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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귀족’으로 21세기를 사는 법

중앙선데이 2014.02.08 17:15 361호 26면 지면보기
저자: 김홍기 출판사: 아트북스 가격: 1만5000원
몇 년 전 저자와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을 ‘패션 큐레이터’로 소개했다. 대략 ‘패션 관련 전시 기획자’ 정도로 이해했는데 그가 먼저 부연 설명을 했다. “가령 그림이나 영화에서 나온 옷을 보고 어떤 문화적 취향으로 골랐는지, 또 어떤 욕망을 품고 있는지 공부하고 해석하죠. 그런 배경을 제대로 알아야 사람들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를 기획할 수 있어요.” 단지 사실의 숙지가 아니라 자신만의 ‘관점’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얘기였다.

『댄디, 오늘을 살다』

책을 읽어가며 그때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그는 미술 작품들을 통해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는가라는 ‘관점’을 제시했고, 미술에 관한 독해라기보다 성찰적 에세이에 가깝게 접근했다. 패션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되, 그 관점의 출발이 패션에 있음은 분명히 했다. 바로 제목에 ‘댄디(dandy)’가 등장한 이유다.

댄디는 19세기 초 유럽에서 나타난 멋쟁이들을 뜻한다. 산업혁명 이후 사람들은 외양을 꾸며 신분을 과시하는 열풍이 일었다. 댄디는 그런 무분별한 유행 논리에 거부감을 느끼고 시대 주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신적 귀족’이었다. 우아한 선택을 통해 독특한 형태의 저항을 하려는 무리가 바로 그들이었다. 저자는 서문에서 “삶의 자리가 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응달의 시대에 댄디한 인간들이 빛이 돼주길 바라며 글을 썼다”고 밝혔다.

책 속 작품들은 기독교와 그리스신화를 모르면 도통 이해가 어려운 서양 명화들이 아니다. 동시대 국내 작가 34명만으로 가득 채웠다. ‘같은 공기를 마시고 밥을 먹고 동일한 노동 조건에서 일하는’ 그들의 그림이 더 와닿는다는 설명이다.

옳은 판단이었다 싶다. 맨 처음 소개되는 홍찬일의 ‘현대인의 자화상 시리즈’부터 섬뜩할 정도다. 층층의 육각 금속프레임 안에서 노트북을 켜고 일하는 사람들(‘과로빌딩’), 서류 가방을 질질 끌고 출근하는 직장인들(‘러시아워’), 철저히 남들과 선을 긋고 먼저 꼭대기로 올라 가려 애쓰는 넥타이 맨 남자들(‘동료의식’)을 보자면 노동집약적으로 설계된 일터, 비정규직 확대로 인한 무한경쟁, 세계 최고의 노동시간 등에 무감각해진 우리에게 무엇이 옳은 노동인가를 일깨워준다.

김태연의 ‘지름신 팔 폭 병풍도’, 김현정의 ‘아차’는 웃기지만 슬프다. 전자는 남녀노소에 심지어 개까지 동일한 호피무늬를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병풍 작품이고, 후자는 라면을 먹고 있는 아가씨의 한쪽 편에 루이뷔통 가방과 스타벅스 커피 컵이 놓여 있는 그림이다. 소비를 통해 종교와 같은 위안을 찾으려 하고, 명품을 사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세태를 반영한다. 이에 저자는 “자존감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는 일”이라는 일침과 “친구와 공원을 거니는 특별한 경험이 훨씬 더 우아한 소비”라는 조언을 보탠다.

이 밖에 동안(童顔) 열풍, 성형 중독, 섹스리스, 키덜트 신드롬 등 우리 시대의 뒤틀린 자화상들이 작품을 읽는 키워드로 등장한다. “자신의 가슴을 타인의 노래로 채우지 마라”는 철학자 크리슈나무르티의 말은 책을 관통하는 한마디다.

‘댄디로 사는 법’이 중요 메시지라지만 페이지마다 보너스는 따로 있다. 낯선 국내 작가들의 역작들을 접하는 재미도 쏠쏠하거니와 중간 중간 관련 서적들을 풍부하게 언급해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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