수 있겠다. 평안도 진남포에서 6·25 전쟁 때 가족들을 따라 월남한 실향민 백대익(69) 사장이 부인 유성희(66)씨와 함께 2대째 운영하고 있다. 돌아가신 백 사장의 어머니가 42년 전인 1972년에 아주 작은 규모로 시작했던 곳이다. 5형제의 장남이었던 백 사장은 식당을 개업했을 때부터 어머니 일을 도와서 일을 하기 시작했고 며느리 유씨도 결혼 이후 자연스럽게 함께 일을 하게 됐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나서는 부부가 물려받아 지금까지 운영해오고 있다.

2 진남포 면옥 전경. 3 식당 내부. 사진 주영욱
야채 넣고 끓인 양념장이 맛 더해
‘이북식 찜닭’이란 평안도에서 민간에 전해 내려오던 음식이라고 한다. 어머니가 집에서 아버지 몸보신을 위해 만들던 음식인데 식당을 열면서 손님들에게 귀한 음식을 대접하겠다는 생각에 시작하게 되었단다. 여러 가지 재료를 넣어 만든 육수에 먼저 닭을 살짝 삶아서 이물질과 잡내를 없앤 다음 찜통에 쪄서 마무리로 익힌 뒤 손님 상에 내어 놓는다. 그냥 삶기만 하는 일반 백숙과는 달리 더 쫄깃한 고기 육질이 살아 있고, 찌는 과정에서 기름기가 빠져서 더 담백한 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부추를 함께 익혀서 내놓는데 자칫 심심할 수 있는 닭고기의 맛을 쌉쌀한 느낌의 부추가 보완해 주고 입맛을 더 개운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궁합이 잘 맞는다.

함께 찍어 먹으라고 내놓는 양념장도 이 집의 독특한 맛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여러 야채를 넣고 끓여 만든 특제 간장에 고춧가루와 파를 넣어 만들어 낸다. 닭고기와 부추의 결합에 풍부한 맛의 생기를 불어넣으면서 이 집만의 특별한 ‘찜닭’ 맛을 완성해 주고 있다.

이 집의 또 다른 명물은 평안도식 막국수다. 강한 양념으로 버무린 강원도식 막국수와는 다르게 그저 동치미 국물과 맑은 소고기 육수를 섞은 국물에 말아낸다. 그 국물 맛이 아주 담백하고 시원해서 고기 먹고 난 다음에 텁텁한 입맛을 개운하게 해주는 것이 일품이다. ‘찜닭’을 먹으면서 가슴살을 좀 남겨 놓았다가 찢어 넣어서 함께 먹으면 더욱 맛이 있다.

아직도 나에게 가장 맛있는 백숙은 할머니께서 만들어 주시던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은 이미 오래 전에 지났고 할머니도 떠나신 지 오래여서 그리움으로만 남아 있다. 가끔 이렇게 역사가 오래되고 깊이가 있는 백숙 집을 찾아서 그 아쉬움을 달랜다. 더 이상 닭다리를 놓고 싸우지 않아도 되는 것을 그나마 위안으로 삼고.

**진남포 면옥: 서울 중구 신당3동 368-89 전화 02-2252-2457. 일요일도 영업한다. 이북식 찜닭 한 마리 2만5000원, 막국수 7000원



음식·사진·여행을 좋아하는 문화 유목민. 마음이 담긴 음식이 맛있다고 생각한다. 마케팅 전문가이자 여행전문가. 경영학 박사. 베스트레블 대표. yeongjyw@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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