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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는 달라도 그들이 걱정한 건 ‘우리들의 안녕’

중앙선데이 2014.02.08 17:23 361호 28면 지면보기
미래의 암울한 전체주의 국가를 비판한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 소설 『1984』(1948)는 제목만 보자면 ‘과거 소설’이다. 몇몇 독재국가를 제외하면 우리는 분명 『1984』의 전체주의 사회보다는 더 나은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런데 왜 『1984』를 읽고 공감하는 마음이 더 커지고 있는 것일까.

로쟈의 문학을 낳은 문학 <7> 예브게니 자먀틴의 『우리들』 vs. 조지 오웰의 『1984』

탄생 스토리를 따라가 보자. 1946년 오웰은 여러 해 동안 수소문해오던 책 한 권을 손에 넣는다. 러시아의 소설가 예브게니 자먀틴이 쓴 『우리들』(1920)의 프랑스어 판이다. 스탈린 시대에 파리에서 망명 생활을 한 자먀틴의 이 문제작은 러시아에서는 발표되지 못하고 미국과 프랑스, 체코에서만 소량 출간됐다. 오웰은 서평에서 “『우리들』 같은 특별한 작품이 영국에서 아직 출간되지 않은 건 놀라운 일”이라고 적었다. 또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1932)가 부분적으로 『우리들』에 빚지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오웰 역시 『우리들』을 읽지 못했다면 『1984』야말로 쓰이지 않았거나 다르게 쓰였을 것이다. 『우리들』의 영향과 그에 대한 반응으로 읽을 수 있는 대목이 적잖기 때문이다.

29세기가 배경인 『우리들』의 단일제국은 ‘은혜로운 분’의 통치 아래 모든 인간은 이름 대신에 번호로 불리며, 모든 번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시간율법표’에 의해 통제된다. 하루에 두 번, 한 시간씩 자유시간이 주어지는데, 제국의 우주선 제조를 관장하는 조선기사 D-503은 그마저도 시간율법표에 수용되기를 바란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통제됨으로써 ‘나’라는 개인이 말살되고 ‘우리’로 대체되는 것이 그의 희망이다. “비자유의 본능이 태고적부터 인간의 유기적 특성”이기 때문이다. “티 없이 푸른 하늘, 각각의 번호판에서 반사되는 아주 작은 태양들, 사고의 광기로 흐려지지 않은 우리의 얼굴…모든 것이 일종의 단일하고, 찬란하고, 미소 짓는 재료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당신들은 이해하겠는가.”

한편『1984』에서 세계는 핵전쟁 이후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동아시아라는 초대형 국가로 분할돼 항구적인 전쟁 상태에 있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가 속한 오세아니아는 일당지배 체제이며, 당을 대표해 빅브러더가 통치하고, 그 아래로 인구 2퍼센트의 내부당원과 13퍼센트의 외부당원, 그리고 85퍼센트의 무산계급이 있다. 외부당원인 윈스턴은 역사 기록의 변조를 담당하는 진리부 직원이다. 『우리들』에서는 모든 번호가 감시 대상이지만, 『1984』에서는 다수 무산계급이 아닌 소수 당원들만이 감시 대상이다. 무산계급은 가만히 내버려두어도 반란을 꿈꾸지 않기 때문이다.

두 소설의 주요한 공통점은 모두 미지의 여성이 체제의 중간관리자인 남자 주인공에게 접근해 에로스적 관계를 맺는다는 점이다. 『우리들』에서는 반란 세력의 일원인 I-330이 D-503에게 정략적으로 접근해 억제된 성적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감시의 눈을 피해 은밀하고 사적인 관계를 경험한 D-503은 점차 자기 안의 ‘또 다른 나’와 조우한다. “나는 제2의 내가 털북숭이 손으로 그녀를 난폭하게 부둥켜안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얇은 비단을 갈기갈기 찢고 이빨로 물어뜯었다.” 길들여지지 않은 야수성을 자먀틴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영혼’이라고 부른다. 단일제국에서 영혼은 제거되어야 할 질병이다.

『1984』에서도 줄리아가 먼저 윈스턴에게 접근해 밀회를 갖기에 이른다. 하지만 줄리아는 I-330과는 달리 반란 세력과는 무관하며, 윈스턴은 줄리아를 만나기 전에 이미 반체제적 문제의식을 키워 온 인물이다. 비록 실패로 끝나긴 하지만 『우리들』에서는 ‘메피’라는 반란 세력이 봉기를 시도하고 D-503도 거기에 가세했다가 체포된다. 반면 『1984』에서는 윈스턴이 ‘형제단’이라는 반란 세력과의 접촉을 시도하지만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게 된다. 형제단원의 일원이라고 생각했던 내부당원 오브라이언은 사실 윈스턴의 감시자였던 것이다.

두 소설 모두 주인공의 반란 기도가 실패하는 걸로 끝나는데, 체제 전복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오웰이 자먀틴보다 훨씬 더 비관적이다. 『우리들』에서 반란 세력은 일망타진되고, D-503은 영혼 제거 수술을 받은 후 다시금 “단일 제국 만세! 이성은 승리한다”고 노래한다. 『1984』에서 윈스턴 역시 체포돼 잔인한 고문을 받고 줄리아를 배신하며, “둘 더하기 둘은 다섯”이라는 강요까지 끝내는 수용한다. “싸움은 끝났다. 윈스턴 스미스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그는 빅브러더를 사랑했다.” 요컨대 윈스턴이 사랑을 배신하고 자신의 인격마저 철저하게 파괴당하는 것이 『1984』의 비관적 결말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비관주의는 자먀틴이 29세기라고 내다본 먼 미래를 너무도 가까운 1984년으로 앞당겨 설정한 데 있지 않을까.

모든 디스토피아 소설은 미래라는 반면교사를 통해 현재를 다시 보게 만든다. 전체주의 사회에 대한 경고로 읽히는 두 소설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에게 “당신들은 안녕한가?” 하고 묻고 있는 것이다.



필자 이현우는 서울대 대학원(노문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 안팎에서 문학과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으며, ‘로쟈의 저공비행’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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